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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해방시켜라!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8613 작성일 2015-12-01 04:46 조회수 1842

나는 내가 배운 지질학(천체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과 성서비평학과 교회사와 신학에 따라 고대에 기록된 성서를 21세기의 언어와 사고로 재해석하여 읽는다. 나는 성서를 재해석하지 않고 문자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그래서 20년 동안 전문목회에서 나의 새로운 렌즈로 읽은 성서의 이야기를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쳤다. 물론 나의 신학공부를 도와준 멘토들이 가르쳐 준 것을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있다. 특히 진화과학은 나의 종교적 신앙과 신학의 기초가 되고 있다. 

 

고대 성서를 재해석함으로써 직역주의와 근본주의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18세기에 계몽주의가 탄생하면서 성서의 문자주의/직역주의에서 벗어나 역사적 예수를 되찾자는 양심선언이 기독교 내부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운동의 선구자들은 교회에서 추방되거나 처형되었다. 21세기의 기독교인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이미 예수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신앙과 삶을 위하여 성서를 새롭게 읽는 모범을 자신의 고향 회당에서 보여주었다. 1세기의 유대인 예수는 500여 년 전 페르시아제국 시대에 기록된 이사야서(61:1-2, 58:6)를 문자적으로 읽지 않고 로마제국 시대의 새로운 이야기(누가복음서 4:18-19)로 전환했다. 예수는 성서를 일점일획도 가감할 수 없는 책으로 믿지 않았으며, 직역적으로 읽기 보다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이야기로 재해석했다. 다시 말해, 예수는 성서를 문자주의와 직역주의로부터 해방시켰다. 역사적 예수는 종교체제가 사람들에게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고 암송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사람들의 영혼을 죽이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21세기에 다양한 인종들과 종교들과 문화들이 상호관계를 이루고 있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현대 기독교인들은 1세기의 고대 유대인들이 부족적 생존의 두려움 속에서 기록한 성서를 첨단과학의 민주주의 시대의 새로운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

 

인간의 의식의 진화 속에서 계몽주의가 탄생하면서 성서를 새롭게 읽어야 한다는 깨달음과 함께 ‘역사적 예수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30여 년 전에 미국의 ‘예수 세미나’  (www.westarinstitute.org)에 속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새로운 하나님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예수를 상업적인 교리에서 해방시키고 하늘에 갇혀있는 하느님을 땅으로 석방시키기 위해 종교 문맹퇴치 운동을 시작했다. 또한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연구소(www. historicaljesus.co.kr)가 역사적 예수의 서적들을 번역 출판하고 ‘예수살기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면서 그 일환으로 성서 새롭게 읽는 교육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참고: 몸학기독교연구소 www.freeview.org ; 종교너머, 아하 www.njn.kr (오강남 박사가 인도하는 영성기관); Canadian for Progressive Christianity www.progressivechristianity.ca )

 

성서를 새로운 눈으로 신중하게 읽으면 구약 성서의 창세기에 내용이 서로 독특하게 다른 가지의 창조 이야기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번째 이야기(2:4-25) 번째 이야기(1:1-2:3) 보다 500 앞서 기록되었고, 번째 이야기는 기원전 6세기에 바벨론 포로시절이 끝이나고 페르시아제국으로부터 자유한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기록된 것이다. 창세기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국가의 재건축을 준비하면서 여러가지 전승들(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 수집하여 편집한 책이다. 창조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다. 타향에서 오랜 포로생활이 끝난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은 하늘과 땅과 만물이 모두 새롭게 보였고 하느님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할 비전이 생겼다. 이것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없는 신비스러운 체험이었다. 새로운 힘과 용기와 희망과 기쁨이 억제할 없이 솟구쳐 올랐다.

 

창세기는 2500년 전에삼층 세계관 가진 고대 유대인들이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새로운 하늘을 가슴으로 체험한 전설적인 이야기이다. 고대인들은 내면으로부터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신앙과 삶, 창조성 하느님 즉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를 깨달았고 모든 체험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성서학자들에 따르면 기원 전 6세기에 쓰여진 창세기는 문학 형식에 있어서 기원 전 10세기에 쓰여진 호머의 서사시들과 매우 흡사하다. 창조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창세기는 역사책이나 과학책이 아니라 서사시적인 신화이다. 21세기의 양자 물리학에 근거한 우주관을 가진 현대인들이 고대 신화를 문자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언어 도단이다. 더욱이 성서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고 무수한 사본들만이 존재한다. 현대 성서는 그 사본들 중에서 부분적으로 선별한 것이다. 성서는 인간이 내면에서 체험한 하느님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사본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성서는 인간들의 생존의 두려움과 욕심과 편견과 사심 때문에 오류와 모순투성이지만 우주적이고 궁극적인 하느님의진리가 담겨져 있기에 진실한 책이다. 

인간의 언어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한계성을 초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신화이다. 신화는 허황된 이야기 또는 여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신화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하느님, 인간과 자연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화해를 이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화는  인간들이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이야기’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신화는 항상 인간과 함께 존재한다. 왜냐하면 신화는 인간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체험하도록 격려하고 도와주기 때문이다. 신화는 단순히 동화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확신하는 종교적이고 영적인 이야기이다. 신화는 인간의 본능적인 정체성이다. 영국의 신학자 큐핏은하느님은 인간의 신화’라고 말한다.


성서를 직역주의/근본주의로부터 해방시키고 새롭게 읽음으로써 성서를 신화라고 이해하는 것은 불신앙이나 이단이 아니다. 오히려 심층의 신앙인, 참 인간이 되는 구원의 길이다. 성서를 해방시키는 것은 새로운 시대에 몸과 이성과 감성과 영혼이 새로운 생명, 새로운 삶으로의 시작이다. 또한 이 순간 새로운 신화가 시작되는 때이다. 성서를 새롭게 읽는 것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종교적 감각을 갖고 새로운 세상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다.* (참고: Marcus J. Borg, ‘성경 새롭게 다시 일기,’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6); 존 쉘비 스퐁, ‘성경을 해방시켜라’, 한국기독교연구소 (2002); 돈 큐핏, 예수 정신에 따른 기독교 개혁’, 한국기독교연구소 (2006); 존 도미닉 크로산, ‘어두운 간격’, 한국기독교연구소 (2009); Joseph Campbell, The Power of Myth, Anchor Books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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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5-12-0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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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님, 안녕하세요. 제가 문제제기하는 것이 그냥 따질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사람마다 관심분야가 다르고 아는 것도 다르고 이해도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동안의 늘봄님의 글은 신화를 신화로 읽기보다는 계몽주의 이후 신화파괴나 탈신화화의 기획속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신화해석이 등장해서 좀 당황스러운데요. 역사와 신화의 문제를 늘봄님께서는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 개인적 고백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직 역사와 신화의 관계문제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서 이것을 극복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늘봄님은 스퐁과 캠벨을 어떻게 연결하고 극복하시는지 말씀해 주시는 것도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그 동안의 늘봄님의 글들은 당위적인 것, 즉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은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제 또 하나 첨가하셔서 성서를 신화학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말씀을 하셔서 아직 늘봄님의 구체적 주장을 읽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역사와 신화의 관계의 문제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의견은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늘봄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올림

늘봄  |  2015-12-0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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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캠벨 처럼 신화 전문가는 아니지만, 크로산이 신화와 예수의 비유를 비교하는 데에서 신화가 무엇인지 배웁니다. 신화에 대해서 저의 생각을 위의 글에 설명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최선입니다. 캠벨은 오늘 고대 신화를 어떻게 재해석해서 인간의 능력을 마음껏 드러내며 살아 갈 것인가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참고: 'Myths To Live By,' 1972) 신화는 역사의 산물입니다. 인간은 언어의 창조자이고 대단히 독창적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한계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도미닉 크로산은 신화는 언어의 한계이고, 비유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참고: 'The Dark Interval,' 1998) 신화는 영원히 변하지 않고 문자적으로 읽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흐름에 따라 신화는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고대에 기록된 기독교 신화(성서), 희랍 신화, 로마 신화, 한국 신화 등은 그 시대의 역사적 환경에서 궁극적인 실재와 세계관을 드러냈습니다. 신화는 영원히 존재하겠지만 시대에 따라 재해석 (캠벨의 말에 의하면 재창조 re-creation)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이해하고 있는 신화와 역사의 관계이며, 성서 뿐만아니라 다른 종교들의 경전들, 동양고전들을 이러한 시각으로 읽습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5-12-0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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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님,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신세지겠습니다. 캠벨의 [신화의 힘]은 엘리아데의 [종교형태론]과 [우주와 역사] 등 딱 21년 전 종교공부하는 친구들과 입학 전 함께 세미나 했던 책이었죠. 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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