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시절 통혁당 사건 무기수로 20년간 감옥생활을 하고 풀려나와 성공회대학 교수로 제직했던 신영복 교수가 어제 떠나셨다. 신 교수가 남긴 책들 중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1998년) 서울에서 11개국 기독교 교회 대표들이 모여 '한반도 평화통일 심포지움'을 열었을 때캐나다연합교회 대표로 참석했다. 그 때에 신영복 교수가 초대되어 '관계론과 존재론'이란 주제의 강연을 들었다.
신 교수의 강연은 나의 신학과 신앙이 새롭게 눈을 뜨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을 인용해서 자신이 감옥에서 깨달은 '관계론'을 밝혔다. '야간 비행' 이야기 중에 아프리카 사막에서 조난당한 비행기 조종사는 자신의 생존을 걱정하기 보다는 집에서 자신 때문에 심하게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누가 조난자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다시 말해, 조종사는 사막 한 폭판에 떨어진 자신이 조난자가 아니라, 집에서 나를 위해 걱정하고 있는 가족들이 조난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 교수는 강연에서 고백하기를 사형선고에서 무기수로 감옥생활하면서 언제 세상으로 나갈지 알 수 없는 암담한 상황에서 자신이 조난자가 아니라, 집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조난자들이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기적인 욕심과 생존의 두려움이라는 '존재론'을 떠나 보내고, 다른 사람들의 웰빙을 가장 우선적으로 걱정하는 '관계론'을 강조했다.
강연의 결론에서 신 교수는 남북한 통일에 대하여 무력적으로 남한 만이 생존하는 통일, 군사적으로 남한이 북한을 점령하고 통제하는 통일은 남북한 모두에게 불행하다고 평화통일의 '상호의존관계론'을 천명했다. 한반도에 반드시 남북한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남북한이 동서독 통일처럼 관계론적인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남북한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라는 통일의 장애물을 넘어서야 한다. 남한 정부는 대북한 정책을 신 교수의 관계론에 입각해서 수정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빛 정책'은 남북한 상호존중하는 관계론의 정책이었다.
나는 신영복 교수의 관계론에서 기독교 교회의 세계복음화의 오류와 모순을 발견했다. 사실상 21세기에 전 세계를 기독교화하는 존재론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세계의 미래의 물결은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다양함을 환영하는 우주적 세계관으로 흘러가고 있다. 기독교가 세계를 제패하던 시대는 끝이 났다. 이제는 어느 특정 종교나 인종이 세계를 통제할 수 없는 관계론의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인들의 어두운 마음을 밝혀주던 큰 등불이 꺼졌다.
신영복 교수의 정신이 후세대들에게 끊임없이 전승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