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하면 2007년까지 ‘강소국’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 극찬을 아끼지 않던 한국 언론의 헛발질이 생각난다. 2008년부터 미국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부도 위기에 내몰린 아이슬란드는 지금도 허우적거린다. 대처보다 더 대처리즘에 충실했던 아이슬란드는 굴뚝산업 하나 없이 금융자본 천국이란 허상에 부풀었다. 모든 은행을 민영화하고 외국자본에 완전 개방한 뒤 피오르 해안 절경을 부수고 호텔을 마구 지어 댔다. 2007년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았던 1인당 국민소득은 2009년 1인당 부채 5억원으로 곤두박질쳤지만, 아이슬란드를 칭송했던 어떤 한국 언론도 반성하지 않았다. 사실 헛발질은 참여정부가 자초했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통상부는 2005년 12월15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 자유무역협정(FTA)에 정식 서명했다. EFTA는 자칭 강소국이라는 아이슬란드·스위스·노르웨이·리히텐슈타인 4개 나라로 구성된 조직이다. 이날 서명에 참가한 외교통상부 관료는 한미 FTA 때 자주 등장하는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었다. 변절해 권력을 잡은 386 운동권은 평생 눈칫밥으로 살아온 관료들과 손잡고 자국 산업을 모두 거덜 내도 외국인 투자만 늘어나면 좋아했다. 그들은 돈이 돈을 만드는 허상을 성장이라고 굳게 믿었다. 지금도. <꽃보다 청춘>에선 나영석 PD가 배우 셋을 비행기에 태우려고 유인한 식당에서 여행지를 발표하면서 “오로라로 유명한 아이슬란드”라고 외친다. 물론 배우들은 함성을 지른다. 그러나 오로라 하면 캐나다 북서쪽 경상남도 땅의 2배가 넘는 거대한 빙하호수 그레이트슬레이브 호숫가의 ‘옐로나이프’다. 유럽 백인들이 1771년 이곳에 왔을 때 원주민 데네족이 사용하는 구리로 만든 노란 칼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캐나다 도시 이름이 거의 이런 식이다. 옐로나이프 위엔 백인이 발견했다는 뜻의 ‘디스커버리’라는 마을도 있다. 옐로나이프 아래 ‘우드 버팔로’는 나무와 버팔로가 많아서다. 그 옆엔 우라늄 광산이 개발된 ‘우라늄시티’도 있다. 3천여 주민들은 우라늄이란 섬뜩한 마을 이름을 어떻게 생각할까. 우라늄시티가 속한 서스캐처원주에 있는 인구 2천600여명의 라로슈란 작은 마을에서 지난주 끔찍한 총기 사건이 일어났다.(서울신문 1월25일 12면) 17살 데네족 소년이 집과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형제 2명과 교사 2명이 죽고 7명이 부상했다. 서울신문은 이를 '가난과 인종차별이 만든 라로슈의 비극'이라고 보도했다. 반만 맞는 말이다. 사냥과 낚시로 살아온 데네족이 주민의 96%인 라로슈는 20%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과 주 평균보다 3.4배나 높은 자살률로 신음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이 가난해진 나머지 절반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서스캐처원의 원주민들은 19세기 두 번의 봉기를 거치면서 깨어나 1944년 북미에서 첫 사회주의 정부를 탄생시켰다. 집권 협동사회연합당(CCF)은 부족한 농산물로 인한 가격 폭등을 막고 62년엔 의사들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공공의료를 도입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64년 석유·천연가스·칼륨·우라늄 개발에 눈독 들인 자본 앞에서 우파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렇게 들어선 지방정부는 개발이익 대부분을 동부 대도시로 빼내 갔고, 결국 주민들은 불균형 발전의 극단을 맛봤다. 라로슈 총기 사건에서 특이한 게 또 하나 있다. 어떤 캐나다 언론도 경찰에 구속된 10대 범인의 이름과 얼굴을 보도하지 않았다. 캐나다 청소년 형사소송법이 이를 엄격히 금지해서다. 캐나다 언론은 대형사건 앞에서도 차분하고 신중한 보도로 정평이 나 있다. 일만 터지면 앞다퉈 아귀다툼 벌이다가 곳곳에서 오보를 쏟아 내는 우리 언론과 많이 다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