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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달력
늘 한 자리에 꿈적않고 서서
계절을 견디며 풍상을 겪는 몸태로
내 침상위 창문너머 걸려 있는
몇 천겹살 숫자를 달고 있는
늙은 느릅나무,
이른 새벽마다 누운 자세로
하루를 살피는 시간
휘뿌연 새벽빛 걷히며
서서히 옥빛 하늘의 배경 사이로
오늘의 숫자를 읽어내다
달이 바뀐 4월의 휘어진 등걸너머
가지 끝 마디마다 속깊이 품었던
새들의 부리만한 촉수들
주둥이를 모아 삐죽이 혀를 내민다
한 날이 지나면
확대대는 문자의 크기들
주말엔 붉은 쟈킷을 걸치는 휴일도 없이
연두 연두 초록 초록, 진초록...
그렇게 한 철 푸르다가
때 되면 다 털어준 빈주머니에
철든 나이테를 챙기며
또 한 해의 세월을 몸에 감는
고령의 굽은 등
천세력 카렌다로 허공에 걸린채
사철 하늘이 내린 옷만을 입고 서 있다
간만에 CNdream 에 들렸다가, 귀한 시 한 편 읽습니다
이따금,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지구 상에서 가장 우아한 영혼을 지닌 존재는 나무가 아닐까 하고
- 이런 말을 하면,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 칭하는 인간들이 펄펄 뛸까요 (웃음)
나무 달력...
그 천세력(天歲曆, 혹은千歲曆)
나이테로 새겨진, 그 달력은 참 많은 걸 말해주고 있네요
매일 매일의 날마다 푸른 영혼의 방점(傍點)을 찍으며 우리들에게
무언(無言)의 가르침을 줍니다
시를 감상하니, 선배 시인의 시 한 편도 떠올라 옮겨봅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옵고, 香筆하소서
나무들은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 정현종, <나무에 깃들여>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현종鄭玄宗 시인은 大光高와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뒤 첫 시집 '사물의 꿈'(1972)을 시작으로
'나는 별아저씨',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견딜 수 없네' 등의 시집을 냈다. '고통의 축제' 등 시선집, '숨과 꿈',
'생명의 황홀' 등의 산문집도 있다.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受賞했다.
오랫만에 고교 선배의 시를 대한다.
그의 시편들에선 언제나 갈등보다는,
조화(調和)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생명의 내적 교감(交感)을 통해서, 자연에의 경이감,
나아가서는 생명의 기쁨 같은 걸 말한다 할까.
오늘의 시에서도, '나무'를 통해 말해지는
생명의 소리가 선연(鮮然)하다.
생각하면... 오늘의 인간들은 얼마나 많은 자연성(自然性)을
상실해 가고 있는지, 그리고 또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지.
짧은 詩이지만...
'나무'라는 상징을 통해서 표현되는 생명으로서의 일체감은
공동체 안에서 조화로운 삶의 실현으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의 아름다운 질서를 우리들에게 하나의 표상(表象)으로
환기(喚起)해주고 있다.
새삼, '나무'는 태초(太初)의 언어로 오늘도 우리들에게
자연적 존재로서 <생명의 자기실현>을 말해주고 있음을
깨달으며...
-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