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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기념관들이 폐허로 변하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 보존구역도 그 사례 중 하나다. 박근혜 정권 들어 벌어지기 시작한 현상이다. 2 년 전 제주 4.3 평화기념관에 갔을 때 관리상태가 엉망인 그 기념관 관리자에게 "박근혜가 돈을 안주냐?" 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남영동 대공분실 보존구역 역시 마찬가지였다. 싸르니아가 남영동을 찾았을 때 고문실로 사용됐던 조사실들이 있는 5 층 입구에는 석유통과 플라스틱 바스켓 같은 것이 진입을 방해하고 있었다. 기념실은 텅 빈 창고처럼 방치되고 있었다. 안내원은 없었다.
청와대가, 무례하기 짝이없는 건달시니어 집단을 직접 사주하여 친박 시위를 organizing 할 정도이니, 그런 무모한 정권이 인권유린의 기억들을 보란듯이 파괴하고 있는 것이 전혀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적어도 이명박 정권은 보수정권이라해도 이념적 극우성을 띄지는 않았기 때문에 역사적 상징물들을 파괴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박근혜 정권은 다르다. 청와대 참모조직은 오로지 박근혜 대통령 한 사람의 기분을 맟추고 의지에 복종하기 위해 원칙도 조직의 업무한계와 계통도 없이 오합지졸처럼 준동하는 준양아치 집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역사적 상징물들에 대한 방치와 파괴행위는 정권의 무지와 무관심에서 초래된 현상이라기보다는, 사전에 의도되고 기획된 비행의 결과로 봐야 한다.
싸르니아가 남영동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1981 년 여름이었다. 광민사라는 출판사가 있었다. 당시 필독서처럼 여겨지고 있었던 '노동의 역사' 라든가 '자본주의의 발전구조' 같은 책들을 출판한 꽤 유명한 출판사였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출판사 사장이 불법연행되어 두 달 째 행방불명됐는데, 남영동으로 끌려가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뉴스나 신문에 난 것은 아니고, 당시 유통되던 팜플릿을 통해서 전해진 소식이었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무자비한 고문수사의 첫 신호탄으로 기록된 저 유명한 학림사건 역시 이렇게 남영동 대공분실 5 층 조사실에서 시작됐다.
고문실은 의례 지하에 설치될 것 같지만, 이 건물 고문실들은 지상 5 층에 있었다. 채광량을 최소화하여 피구금자들의 공포심을 최대한 자극하고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가는 세로창, 이동 중 공간감각을 잃게 하는 나선형 계단, 피구금자들을 장기 구금할 수 있도록 모든 고문실에 설치된 변기와 세면대. 건물의 모든 설계는 고문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지름이 10 센티미터가 될까말까한 세로창을 열면 1 호선 전철 남역역을 지나가는 국철과 전철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엉뚱한 질문같지만, 도대체 어떤 넘이 의뢰를 받고 이 건물을 설계했을까?
이 건물을 설계한 설계자는 위커힐, 주한미국대사관, 타워호텔, 경동교회,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 등을 설계한 당대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로 알려진 김수근이다.
이 당대 최고로 유명한 건축가는 7 ~ 80 년대 민주화운동의 상징 중 하나인 경동교회와 고문살인의 상징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건물을 함께 자신의 손으로 설계했다. 알파고 건축가도 아닌 인간 건축가가 어떻게 이런 가치충돌적이고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갑자기 작곡가 안익태가 생각났다. 안익태 역시 (불가리아 민요를 표절했든 어쨌든) 애국가를 작곡했고 동시에 황국신민 이자 나치의 우방동맹국 제국일본시민의 자격으로 나치독일의 예술선전단 베를린 필하모닉 오키스트라에서 미친듯이 지휘봉을 휘둘렀다.
안악태나 김수근이나,, 이 영혼이 없는 천재 예술가들은 비극적이리만큼 치욕적인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걸어 온 셈이다.
어쨌든,,,,,,
박근혜 정권은 무슨 생각으로 민주장정의 상징들과 기념관들을 괴사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떨쳐버릴 수 없는 공범의식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은 밤마다 자면서 '여소야대의 국회를 해산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꿈'을 꾸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기를 모욕했다고 생각하는 반대자들을 오밤중에 강제연행해서 저 건물 5 층 고문실에 가둬두는 상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꿈에서 정보기관 책임자에게 이렇게 지시를 내릴 것이다.
"종북세력들은 나중에 체포하고 우선 유승민이하고 비박 리더들인가 뭔가하는 새누리당 놈들부터 남영동으로 끌고 가 !!"
참, BGM 클레멘타인은 저 건물에 자주 고문출장을 오곤 했던 경기도경 소속 이근안 경감이 휘파람으로 부르곤 했던 노래라고 한다.
그는 전기고문을 할 때는 전압스위치를 조절하거나 브레이커를 열고 닫으면서 주로 선데이서을같은 주간지를 읽었고, 물고문을 할 때는 한 손에 샤워기를 들고 클레멘타인을 불렀던 모양이다.
텅 빈 창고로 변해버린 채 방치되어 있는 '박종철 기념전시실' (사진 위)
관람객들 발걸려 자빠져라~ 는 의미로 보존구역 입구를 막고 있는 석유통과 바스켓 (사진 아래)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인권기념관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