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와의 동거
언제 부턴가 벌레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생의 합일점을 꿈꾸던 시절
우리는 그가 깔고 앉아 베어먹던
책 보따리 한 짐으로
신혼방이 달린 작은 점방에 세 들었다
처음 벌려놓은 작은 간판의 서점엔
그의 봉급 만큼씩
끌려 온 책들이
서가에 사선으로 기댄 채
벌레가 먼저 달고 쓴맛을 파먹은 후
다른 이의 손에 팔려 나갔다
그 것이
궁핍한 가계부에 도움이 되는 길이었다.
십 수년을
제법 커진 방 벗어 나와
벌레는 애벌레 식구를 끌고
낯선 땅 흙
냄새를 흠흠대며
또 다른 문자를 파먹기 시작했다
속독에 난독을 해찰하며
인문의 강을 헤엄쳐
장강의 큰 물길을
사유하는 긴 세월
한 세대를 살아가며
가혹한 몸들이 묻고 간 뇌의 영역에서
한 줄 한 줄 뽑아내는 우주의 길을
더듬으며
노쇠해진 벌레의 촉은
오늘도 몸의 주름을 멈추지 않고
방안 가득 그의 성을 쌓고 있다
생의 허물 벗는
날
혼의 날개는
문자가 담긴 지면의 무게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