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훈민정음 창제의 진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리더에 열광하면 바보가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리더란 과대평가된 정치리더일 수도 있고 이미 고인이 된 위인일 수도 있으며 종교적 도그마일 수도 있습니다.
지난 번 올렸던 종묘여행기를 쓴 이유는 한국방문 당시 몇 분과의 대화를 통해 아주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지배사상과 문헌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가 진보진영이 아닌 뉴라이트 논객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 입니다. 사대부 지배구조가 완결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막동 선생에 대한 집중공격 역시 뉴라이트 역사학자 또는 경제학자들에 의해 감행되고 있었습니다.
희한한 일은, 몇 년 전 노론권력을 비판하는데 열을 올리던 진보진영 논객들은 어찌된 일인지 이막동 선생의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 대응을 하고 있다는 점 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반론을 하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이막동 선생 문제에 대해서는 반론할 자료도 의지도 없기 때문일 것 입니다. 물론 덮어놓고 그를 더이상 감싸야 할 이유도 없었을 것 입니다.
뉴라이트의 의도는 짐작이 갑니다. 조선의 사상과 그 사상의 토대를 마련한 왕조 전기의 우상화되다시피한 왕들을 직접 공격함으로써 조선이 어차피 근대국가로 진입한 일본에 의해 망해야 할 나라였다는 논리적 근거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 일 겁니다.
그동안 꿀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하던 국사학계가 아니라 외국 연구자들에 의해 진작부터 이막동 선생의 오명을 드러나게 한 종천법 문제는 둘째치고서라도, 이막동 선생을 영웅으로 만드는데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던 훈민정음 창제의 배경과 비하인드 스토리는 불과 몇 년 전 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이야기들 입니다. 쓸데없는 정치가십 이외에는 관심있는 분야가 별로 없는 것 같은 한국언론에는 이런 움직임들이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고 간 것 뿐 입니다.
세밀한 진실의 추구는 학자들이나 해당분야 활동가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진영논리나 당파간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금기와 우상을 무너뜨리는 연구자들의 용기’만큼은 매력적입니다. 그런 노력들에 의해 사물의 다른 면들이 새롭게 발견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류의 담론을 가져오는 이유가 단지 심심해서, 또는 누구를 의식화시키기 위해서, 또는 디테일한 지식을 뽐 내기 위해서 라고 치부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 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든 각자의 자유인데, 세상사란 사리사욕의 동기로 출발한 행동들이 공익적 결과로 나타난다는 보편적 현상을 인지하고 있다면 상대의 적대적 행동에서도 선하게 취할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며칠간 씨엔드림에서 전개된 이막동 사태는 제 글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제가 한 번은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의 진짜 배경이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함은 예민하면서도 다이내믹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도 무척 궁금합니다. 전 글에서 제가 농담처럼 써 올린 훈민정음 해례는 그냥 제 짐작일 뿐 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최초의 동기는 그거 이외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싸르니아는 이막동 선생의 훈민정음 창제의 진짜 이유를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기 위해서는 14 세기 후반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를 세밀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국어학계와 국사학계 내부에서는 이미 옛날부터 훈민정음 창제 이유가 명태조 홍무제의 한자음 개신에 따른 조선관리에 대한 강력한 발음교정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는 게 정설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원로국어학자 이숭녕이 최초로 문제제기했는데, 그는 훈민정음 창제과정이 명나라의 등장과 홍무정운의 제정에 따른 것이었다고 실토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는 “훈민정음 창제는 결코 민족적 자각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성리학 음운학, 가장 중요하게는 외교적 필요성에 입각한 것” 이라는 결론을 일찌감치 내렸습니다.
그는 원로가 되어서야 “지금까지 훈민정음 제정 배경에 대한 고찰이 결여되었고, 오직 비판없는 찬사만이 난무하는 바람에 진상을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훈민정음이라는 명칭에서 바른소리라는 의미는 다른 게 아니라 철저하게 중국어 발음을 올바르게 내기 위한 것이라는 연구자들의 음운학적 설명은 지루하고 복잡하므로 생략합니다. 전문적인 훈민정음 연구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것 까지 이야기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치적 배경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뻔 한 것 같습니다. 세종실록을 정밀 연구한 사학자 정다함의 논문 <여말선초의 동아시아 질서와 조선에서의 한어, 한이문, 훈민정음> 중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목은 명황제 홍무제가 조선 조정에 정확하고 올바른 중국어 구사를 요구함에 따라 당시 이막동 정부가 어떻게 이를 수용하고 훈민정음 개발에 착수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홍무제는 『홍무정운』을 정하여 명의 새로운 음운 표준을 제시하는가 하면, 表箋의 모범적인 양식을 정하여 천하에 반포하였다. 이에 따라서 조선의 사신과 역관들은 명의 漢語를 올바로 구사해야 했고, 명에 보내는 외교문서도 명의 漢吏文의 격식에 따라 작성해야 했다. 실제로 조선이 보낸 표전의 자구를 명 태조가 트집을 잡아 외교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역관뿐만 아니라 문과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자들을 외교문서를 담당하는 승문원에 우선적으로 배치하여 한어 및 한이문을 배우게 하고, 양반층의 연소총민한 의관자제, 생원, 진사, 문신들에게 이를 익히게 하는 제도와 관행이 훈민정음 창제 이전인 세종대 초중반에 집중적으로 마련되었다. 나아가서 명이 제시한 한어의 표준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한어의 소리를 나타낼 수 있는 표음문자 체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때문에 중국 음운학의 원리를 터득하고 이를 응용하고 보완하여 한자의 표준음을 나타낼 수 있는 표음문자 체계를 고안하게 되었다. 당연히 세종이 훈민정음으로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이 『홍무정운』의 譯訓이었다. 또한 한어습독관들이 홍무정운의 표준 한어 발음을 언문 즉 훈민정음을 사용하여 익히게 된다."
쉽게 말해 조선관리들에게 중국어 발음을 훈련시킬 수 있는 발음기호를 개발하라는 명나라 정부의 요구에 따라 훈민정음 제작에 착수했다는 의미입니다. 해당 전문가들의 견해이기는 해도 이런 이야기들이 당시의 역사 사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지는 확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하다보면 리더에 열광하고, 역사를 존경과 감동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세종을 가리켜 이막동 선생이라고 했다고 해서 그게 무슨 한국인 전체를 공격하는 큰 일 날 행동인 양 서로 감정을 돋을 일도 없다는 느낌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기루같은 집단정서에 굴복하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각자의 생각에 달린 문제이겠지만, 그런 생각을 남에게까지 강요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제가 이막동 선생에게 고마운 점이 있다면, 동기야 어찌됐든 훈민정음 제작이 결과적 선으로 귀착되어 6 백 년이 지난 오늘을 살고 있는 싸르니아도 한글이라는 독창적인 표음문자로 거듭난 훈민정음의 발음기호들을 도구삼아 이렇게 재잘재잘 자판을 두들기며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일 것 입니다.
감정상할 표현이나 톤의 변화없이 그냥 담담하게 조용조용 하고 싶은 이야기 자유롭게 나누는 씨엔드림 게시판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