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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와 루이지애나에서 백인경찰 8 명이 표적사살당하는 사건은 미국의 인종갈등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됐다. 증오와 폭력의 연쇄확산이 벡인이건 흑인이건 가리지 않고 미국 전체를 공멸로 이끌고야 말 것이라는 두려움의 공감대가 확산된 것이다.
미친놈처럼 날뛰던 트럼프가 주춤한 것도 뜨거운 7 월을 달구웠던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현실적인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념을 가진 인간이라기보다는 비즈니스 마인드로 대권에 도전하는 '정상배'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종문제를 부추킬 수 있는 아이템을 담은 판매전략이 얼마나 위험한지 쉽게 깨달은 듯하다.
우선 미국은 유럽이 아니다. 한 민족은 고사하고 한 인종 (백인)의 인구점유비율이 60 퍼센트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 대도시들은 거의 예외없이 과거 주류인종이었던 백인이 소수로 전락한지 오래다.
내가 만나 미국대선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 중에는 지금까지 트럼프에게 표를 주겠다는 사람은 커녕 그를 온전한 정신을 가진 인간취급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들 중에는 투표권이 있는 미국인들도 있었고 투표권이 없는 캐나다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속으로는 트럼프를 지지하면서도 겉으로 창피하니까 속마음과는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자극적인 소재들만을 추려서 편집하는 상업적 주류 저널리즘이나, 그것들을 그대로 베껴 쓰는듯한 (가끔 오역까지 곁들이면서) 한국신문들을 보면 트럼프는 히틀러 비슷한 인종주의자이거나 정신이 반 쯤 나간 넘으로 밖에는 그려지지 않는다. 아마도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할 것이고, 모슬렘 입국심사를 차별적으로 강화해야 하며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합법거주권 부여를 절대 반대한다는 그의 발언 때문일 것이다.
근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지지율이 왜 40 퍼센트를 넘느냐는 거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트럼프가 그저 단순 무식한 인종주의자라면 미국인구의 인종별 구성비율 + 보편적 상식을 고려할 때 이런 지지율은 나올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를 찾아보아야하는데 주류언론들은 그런 이유찾기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 주목을 받지 못할 따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지 따분하더라도 할 말은 해야한다.
저널리즘의 왜곡에 휘둘려 시야가 좁아진 외국인들은 왜 미국의 소수인종 중 상당수가 그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는지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엘리트 계급에 속하는 일부 한국계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단체까지 만들었다는데, 클리블랜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찬조연설까지 한 어느 한국계 의사는 어느 한국신문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가 불법체류자추방에 적극 찬성하기 때문" 이라고 당당하게 밝히기도 했다. 미국에서 불법체류하고 있는 한국인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 그들은 그 의사를 향해 저런 XX년 (여성이다) 이 있나 !! 하고 욕설을 퍼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적어도 미국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받은 세대들이 출신국가나 인종배경에 관계없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민족국가 미국이 어떻게 제국의 지위를 누리며 유지될 수 있는지 그 강력한 파워의 근원도 추적해 볼 수 있다. 싸르니아는 이런 점에서만큼은 그 한국계 미국인들의 정치적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선택에 대해 비난만 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보다 훨씬 많은 미국인들은 트럼프 후보 자체에 반대한다. 미국인들이 스스로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정도로 통탄하는 그의 본질적 문제란 인종갈등을 부추킬 수 있는 발언들이라기보다는, 중학교 3 학년 수준 정도가 될까말까한 그의 전반적 세계관의 단순함일 것이다. 클리블랜드 후보지명수락연설에서 그의 지력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폭로된 후 지지세력 내부에서조차 그에 대한 실망감은 고조되고 있다. 헌재 엄청난 숫자의 미국인들이 만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캐나다로 이민을 가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트럼프같은 인물을 자기 나라의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자존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조지 W 부시 (갑자기 부시가 그리워지시는가?) 같은 인물은 자기가 공화당의 마지막 대통령이 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까지 했다. 트럼프가 대통령 되는 걸 두고보느니 자기는 차라리 클린턴에게 투표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는 말이다.
트럼프는 러스트벨트의 몰락한 과거의 중산층을 자신의 지지층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보호무역강화와 불법체류자 추방을 강조했다. 가능할까?
싸르니아의 생각으로는 미국이 제국으로서의 지위포기를 의미하는 자유무역 중단선언을 한다거나, 내란적 폭동사태를 각오하고 2 천 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불법체류자들을 추방하는 작업에 착수하느니 차라리 미국에서는 별 쓸모가 없어진 러스트벭트의 반실업 노동자들을 앞으로 노동인구가 모자라게 될 한국같은 나라로 이민을 보내는 게 훨씬 더 실현가능한 대안일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이 난세에 직면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제국 중 여전히 가장 강력한 제국이다.
식량을 스스로 자급하는 나라일 뿐 아니라 셰일혁명으로 향후 수 백 년 간 에너지 걱정조차 할 필요가 없는 나라다.
게다가 앞으로 국제관계와 관련해 위험부담을 짊어질 필요도 별로 없는 나라다.
호르무즈해협에 대규모 항모강습단을 일년내내 상주시키며 천문학적 액수의 군사비를 지출할 필요도 없어졌다. (셰일혁명이 초래한 부메랑 저유가로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는 미국 석유재벌들만 보면 안된다.
이런 강력하고 앞 길도 유망한 나라에서 왜 엉뚱하게 트럼프같은 작자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트럼프의 머리만큼이나 단순하다.
얼마든지 미국 혼자 (트럼프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흥청망청 먹고 살 수 있으니 앞으로 제국노롯 집어치우자는 '하류여론'의 반영이다.
이런 단순한 여론은 약 30 퍼센트 정도에 달하는, 사고구조가 별로 복잡하지 않은 유권자들에게서 나왔다.
흔히 생각하기를 제국이란 힘 약한 나라들을 못 살게 굴어 삥뜯는 불량배처럼 무엇을 빼앗아오는 나라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지만 그 반대인 경우가 더 허다하다.
세계의 경찰노롯을 하려면 돈도 많이들고 여기저기 많이 퍼 주어야 한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그 증거다.
그래서 제국은 언젠가는 결국 망하곤 하는데 미국은 아직 망할 기미가 없다. 스스로 발권력까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제는 그런 거 안 하겠다는 거다. 한국도 일본도 돈 안 내면 동맹관계 포기해도 좋고, 유럽도 마찬가지라고 협박한다.
근데 올해 11 뤟 8 일 만일 트럼프가 당선되고나서 실제 그가 떠들어왔던 이야기가 현실화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싸르니아는 점쟁이가 아니므로 여기에 대한 예측은 하지 않는게 좋겠다.
제국주의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선 당장 세계가 아주 위험해 질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는 한다.
미국군 항모강습단이 철수하고 미국이 분쟁개입중단을 선언한 중동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중국에서 들어오는 주요수입품에 수 백 퍼센트 씩 덤핑관세를 때린다면 중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무엇보다
이 희한한 꼴들을 전 세계의 자본흐름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월가의 금융자본들과 큰 손들이 언제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기만할까?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한 세계 곳곳에서는 어떤 돌발적이고 끔찍한 장면들이 등장할지 현재로서는 예측불허다.
힐러리 클린턴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이번만큼은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미국이 평화와 번영을 유지하는 힘은 개방과 다양성이다.
스스로 묘혈을 파는 짓인줄도 모르고 날뛰고 있는 멍청한 자들의 손에, 평범한 나라도 아닌, 제국의 4 년이 맡겨져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