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전 한국의 지인과 책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지인은 젊은 시절 심훈의 '상록수'를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다고 했다. 평소 좋은 책을 갈구하는 필자로서는 마음이 동했다. 상록수는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교과서에서도 본적이 있었을 만큼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봄에 한국을 갔다가 그 책을 구입해 얼마 전 다 읽었다.
1930년대경에 어느 시골에서 젊은이들이 벌이는 농촌 계몽운동이 배경이며 여기서 주인공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게 주된 줄거리다.
스토리 자체는 좋았다. 그 시절 힘들고 가난한 시골의 민중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계몽을 위해 애쓰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기 좋았고, 사랑 이야기도 애 뜻한 구석이 많았다. 당시 이런 현대문학은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읽으면서 계속 의문이 들었던 건, 일제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는 거였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계몽을 하고 사회 개혁 운동을 한다 해도 정작 당시 인민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갖은 수탈을 자행하던 원흉에 대해서는 일체 빼고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까 내용에 기운이 없고, 그냥 사랑타령만 하는 것처럼 보여 안타까움이 많았다.
이후 이 책의 끝에 평을 보니까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당시에는 일제의 검열로 인해 일본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지 못하게 했었다니 현실적인 어려움은 이해가 되지만 소설이 알맹이가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서평에는 이기영 작가의 소설 '고향'과 비교를 했다. 아무래도 좀더 현실적이고 투쟁적인, 당시 민중들의 삶을 그나마 좀더 표현한 ‘고향’이 그런 차원에선 좀더 낫다는 평이 있었다.
나는 마침 학창시절 구입해서 딱 한번만 보았던 이기영 작자의 소설 ‘고향’과 ‘두만강’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 상록수 이후에 다시 한번 읽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고향’에서도 일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좀더 현실에 가까운 투쟁 정신들을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이렇듯 현실적 제약이 커서 당시의 작품들은 실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는데, 그런 차원에서 볼 때 한국전쟁 이후 발표된 이기영 작가의 작품 ‘두만강(총 5권)’은 해방 이후 쓰여진 작품이라 아무런 제약 없이 당시 조선 민중들의 피해상황과 일제의 잔혹함, 친일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반 민족적 행위 등이 적나라하게 증언되고 있다. 각종 농민혁명들이 일어나던 한일합방 이전 조선후기부터, 합방 이후 1930년대까지를 다루는 이 소설에는 나라를 잃은 설움이 얼마나 큰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민중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할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적절한 책이라고 보여진다. 남한 땅은 여태껏 단 한번도 친일파를 처단해 본적이 없고, 지금까지도 친일파의 후손들이 나라의 기득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민족소설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질 뿐이다.
최근엔 모국 정부는 아이들 교과서를 군사독재시절에 쓰던 방법인 국정교과서(국가에서 교과서를 만들어 주는)로 돌리는 것을 확정했다.
시대와 역사를 거슬러 가고 있는 모국의 가슴 아픈 현실과 주변 강대국들 속에 끼어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남북한의 현실이 조선말기 때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실 앞에서 항일투쟁운동의 생생한 역사가 담긴 소설 ‘두만강’은 우리들이 현실을 깨닫고,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 할지를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나침반과 같은 책 이라고 보여진다.
이기영 작가는 1895년 충남 아산 출신으로 심훈과 비슷한 시기에 작품활동을 했으나 1924년 등단 후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해방 후에는 월북하여 조선예총위원장 등 각종 기관의 책임자로 활동하며 대작 ‘두만강’을 발표했다. 월북작가라고 해서 남한에서는 금서로 되어 있다가 80년대 민주항쟁 덕분으로 금서조치가 풀리면서 이기영 작가 및 여러 월북 작가들의 작품들이 남한 땅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이기영은 일제시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을 대표하는 작가로, 두 번의 카프사건으로 심한 옥고를 치렀고, 일제 말기에는 붓을 꺾고 은둔하며 농사를 짓기도 하였다. 절대 일제에 굴복하지 않았던 민족의 작가였던 것이고 그래서 두만강과 같은 명작을 발표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