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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공학의 귀재들이 기획해서 건의한 승부수로 보이는가?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지금 박근혜가 선택한 수는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지금 그는 자기 아버지가 밟았던 코스를 그대로 따라 가고 있다. 남은 인생을 교도소에서 보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만 끌면 지금보다 나쁜 일은 없을 거라는 예측이 엉뚱한 결단의 이유였을 것이다.
박근혜가 자기 아버지 생전에 가장 싫어했던 사람들이 있다. 김재규 박승규 유혁인 김종필 같은 사람이었다. 김재규와 박승규는 최태민을 수사했기 때문이었고 유혁인과 김종필은 자기를 애 취급하고 자기한테 굽신거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네 사람은 자기를 공주로 예우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운명의 해였던 그 해 1979 년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제명하는데 반대했던 사람들이었다.
대신 박근혜는 차지철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1979 년 10 월 26 일 오후 일곱 시 이십 분 쯤 종로구 궁정동에 있는 중앙정보부 안전가옥 대행사실에서 박정희에게 이런 말을 했다. "까불면 신민당이고 뭐고 탱크로 싹 깔아버리면 됩니다. 캄보디아에서도 3 백 만을 죽였는데 우리가 1 ~ 2 백 만 명 죽인다고 해서 문제될 거 없습니다"
차지철이 이런 말을 하기 일주일 전 박정희는 이런 말을 했다. "만일 서울에서 부산에서와 같은 시위사태가 발생하면 그때는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어. 4.19 때는 곽영주 (경무대 경찰서장) 이나 최인규 (내무부장관) 이 발포명령을 내려서 사형 당했지만 내가 대통령인데 누가 나한테 사형선고를 내리겠어?"
박근혜는 지난 12 일 밤 어디에 있었을까?
(내 직감이긴 하지만) 그는 청와대 본관에 있었다. 그는 혼자 있었다. 부속실 당직 직원들도 모두 밖으로 내 보내고 본관의 불을 모두 끈 채 세종로의 촛불바다를 증오의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표현한 이유는 세종로에서 숭례문 까지의 해발고도가 약 40 미터인데 비해 북악산 자락에 있는 청와대는 해수면으로부터 약 1 백 미터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증오란 공포가 투사된 감정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증오와 공포는 항상 함께 따라다닌다. 어느 때는 증오로 다른 어느 때는 공포심으로 표출된다. 증오의 표적을 향한 감정의 극단은 살의인데, 박정희의 '발포명령 발언'이나 차지철의 '백 만 명 학살' 발언은 자기들의 공포와 증오의 대상을 향한 살의의 직접적 표현이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주의자였던 어머니와 (김종필 씨의 증언에 따르면) 내성적이면서도 잔혹한 성격을 보유한 아버지의 나쁜 점만 골라서 그대로 물려받은 박근혜가 어두운 건물에 혼자 웅크리고 앉아 창 밖으로 자기에 대항하는 백만 인파를 바라보면서 느꼈던 감정은 공포에서 비롯된 살의였을 것이라는 게 싸르니아의 합리적 추측이다.
2008 년 6 월 어느 날 이명박은 불꺼진 건물 대신 청와대 뒷동산에 올라가서 당시 교역협상주권을 회복하자고 외치는 수 십 만 인파를 바라보면서 양희은의 노래 아침이슬이 생각났다고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명박근혜' 라는 합성이름을 많이 쓴다. 싸르니아는 단 한 번도 그런 합성이름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그 두 사람의 차별성을 일찌감치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그저 도둑놈이라면 박근혜는 악마다. 싸르니아는 박근혜가 참 보기드물게 못된 인간이라는 직감을 아주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악마라는 말이 거슬리시는가? 나라와 국민을 playing game 의 대상과 수단으로 보면서, 1 년 3 개월 밖에 남지 않은 자기 임기를 국가공동체의 존망과 안위보다 더 고귀한 가치로 취급하는 그 사악한 성품이 악마가 아니라면 뭐가 악마인가? 그런 나의 직감이 맞다면 박근혜의 반격은 '정무적이고 정치공학적'인 판단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다는 박근혜 본인의 살의에서 비롯된 발악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박근혜가 스스로 죽음으로 가는 길은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될 유혈사태를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극이다. 김동길은 '혁명' 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나이 90 에 갑자기 철이 난 사람이 두 명 있는데, 한 명은 김종필이고 다른 한 명은 김동길이다. 한 사람은 1926 년 생이고 다른 한 사람은 1927 년 생이다. 각각 만 90 이고 한국나이로 90 이다. 김동길은 박근혜의 반격에 격분이라도 했는지 나부터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혁명'을 이야기했다. 폭력을 불사하겠다는 의미다.
수구꼴통 할아버지 김종필이나 김동길을 나이 90 에 철들게 만들고, 상투적인 말이나 나쁜 말, 또는 상소리를 입에 담는 것을 천성적으로 싫어하는 싸르니아에 입에서 악마라는 말을 나오게 할만큼, 엉터리 같은 인간들이 보통사람들의 이성을 잃게 만들고 있다. 2012 년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투표했거나 지지의사를 공개적으로 표현했던 사람들 중 엄청난 수가 현재 죄책감과 울분으로 감정상태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놓였으며,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 전대미문의 파국을 일으킨 장본인이 정치공학적 판단에 근거한 반격을 시작한다고?
다른 말은 더 이상 할 게 없고,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분노에 차서 외쳐대는 이 말 한마디만 전하겠다.
"너도 반드시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