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 미네르바 VS '서울대' 강만수"
기사입력 2009-01-09 16:15 |최종수정2009-01-09 16:20
[기자의 눈] '학벌'에 집착하는 '아마추어'들
[프레시안 강이현 기자]
지난 8일 검찰은 인터넷경제논객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30대 남성을 긴급 체포했다. 아직 그가 '미네르바'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미 여론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발칵 뒤집힌 상태다.
그의 체포가 불러온 논란거리는 한두 개가 아니다. 검찰은 그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두고 허위사실 유포 혐의를 적용했다. 여론을 길들이고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공안 정국'이 본격화됐다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검찰이 언론에 흘린 첫 번째 정보는 그가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경제학과 관계없는 전문대를 졸업했고, 무직이라는 점이었다.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은 즉시 확대 재생산에 나섰다. 기사 제목은 관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미네르바는 전문대졸업 무직 30세男" (<동아일보>), "실체 드러난 '경제 대통령' 가짜에 놀아난 대한민국" (<중앙일보>) 등 보수 언론은 그의 학력과 경력에 초점을 맞췄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미네르바와 신정아의 가면무도회'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서 "저는 뭔가 이상하다는 감을 잡았었다"면서 "저는 분명 미네르바가 '아마츄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미네르바의 '학력' 하나만 보고도 그를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인지 알 수 있다는 논조는 기사 곳곳에 배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허가 찔린 건 누리꾼이 아니라 경제 관료와 경제 학계였다.
미네르바의 글 하나하나에 전사회적 이목이 쏠렸던 이유를 다시 짚어보자. 그의 글이 주목을 받았던 건 실물 경제에 대한 그의 예측이 맞아떨어지면서였다. 미네르바 사태는 학벌이 실력과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드러냈다. '전문대' 출신이라는 미네르바의 글이 해외 언론에서 '온라인 노스트라다무스'로 불리며 주목받는 동안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미국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은 강만수 장관은 세계적인 비웃음을 받았다. <로이터>는 한국 경제의 위기와 신뢰도 추락을 보도하며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판한 농담인 '리·만 브러더스(LeeMan Brothers)'이란 신조어를 소개했다.
검찰이 미네르바의 구직 활동을 도와주고 있다는 우스갯 소리도 나온다. 만약 그가 정말 미네르바라면 독학으로 실물 경제를 정확히 예측한 보기 드문 인재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 조·중·동을 위시한 언론 매체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미네르바의 집 주변을 탐문하고 주변인들을 쫓아다니며 그가 얼마나 '괴짜'인지 보여주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미네르바의 학력을 두고 조롱을 일삼는 보수 언론의 행태는 학벌주의에 찌든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그리고 어쩌면 '학력'과 '학연'에 기대 살아온 기자들 인식의 한계일 것이다. 그건 과거 신정아 씨의 학력 위조 사건에서 그들이 쏟아냈던 가십 기사의 수준과도 다르지 않다. 신 씨의 '학력'을 믿고 그를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만들었던 건 바로 그 언론들이었다.
현 정부는 언제나 경쟁을 통해 당당히 실력을 드러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보수의 관점이라고 했다. 또 그것은 교사를 해직하면서까지 일제고사를 강행하고, 학교 정보를 공개하고 고교 선택제를 추진하는 현 정부 '교육 개혁'의 중심 철학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 그 어느 경제학자보다 정확한 전망을 한 미네르바가 바로 그들에 의해 '가짜' 전문가로 호도되는 상황이. 모든 경제 지표가 악화하는 데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강만수 장관이 '진짜'라고 불리는 이 현실이. 덧붙여, 국내 유수의 명문대를 나온 전여옥 의원의 맞춤법은 하루빨리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길 바란다.
강이현 기자 (sealovei@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