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초창기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파키스탄 출신의 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무슬림이였구요 그래서 당시 이슬람 종교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 왈 이슬람 경전인 코란(꾸란)에 대해서도 인생 살면서 한번은 꼭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지혜서라는 말을 했던 것을 계속 기억하고 있다가 얼마전 한국 갔을때 한국어판으로 코란 경전을 구입해 왔고 최근 읽어 보았습니다.
아래 위키백과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코란은 무함마드가 서기 610년쯤에 하나님(알라)으로부터 계시받은 내용들이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그의 제자들이 여러 시대를 걸쳐 기록물을 모아 집대성한 책입니다.
이슬람은 기독교와는 완전히 다른 종교로 알고 있었는데 이 경전은 구약성경을 기초로 하고 있는 기독교의 또 하나의 종파임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어요. 물론 개신교나 천주교에서는 이슬람을 인정하지는 않지만요.
파키스탄은 인도에서 분리된 나라이고 인도의 종교는 흰두교인데 파키스탄 사람이 왜 이슬람일까? 라고 의문이 들어 역사를 잠깐 들추어 보았더니 인도에는 약 10%의 이슬람파가 있었고 이들이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해서 파키스탄이란 나라가 탄생했다고 하네요. 파키스탄은 인도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다시 나뉘었는데 동 파키스탄은 지금의 방글라데시가 되었고 서 파키스탄인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파키스탄이라고 합니다.
캐나다에는 다양한 인종들이 살면서 우리 주변에도 무슬림들을 많이 볼수 있는데요, 미국 중심 역사관에 물들여져 있는 우리들은 이슬람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참에 코란도 읽어보고 이슬람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하면서 세계 역사와 종교에 대해 사고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은 소감을 한마디 적자면 좀 실망입니다. 내용 대부분이 계율, 율법의 나열입니다. 육법전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알라 신께서 자상하신 분 같아요. 본인이 하고 싶으신 말씀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내려 주시어 내용상 오해나 혼선의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기독교 성경은 이솝우화나 설화식으로 쓰여 있다 보니 해석이 제각각이라 종파도 많이 생기고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서로 싸우고 그러는데 이슬람 경전 코란은 그런 면에서는 분쟁의 여지는 상대적으로 적어 보입니다.
위키백과
꾸란(아랍어: أَلْقُرآن)또는 쿠란, 코란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610년 이후 23년간 알라(알라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에게 받은 계시를 구전으로 전하다가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여러 장소에서 여러 시대를 걸쳐 기록한 기록물들을 모아서 집대성한 책으로, 이 계시는 무함마드가 40세 경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히라산 동굴에서 천사 지브릴을 통해 처음 받았다.
꾸란은 까라아(َقَرَأ)(읽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 '낭송'이라는 뜻을 지닌다. '파알라'(َفَعَل)라는 동사에서 '푸을란'(فُعْلَان)이라는 명사로 변형된 형태이다. 꾸란은 계시되어 가르쳐지면, 제자들이 그것을 낙타의 골편이나 야자의 엽피, 양피지 등에 기록하였으며, (무함마드가 죽자마자) 이후 제1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 시절에 꾸란을 한 권으로 집대성해 보관하였고 , 제3대 칼리프 우스만 이븐 아판은 꾸란 결집위원회를 조직하여 최종적으로 집대성 작업을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꾸라이쉬 부족의 언어로 그 기재 방법을 통일하였으며, 정통본을 암송자인 하피즈와 함께 이슬람 각지로 파견하여 전파하도록 했으며, 이것이 현재 사용되고 있는 꾸란의 정본(定本)이다. 또한 이것을 달리 '이맘본' 또는 '오스만본'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늘날 쓰이는 꾸란은 이 정본을 원본으로 삼고 있다. 9세기 말부터 모음 기호(타쉬킬)가 붙어 표기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쓰이는 꾸란은 최초의 정본에서 타쉬킬(모음기호)이 추가된 형태이다(문법에 따라, 운율에 따른 읽는 법에 따를 수 있으나 그 내용은 같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는 꾸란의 구절로서 이슬람의 다섯 기둥 중의 하나인 샤하다(하나님 이외에는 경배받을 존재가 없으며,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이다)가 새겨져 있기 때문에 조기를 게양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방글라데시의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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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종교적 갈등과 경제적 격차
세계 제2위의 인구 대국인 인도, 그리고 그 동서에 있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는 약 60년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나라였다. 그러나 인도가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독립한 이후 정치적 격변을 겪으며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로 분리되었다. 이는 인도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힌두교도와 소수인 이슬람교도 사이의 뿌리 깊은 대립과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힌두교도가 대부분인 인도에 이슬람 세력의 침입이 시작된 것은 8세기부터였다. 조금씩 인도를 침입하던 이슬람 세력은 바부르가 인도의 혼란을 틈타 갠지스 강 유역을 정복하고 델리를 수도로 삼아 무굴 제국을 세우면서 완전히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무굴(Mughal)이란 아랍어로 ‘몽골’을 뜻하는데, 이는 바부르가 칭기즈 칸의 후손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무굴 제국은 다수 주민인 힌두교도를 회유하지 않고서는 인도를 하나의 제국으로 만들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힌두교도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힌두교도외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힘썼다. 이 때문에 무굴 제국은 인도 반도 전역으로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고 인도에는 이슬람 세력이 뿌리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급진적으로 인도 전체의 이슬람화를 추진하면서 힌두교도들의 불만을 사 결국 제국은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무굴 제국이 혼란에 빠진 18세기 후반,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영국은 자유 통상권을 얻으며 점차 세력을 넓혀 갔다. 19세기가 되자 마침내 영국은 무굴 제국을 무너뜨리고 인도를 식민지로 삼았다. 영국은 인도를 지배하면서 주민들 간의 단결을 막기 위해 서로 다른 민족과 종교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대립시키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힌두교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가 이끄는 인도국민회의와 이슬람교의 무함마드 알리지나가 이끄는 전인도이슬람연맹이 일치 단결하여 독립운동을 주도했고,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소수의 이슬람교도들은 힌두교의 지배에서 벗어나 따로 이슬람 국가를 세우려 했다. 마침내 인도에서 분리된 이슬람 국가가 세워졌는데, 이 나라가 바로 파키스탄이다. 이 과정에서 수십만 명이 사망했으며 영토가 확장되면서 1,500만 명의 주민들이 힌두교도는 인도로, 이슬람교도는 파키스탄으로 이동해야 했다.
1947년, 파키스탄은 처음에는 인도를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으로 분리된 형태로 독립했는데, 이는 벵골 분할령 때문이었다. 벵골 분할령이란 1903년 영국 지배 당시 행정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명분 아래 반영운동이 활발한 벵골 만 지역을 분할하여, 서벵골의 힌두교도 거주 지역과 동벵골의 이슬람교도 거주 지역으로 분리하여 통치한 것을 말한다. 동.서파키스탄은 지리적으로 1,600km나 떨어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언어, 문화, 전통에도 큰 차이가 있었지만 인도에 대한 불신으로 한 국가를 이루었을 뿐이었다. 정치와 경제는 모두 서파키스탄이 관장했기 때문에 열세에 있던 동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의 식민지나 다름없었다. 이에 동파키스탄은 독립을 요구했고, 이에 반대하는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 사이에 내전이 발발했다. 결국 1971년, 인도의 지원을 받은 동파키스탄은 전쟁에 승리하여 ‘벵골의 나라’를 뜻하는 방글라데시로 국명을 바꿔 독립했다. 현재도 인도에서는 다수의 힌두교도들과 소수의 이슬람교도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2008년 인도의 뭄바이에서 발생한 테러는 이슬람 세력인 파키스탄의 무장 단체에 의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