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평범하게 지나간 1월 7일 밤. 무수히 흘러간 수많은 날들처럼 그 날 역시 일에 지친 고단한 몸뚱어리를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발목까지 쌓여있는 눈들. 하지만 내가 아는 길이라고는 이 추운 겨울,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그 어둡고 눈 덮힌 산책로 하나. 그 날은 왠지 다른 길을 찾아보고 싶었다. 이 사람 발자국 하나 없는 눈길이 지겨워진 걸까. 혹은 너무도 외로운 이 가슴을,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 받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그 낯선 길에 나의 첫 발자국을 새겼다. 비록 생소한 길이었지만, 나와 같은 길 위를 걷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나도 이제는 더 이상 집으로 향하는 길이 외롭고 춥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다. 내 발 밑에는 수북이 쌓인 눈 대신 다른 이의 발자국들이 있었고, 또 내 뒤를 걷는 사람들의 발 밑에는 내가 세기고간 발자국들이 있겠지.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이 추운 겨울 그들에게서 피어 오르는 입김 하나하나가 얼어붙은 내 마음을 녹여주었다는 것을.
얼마나 더 갔을까. 주위는 온통 낯선 것들로 가득했고, 처음 가졌던 그 막연한 자신감은 서서히 불안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허나, 집으로 향하는 길은 모를지언정, 내가 가야 하는 곳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이 길이 아닌가?’
하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탓일까. 다시 발걸음을 돌리려 해도 돌아갈 길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위로해 주던 이름 모를 그 수많은 사람들도, 그 발자국들도. 그곳에 보이는 것이라곤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가엾은 영혼 하나. 어쩌면 처음부터 그곳에는 나 혼자 였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나의 외로움은 또다시 나를 갈팡질팡하는 유약한 어린아이로 만들어 버렸다. 걷고 또 걸었다. 내 이 공허한 마음을 숨기고자, 도시를 밝히는 그 불빛들을 향해 걸었다. 그 불빛들이 점점 더 선명해 질 때쯤,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익숙한 길거리, 익숙한 가로등, 그리고 익숙한 내 마음.
‘이제 다 왔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반가운 그 곳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사람 발자국 하나 없는 그 눈길. 도시의 불빛 대신 나를 환하게 비추고 있는 투명한 달빛. 그리고 채워진 내 마음. 그곳은 나의 집이 아니었다.
그곳은 그토록 나를 춥고 외롭게 했던 그 산책로의 입구였다.
그곳은 그토록 나를 춥고 외롭게 했던 닫혀진 그녀의 마음이었다.
허나 어쩌겠나.
내가 아는 길이라고는 이 춥고 외로운 길뿐인걸.
아무리 피하려고 애를 써봐도 결국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길인걸.
어쩌겠나.
언젠가 찾아올 봄 향기에 녹아 내릴 눈들을 그리며,
언젠가 잊혀질 그녀의 모습에 녹아 내릴 이 얼어붙은 마음을 그리며,
나는 오늘도 눈 위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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