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폴 틸리히(Paul Tillich) 선생은 언제나 자신을 경계선에 있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의 [경계선 상에서] (On the Boundary)라는 짦은 책은 자신의 경계선적 삶의 여정을 자서전적으로 엮어 놓은 것입니다.
이 책의 모든 목차는 경계선에 대한 서술입니다: 두 기질 사이에서,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 사회계급들 사이에서,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이론과 실천 사이에서, 타율과 자율 사이에서, 교회와 사회 사이에서, 종교와 문화 사이에서, 루터교적 종교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관념론과 맑시즘 사이에서, 모국과 이국 사이에서, 그리고 경계 그리고 경계. 또 경계. 이러한 경계선적 삶의 살얼음판에서 그는 양자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전체주의의 도래를 예상한 그의 글들은 나찌의 가시처럼 보였고, 그는 끝내 나찌의 박해로 인해 미국으로 와서 이민자의 삶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틸리히처럼 경계의 삶을 삽니다. 그 경계는 여러 이념과 삶의 현실성이 만들어 놓은 교차점에 놓인 것일 수 있고, 우리 개인이 생존을 위해서 그어놓은 자의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생존의 원리에서 우리는 속물적 삶과 고고함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그 경계의 삶에서 우린 때론 속물이 되고, 때론 고독의 병을 깊이 앓기도 합니다. 경계의 삶은 때론 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고, 때론 역사와 시대의 소용돌이가 강물로 굽이쳐 건널 수 없는 두 개의 땅으로 갈라 놓기도 합니다.
나찌 점령하의 프랑스에서의 삶이 바로 그런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린 나찌의 앞잡이가 되거나, 레지스땅스가 되고, 이러한 적과 동지의 틈에서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의 홍수에 휘몰리기도 합니다. 영화 "Suite Française"가 그런 것이죠.
전쟁 전에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독일군 장교, 그리고 나찌 점령 하에서 유대인을 구하려하는 프랑스 여인, 삶과 죽음의 교차로에서 그들은 사랑에 빠져들고,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의 그 마지막 순간에 인간임(being human)을 잃지 않은 것은 그래도 사랑이 빚어놓은 고고함이었음을 이 영화는 보여 줍니다.
이런 허구적 영화뿐이겠습니니까? 독일의 나찌에 점령된 프랑스의 파리. 그 현실적 프랑스는 반셈주의적(anti-Semitic) 나찌의 꼭두각시 정권 아래 있었습니다. 당연히 유대인들은 색출되어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 파리에 저 유명한 생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 (Henri Bergson, 1859-1941)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철학자였지만, 노벨상 위원회는 그의 창조적 사상을 기리어 노벨문학상을 1927년 수여합니다. 그는 유대인이었지만 프랑스의 나찌 어용정권은 그의 유명세 때문에 유대인이 갖는 고초를 면해 주려 합니다. 그러나 그는 나찌의 박해에서 면제를 받는 '예외적' 유대인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유대인이며, 내 스스로를 숨기기 보다는 오히려 유대인으로 사라지리라"(I am a Jew and would rather perish as one than conceal myself)라고 하면서, 그는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꼭두각시 정권이 강요하는 유대인 등록을 합니다. 그리고 그는 며칠 후에 심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때 나이 81세였습니다. 그는 독일인도 아니고 프랑스인도 아닌 바로 유대인이었습니다.
앙리 베르그송
삶과 죽음과 경계에서 인간의 숭고함은 정해지지만, 우리의 일상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속물과 고고함 사이에서 갈등하고 투쟁합니다. 오히려 더 속물이 되고, 그 편안함을 향유하며 칭송합니다. 이러한 갈등의 경계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베르그송 뿐이었겠습니까?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한 때 나찌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으며,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이 나찌 시절에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한 때 심리학의 대가였다가 철학으로 길을 바꾼 칼 야스퍼스(Karl Jaspers)의 아내는 유대인이었고, 그 이유 때문에 그는 교수직 사임을 강요받았고, 책 출간을 금지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나찌가 종말을 고하자 하이델베르그의 이 노학자는 끝내 독일을 떠나 스위스 바젤로 갔고, 스위스 국적을 얻고 거기서 1969년 생을 고합니다. 단지 부인이 유대인이라는 사실로 야스퍼스는 유대인의 때가 묻은 것이었습니다. 심리학과 실존철학의 경계에서 분투했던 그의 삶의 궤적은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경계선도 참 많습니다. 철학적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먼트 후설 (Edmond Husserl)역시 유대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의 어쩌면 제자이자 동료 하이데거가 이른바 잘나가는 것을 지켜 보면서요. 다수가 만들어 놓은 인종적 경계선에서 그의 생은 쓸쓸했습니다. 필생의 글들이 금지당하거나 출판되지 못하는 글의 노예사를 그는 경험했던 것입니다. 유대인 역사학자 칼 뢰비트 (Karl Löwith)는 후설과 하이데거의 제자였고, 이 모든 경계의 씁쓸함을 목도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때 융의 스승이었던, 유대인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책들은 나찌에 의해 분서(book burning)를 당해야 했으며, 의미요법(Logotheraphy)의 창시자인 심리학자 유대인 빅터 프랜클 (Voktor Frankl)은 나찌에 의해 강제 수용소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습니다. 그의 유명한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바로 자신의 고난의 자서전적 기록이며, 아내의 죽음을 겪은 사람의 상심과 의미찾음의 희망의 서입니다. 의미상실과 의미있슴의 경계선에서 그는 고분분투했으며, 마침내 의미찾음을 통한 치유를 발견하였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경계의 삶을 살고, 이런 경계는 늘 위험하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liminal) 상태에 있습니다. 이런 리미날 상황(liminality)에서 인생은 단 한번 뿐인데, 우린 여전히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속물적 사고와 그러한 한계를 넘고자 하는 실존적 그리고 사회적 몸부림 속에서 삽니다. 평범한 삶이 하루살이처럼 그런 것인데, 그래도 그 하루살이가 영속적이라고 믿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