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세계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다문화(multi-culture)가 정착되어가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러한 다문화의 성숙도는 바로 캐나다라는 나라 안에 종교를 비롯해서 다양한 문화가 상호 존중을 하면서 공존하고 있다는 데서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저의 글에 대해서 GPMAN님께서 저의 글이 어렵다고 조언을 하셔서 추상적으로 논의된 것들 중에서 신에 대한 이론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또 어려울 것 같아 걱정되는군요. 이것이 신학이나 종교에 대한 논의라기보다는 다문화의 한 현상으로서의 종교에 대한 글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젠가 여기서 최성철 목사님(앞으로 존칭 생략)이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진술했을 때, 여러분은 어리둥절하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최성철 목사의 설교집이 [깨달음의 하나님]이었으니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그의 이 말은 나와 떨어진 대상으로서의 신(God)의 개념을 가진 "유신론"(theism)에 대한 부정이긴 한데 그렇다고 이것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atheism)으로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영어 접두사 "a"는 부정어 "not"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에서 "비역사주의"라는 말을 ahistoricism이라고 하죠. 이와같이 무신론은 신론에 대한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동안의 글을 보면, 최성철 목사의 유신론 부정은 무신론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신의 이론, 즉 신론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일반적으로 유신론은 신과 세계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습니다. 즉 신은 초월적 존재이며 세계는 신이 만든 세계, 즉 피조세계라는 것이죠.
위의 그림이 바로 전형적인 유신론적 구조입니다. 신이 인간과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이죠. 이러한 유신론적 구조 중에서 세계를 창조한 신은 유일무이한 신, 즉 하나 밖에 없는 신이라는 주장을 유일신론(monotheism)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유일신론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기독교는 "삼위일체"(trinity)를 믿고 있는 있으니까 이슬람에서는 기독교를 세 신을 믿는 삼신론자라고 비판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도 이런 형태의 논의가 있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강조하면 삼신주의가 되고, 삼위격이 한 본질로 나오면 삼위격의 위치가 한 본질로 환원되어 버린다는 양태론(modalism)이 된다는 것이죠. 즉 태양은 하나인데 빛은 세가지 형태, 즉 성부, 성자, 성령으로 유출된다는 것이 양태론의 주장이죠. 이 문제로 인해 초기 기독교는 서로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여 쌈을 참 많이 했고 요즘도 보수기독교에서는 서로 이단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신론을 극단으로 몰고 간 사람이 독일 신학자 칼 바르트 (Karl Barth)입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긴 하지만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이고 자유주의 신학의 한계를 간파한 사람입니다. 바르트는 신은 전적으로 인간과 세계와 구별되는 타자로서 인간과 신 사이에는 질적으로 무한한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는 에밀 브르너(Emil Brunner)와의 자연신학 논쟁은 유명하지만, 여기에선 생략합니다.
* 보충) 칼 바르트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신학자로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있습니다.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을 기도하다가 체포되어 1945년 4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그가 감옥에서 친구한테 보낸 편지글이 나중에 출판되었고 그의 유명한 "비종교적 기독교"(religionless Christianity)는 인간의 종교에대한 신의 계시의 초월성과 우월성을 강조한 바르트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인데 바르트의 다른 점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본회퍼의 [옥중서신]에 나타나는 이 용어는 워낙 파편화되어 여전히 해석이 분분합니다. 나중에 이 용어는 신의 죽음의 신학자나 세속화 신학자들에게서 탈취되어 많이 이용되었습니다. 이것은 따로 공부할 필요가 있는 개념입니다. 어쨌든 그의 "비종교적 기독교"(religionless Christianity)는 당시에 타종교의 문제나 종교학적 이해가 부족한 신학자들의 아전인수격인 해석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신학자들 사이에 애용되는 용어입니다. 특히 "나는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다" (I am spiritual but not religious)라는 표현을 해설하는데 남용되는 말입니다. 이런 신학적 용어는 기독교 밖을 넘어가면 별로 효용성이 없지만 인기가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이 말은 제도화된 종교와 별도로 영적 경험(spiritual experience)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이 표현을 기독교신학자들이 남용한다는 것이죠.
이에 이러한 유신론을 인정하지만, 신은 세계를 창조하셨고 일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이신론"(deism)이라고 합니다. 이신론에 대한 설명을 신학자 윌리엄 팰리(William Paley)의 시계제작자와 시계의 유비가 유명하죠. 일단 시계제작자가 시계를 만들어 태엽을 감아 두면 시계는 제작자와 상관없이 시계가 째각째각 돌아가듯이, 우주도 신이 만든 다음 관여를 하지 않아도 잘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연법칙이란 신이 만든 법칙이고 뉴턴같은 물리학자나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마스 제퍼슨도 바로 이러한 이신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유신론의 장점은 신을 자연과 분리시키므로써 자연을 인간이 대상적으로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근대과학의 문을 열었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이신론은 바로 이런 유신론의 또다른 형태의 변이체입니다.
위의 그림을 보면, 아시겠지만 신은 더 이상 우리의 삶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진보신학자나 교역자들의 신관은 이러한 이신론적 신관을 암묵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아주 편리한 이론입니다. 창조과학회의 지적설계이론도 넓게는 바로 이러한 이신론의 아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팰리의 이론은 초기에 다윈의 진화론적 관념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위의 유신론적 전통과 상반된 신에 대한 이론이 바로 범신론(pantheism)입니다. 점두어 "pan-"이 지칭하듯, 이것은 모든(all), 보편적(universal)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범신론이란 신은 세계 어디에든 편재있다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물들이나 존재에서 신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요즘 유신론에 반대하는 뉴에이지 사상 대부분은 이러한 범신론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이러한 범신론은 매우 편리합니다. 초월적 신을 증명할 필요도 없고 자연속에서 신의 속성을 찾을 수 있으니 소위 말해서 도닦는 사람들에게 매우 편리한 도구가 됩니다. 득도를 통해서 자신이 신의 속성을 구현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유신론/범신론의 두 대조적인 신관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아래에서 유신론의 결합을 시도한 범재신론을 살펴보기 전에 유신론의 도전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암묵적으로 목회자들에겐 퍼져 있긴 했지만, 유신론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사람은 영국의 성공회 주교 존 로빈슨 (John.A.T. Robinson)이 처음입니다. 그는 1963년에 발표한 [신에게 솔직히] (Honest to God)에서 저 위쪽에 있는, 즉 공간적으로 하늘 저 너머에(up there or out there) 있는 신의 존재는 없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로빈슨의 신학은 본회퍼의 종교없는 기독교와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존재의 신학을 철저히 급진적으로 몰고 간 것으로서 여기에선 깊이 못다루지만, 그의 이 책은 1960년대 유명한 "신의 죽음의 신학" (Death of God)의 유행을 촉발시켰습니다. 신의 죽음의 신학이란 애초에 유신론적 하느님/하나님은 없을 뿐 아니라 문화 속에서 유신론적 신의 기능과 역할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사상을 대중화시킨 신학적 유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전적인 책은 읽어보면 재밌습니다.
이러한 신의 죽음의 신학 운동에 대표적인 인물로는 토마스 알타이저(Thomas Altizer), 폴 반 뷰렌 (Paul van Buren), 그리고 윌리엄 해밀튼 (William Hamilton)이 있습니다.
신의 죽음의 신학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타임 메거진 1966년 4월판 중의 하나의 표지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Is God Dead?. 이러한 현상은 시대의 한 징표이기 때문에 한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이러한 신의 죽음의 신학이나 세속화 신학의 거의 모든 논의를 집대성한 책으로 박봉랑 교수의 [신의 세속화] (1983, 1989)가 있습니다. 이 책은 크라운 판으로 788면에 이르는 대작으로 국판으로 보면 1천 면에 준하는 방대한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이것은 동서양을 망라해서 신의 죽음의 신학을 가장 포괄적으로 연구한 책입니다. 방봉랑교수는 소위 말해서 하바드 신학대학원을 1950년대 나온 분으로서 현각스님의 대선배격이죠. 이 분이 바르트계열 신학자이긴 하지만, 신학적 정치함은 한국신학자 어느 누구보다 정치한 분입니다. 신의 죽음의 신학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이 분의 이 책을 무시하고 나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신의 죽음의 신학 이후 유신론을 새롭게 해석하자는 운동이 나왔는데 그런 신학활동의 신관을 범재신론(panentheism)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an+en+theism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범재신론은 바로 유신론과 범신론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범재신론에서 볼 때 유신론은 완전히 종말을 고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역동적 형태라는 것이죠. 이 사상의 근간은 버트란트 러셀의 절친인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의 과정철학 (Process Philosophy)로서 그의 책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가 유명합니다.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수학원리/라는 책을 함께 저술합니다.) 화이트헤드의 사상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도올 김용옥 선생으로서 그는 화이트헤드의 성의 의미를 따서 "백두" 선생 즉, 희머리 선생으로 부르면서 자신의 기철학과 가장 어울리는 사상이 바로 과정철학이라고 하곤 하였습니다. 도올에 따르면, 그 동안 철학은 존재(being)의 문제를 물었지 "되어감" (becoming)의 문제를 논파한 사람이 백두선생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백두 선생의 과정철학을 "과정신학"으로 적용한 사람이 미국의 클레어몬트 대학의 존 캅 (John B. Cobb)입니다. 캅은 신은 이신론적 존재로 휴가를 떠난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초월해 있으면서도 우리의 삶의 현실의 고통에 동참하는 내재적인 존재로 해석하였습니다. 그 신론이 바로 범재신론, 즉 신은 초월해 있으면서 내재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캅의 제자가 바로 한국의 유명한 신학자 김경재 선생과 철학자 김상일 선생(한국의 전통사상을 조명한 한사상 전문가)입니다.
각설하고, 위의 그림을 보면, 아시겠지만, 신은 우주안에서 우리의 삶에 함께 고통하면서도 우주 밖의 초월적인 존재라는 것이 범재신론의 근간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범재신론 조차 한 시대의 유행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존 로빈슨의 지성적 제자이자 같은 영국의 성공회 사제인 인물은 단 큐핏(Don Cupitt)입니다. 그는 미국의 에피스코팔 (성공회) 사제 존 셀비 스퐁 (John Shelby Spong)과 함께 최성철 목사가 자주 언급하는 인물입니다. 큐핏은 사제이면서 다작을 하는 신학자로서 이야기 꾼 중의 이야기꾼으로서 그의 책은 숨을 돌리기 힘들 정도로 글을 재밌게 잘 쓰고 유신론의 종말을 철저히 해체해 나간 사람입니다. 그러면, 제가 왜 스퐁과 최성철 목사를 종교 "극소주의자"(minimalist)라고 했을까요? 사실 이 개념을 저는 종교학자 브루스 링컨 (Bruce Lincoln)의 책 [성스러운 공포] (Holy Terrors) (2006)라는 책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링컨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종교의 역할은 점점 사회에서 줄어들어 극소화되었다는 것인데, 저는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최성철 목사나 스퐁신부의 신학엔 종교에 대해서 말할 내용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극소주의(minimalist)라는 것이고, 이러한 사상의 근간은 폴 틸리히 신학의 아류격인 로빈슨에서 출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엔 로빈슨은 거의 회자되지 않고 틸리히 신학만 활기차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스퐁은 [변화되지 않은 기독교는 죽어야 한다](Why Christianity Must Change or Die) (1998)에서 유신론적 신은 사람잡아 먹는 귀신(ogre)과 같은 존재로서 십자가를 진 아들 예수를 죽게 한 신은 경배하기보다는 혐오하겠다고 일갈을 날립니다. 이런 주장이야 괜찮은 편입니다. 보수 기독교에서 그런 신을 숭배하니까요. 스퐁은 전통적인 유신론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죽어 마땅하다고 하면서 신의 해체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는 1960년대의 신의 죽음의 신학을 단칼로 자르는 단칼주의잡니다. 그는 "유신론의 범주를 벗어나서 신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를 무신론자라고 부를 것이다" (Those who cannot think of God without the categories of theism will call me an a-theist)라고 되뇌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종교적 이해는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히스테리컬하게 변호한다고 해도 결국 죽게 된다." 그리고 [새시대를 위한 새기독교] (A New Christianity for a New World] (2000)에서 스퐁은 "내가 함박 기쁨으로 선언컨대 유신론은 죽었다, 그러나 신은 실재한다." (Theism is dead, I joyfully proclaim, but God is real).
도대체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저도 모릅니다. 그냥 그가 얼머부린 것입니다.
"God" (God)라는 이름은 지난 2천년 동안 유신론의 상징어인데, 유신론은 죽었는데 신은 있다? 제가 비판하면 아마 자신의 깊은 신학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유신론의 한계에 남아있는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스퐁의 선언은 50여년 전 존 로빈슨의 유신론의 죽음의 선언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즉 God라는 말을 사용하는 한 신이라는 존재가 인간을 초월한 대상성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면 그냥 무의미한 선언입니다. 그의 이러한 진술은 기독교적 전통을 거의 벗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정신학의 범재신론을 뭉개고 그냥 몇마디 선언한 정도입니다.
그는 죽기 전에 마지막 책일 것 같다고 쓴 [영생: 새비전-종교를 넘어, 유신론을 넘어, 천국과 지억을 넘어](Eternal Life: A New Vision-Beyond Religion, Beyond, Theism, Beyond Heaven and Hell) (2009)에서 자신이 근본주의 신앙인에서 진보적인 신앙인으로 어떻게 변했는지 장황하게 설명하고, 여러 과학적 사실을 나열하고, 기존 신학을 비판하면서, 칼 융의 개성화개념, 틸리히의 존재의 기반, 힌두교의 베단타사상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음)을 섞어 놓고선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의 자기가 진짜 신이다" (My me is indeed God). 성격의 통합으로서의 자기(me 또는 self)가 신이라는 것이죠. 그는 인간의 개성화(individuation; 이것은 융의 용어임. 그러나 그는 융을 적시하지 않음)는 인간의 전일성을 표현한 것으로 궁극적으로 인간은 우주와 하나로서 불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죽을 수 밖에 없지만 그러나 불멸성 안에 있다" (I am mortal, but I share in immortality). 이것을 설명하면, 간단히 그냥 인간은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가서 먼지로 흩어진다는 뜻입니다. "한 남자로서 [또는 여자로서] 죽는다면, 그 [또는 그녀는] 다시 살까요?--내 대답은 그래요,그렇습니다, 그럴거예요!" (If a man [or a woman] dies, will he [or she] live again?--my answer would be yes, yes, yes!)라고 그는 감격하여 외칩니다.
그가 대상화되지 않은 신에 대한 질무의 해답을 신비주의(mysticism)에서 찾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의 신비주의는 전통적 기독교 신비주의가 아니라 힌두 베단타 사상에서 말하는 "단일론" (monism)과 유사합니다. 단일론이란 이 세상에 하나의 유일한 실재고 인간은 그러한 실재에 참여한다는 사상입니다.
요즘은 다문화, 다종교 사회입니다. 종교나 사상을 교류하고 대화하고 차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스퐁의 극소주의는 자신이 전통적인 기독교신화나 상징을 다 제거 하고 난 다음에 한 말이 "신은 실재적이다." (God is real)와 "나는 불명성안에서 타자와 공유한다" (I share in immortality)외에는 별로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 극소주의가 신비주의자 마이스트 엑크하르트 (Meister Eckhart)에서 그 해결점을 찾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신이라는 존재는 대상적 존재가 아닌 오직 "경험"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은 과학의 비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안전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형용할 수 없는 신비적 경험입니다. 그런데 궁극적 실재와 나의 결합은 대상성을 상정하지 않는 힌두철학의 범아일여 사상과는 달리 기독교는 신의 대상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퐁의 신비주의는 위의 두 진술 이상으로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상이든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나왔기 때문에 아무것이나 쉽게 차용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힌두교 사상의 위대함은 바로 단일론과 이원론, 명상과 신에 대한 헌신 등 모든 것을 포괄하며, 이것이 서로 배타적이라기보다는 공존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스퐁의 경우, 유신론의 해체 이후 근본주의 신학과 싸움만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남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스퐁이 미국의 에피스코팔 교회의 뉴저지 주의 뉴억(Newark) 교구의 주교로 1978-1996 동안 교인수가 40% 이상 줄었습니다. 이러한 교세의 급감은 그가 동성애 문제를 용감하게 나선 결과일 수 있기 때문에 그의 공헌을 높이 사야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이슈와는 별도로 그의 신학적 해체 이후 재건(reconstruction)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인도 없고 돈이 없다보니역사적 교단 건물도 다 팔아먹고 교단 자체가 문을 단아야 할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스퐁은 이 문제에 대해서 거의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진보적 "교회"의 생존이라는 개념은 그의 머리에는 없습니다. 그의 책 [비종교적인 사람들을 위한 예수 (Jesus for the Nonreligious](2007)는 바로 교회의 무덤을 딛고 일어선 탈종교적인 선교서입니다. 본회퍼의 "종교없는 기독교" (religionless Christianity)의 확장판이긴 하지만, 그것은 기독교의 무덤을 의미합니다. 칼 바르트의 제자인 본회퍼가 어떻게 이것을 이해할지는 난감합니다. 원래 종교없는 기독교란 시대의 문화에 흡수되어 버린 기독교를 비판하는 개념인데 이렇게까지 왔습니다.
이른바 진보적 기독교가 보수복음주의로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신학적 전통을 치열하게 성찰하면서 새로운 해답을 제시한 폴 틸리히의 [조직신학] (The Systematic Theology)은 없이, 스퐁처럼 한두줄 틸리히를 인용한다고 해서 스퐁과 같은 진보신학이 재건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렇게 진보교회가 사라진 이후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죠.
"스퐁주교가 의도치 않은 결과" (Bishop Spong's Unintended Consequences)라는 글에서 글쓴이는 이렇게 글을 마칩니다: "그동안 우리를 함께 묶어 중재해 준 위대한 중재 조직이 미국에 더 이상 없다는 것은 좋은 소식은 아니디다"(That America no longer has great mediating religious institutions that bind us together is not so good.). 결국 스퐁의 싸움은 자폭같은 것이었고, 미국의 종교적 지형은 보수근본주의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게 되었고, 트럼프같은 인물이 나왔다고 제가 보는 것은 과장되지 않은 해석이라고 봅니다. 진보주의가 다수를 형성한 종교지형(mainline churches)이 죽은 교회지형(deadline churches)으로 바뀐 현실을 우리는 직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진보교회의 무덤에 보수교회와 비종교인(religious nones)이 축제를 벌일 것입니다. 종교는 영원한 것이 없고 생성 소멸되듯이 스퐁의 교단도 곧 소멸의 길을 갈 것입니다. 이것이 스퐁의 잘못은 아니죠. 그는 시대의 아들이고 시대의 요구에 일관되게 충실했을 뿐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산물이 스퐁이라는 현상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의 종교 극소주의는 이 시대의 한 현상임에는 분명하고 그런 징조를 읽어 내야 합니다. 최성철 목사도 바로 이런 맥락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사회적 현실 (social implications)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고 어떤 면에서 스퐁의 말대로 joyful 한 것입니다. 제 주관적인 글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종교 극소주의에 이른 경과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긴 글 죄송하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