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전 고등학교 졸업 후 50년 만에 고3 졸업반의 짝지를 만났다. 나와 친구는 고등학교 3년 동안 같은 반에 있었으며, 마지막 학년에는 한 교실에서 서로 짝이 되어 나란히 앉았다. 친구는 오하이오주에 살고 있으며 나는 앨버타에 살고 있으니 당장 만나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래서 스카입을 통해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 하기로 했다. 거의 두 시간에 걸친 첫 만남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에 한 달에 한 두번 만나기로 하고 컴퓨터를 꺼야 했다.
친구는 46년 전에 미국에 이민와서 공부도 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성실하게 살았다. 금년에 그 동안 일했던 전문분야에서 은퇴하고 미국남부 따뜻한 곳으로 이주할 예정이다. 친구가 자신의 삶의 여정을 상세하게 말해 주었듯이 나도 지난 반 세기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나의 여정을 나누어 주었다.
친구가 구글을 통해 먼저 나를 찾았다. 나의 칼럼들이 여기저기에 소개되고 있는 것을 자세히 읽었다. 물론 씨엔드림을 놓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의 칼럼을 읽을 것이다. 친구의 신앙노선은 나의 것과 양극을 가르는듯 대단히 달랐다. 그러나 친구는 나의 칼럼들을 읽고 나를 찾아 나섰다. 우리는 서로 만난 것으로 진보보수의 경계를 넘었다.
친구는 미국에 와서 기독교인 되었으며, 지금은 남침례교회에 소속해 있다. 자신의 신앙의 여정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나의 마음은 한껏 즐거웠다. 우리의 신학과 신앙은 남극과 북극에 사는 것처럼 다르다. 그러나 나의 마음이 지금도 기쁜 것은 50년 동안 헤어졌던 친구를 만난 것이다. 친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신앙을 존중하면서 오늘 어떻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를 찾을 것이다. 50년 동안 헤어졌던 친구를 만난 것이 또한 앞으로 계속해서 스카입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것이 우리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있다.
인종 종교 사상의 경계 넘어 함께 사는 것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