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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거리 한인1.5세 안예희 육군 중위, 대위로 진급
2009년 사관학교 졸업, 아프카니스탄서 7개월 근무 마치고 무사귀환
아프카니스탄에서 7개월간의 근무를 마치고 지난 12월 초 귀국한 안예희 중위(영어 이름 Leona Ahn, 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안 중위의 무사귀환을 축하해주기 위해 에드몬톤 공군 비행장에 마중 나온 어머니 한인경 여사와 친구들. 
지난 4월 아프카니스탄 출전 발대식에서의 안예희 중위 
캘거리 출신 한인1.5세 안예희 캐나다 육군 중위가 아프카니스탄에서 7개월간 근무를 마친 후 지난 12월 초 무사 귀환하였으며, 현지에서의 눈부신 활약과 공로를 인정받아 휴가가 끝나는 다음달 2월 약관 25세로 대위(Captain)로 진급하게 되는 큰 경사를 맞이하였다.
지난 2005년 9월 사관학교에 입학, 2009년 5월 졸업하고 소위(2nd Lieutenant) 로 임관한 안 대위는 에드몬톤서 장교 생활을 시작, 이듬해 5월 중위(Lieutenant)로 진급했고,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7개월간 아프카니스탄으로 파견 나가 성공적으로 업무를 마친 후 귀환하였다.
지난 2005년 안 대위의 인터뷰 기사가 CN드림에 소개된 이후 사관학교에 대한 한인사회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면서 당시 한국생도가 4명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30명 정도로 늘어나 한인사회에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다.
CN드림 웹사이트 내 기사 검색에서 ‘안예희’를 치면 2005년 사관학교 입학 당시와 재학 중에 가진 두 번의 인터뷰 기사와 사관학교 졸업 기사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안 대위는 1992년 6살 때 부모님과 함께 캘거리로 이민을 와 고등학교까지 캘거리에서 마쳤으며 부모님 안우길, 한인경씨도 현재 캘거리에 거주하고 있다.
본지에서는 안 대위를 만나 사관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활약상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민식 기자)


Q.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네요. 우선 2009년 5월 졸업 후 신참 소위 생활 때부터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졸업 후 곧바로 에드몬톤내 부대에 보급부(Logistics)로 배치받아 근무를 시작했는데, 당시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열리게 되어 안전보안 요원으로 차출되어 3개월간 밴쿠버에서 근무했습니다.
당시 기갑부대도 함께 왔는데 그 부대에 보급부 장교들과 함께 일을 하며 많은 실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신참 소위로서 그런 기회를 얻기 어려웠는데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Q. 동계 올림픽 참가 이후에는 어떤 일을 하였는지요?

A. 부대로 복귀해 3개월 정도 지나서 근무하던 중, 모 장군(General)님의 수행 비서로 발탁이 되어 근무했습니다. 과거 밑에서 위를 바라보던 생활이었다면 비서직은 위에서 아래를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고 여러가지 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원래 1년 계획이었는데 아프칸 파견 명령으로 6개월 만에 비서 일을 마치게 되었는데 제가 모시던 장군님도 아프칸 총 사령관으로 발령을 받아 그곳에서 함께 근무하는 영광도 얻었죠. 현지에서 그분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일개 신참 장교가 총 사령관과 막역하게 지내는 것 하나만으로도 주위에 부러움을 사는 일이었죠.


Q. 이야기를 들어보면, 안 대위에게 많은 기회들이 왔는데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만 보기에는 어려울 듯 합니다.

A. 평소 아버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나 인생에 소중한 기회를 몇 번 만나게 되는데 준비된 자만이 이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그런 준비를 나름대로 해 왔기에 기회가 왔을 때 일을 수행했던 것 같습니다.


Q. 그 말에 동감하지만, 평소 준비를 잘 해왔기에 그런 기회를 얻었을 수도 있었다고 기자는 생각합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아프칸 이야기를 좀 해보죠. 징집명령을 받고 나서 처음 기분이 어떠했나요? 부모님께서는 걱정이 많으셨을 텐데.

A. 명령을 받고 저는 흔쾌히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나이 어린 동양여자인 저로서는 아무래도 핸디캡이라 생각되어 앞으로의 군생활을 더 잘 하려면 실전 경험은 물론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껴왔기에 고민하지 않고 결정했습니다. 어머님은 처음엔 가지 말라고 말리셨지만 제가 워낙 완고하니까 나중엔 인정해 주시고 적극 지원해 주셨습니다. 출발 전 5개월간 훈련 받고 현지 7개월까지 총 1년이 걸렸습니다.
파견 명령을 받았어도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안 갈 수 있는 선택권이 있고요, 실제 제가 있는 동안에도 제 부하 2명이 정신적 공황을 견디지 못하고 귀국조치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냥 명령이라고 해서 무조건 갈만한 곳은 아니라는 뜻이죠.


Q. 7개월 동안의 아프칸 생활을 간단히 정리해 설명 부탁 드립니다.

A. 캐나다 군은 카불과 캔다하르 두 곳에서 활동했는데 후방 카불은 아프칸 군인과 경찰을 교육시켜주고 시민들을 돕는 일을 했고요, 전방이 캔다하르였는데 저는 전방에서 보급업무 일을 했습니다. 12월초 복귀할 때는 캔다하르에서 캐나다 군이 완전 철수하는 시점이었기에 지난 10년 동안 캐나다 군이 사용하던 모든 군수물자들을 정리하여 운송하는 일을 했는데 그 규모는 도시 하나를 옮기는 만큼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부하는 30명이 있었는데 (그 중 여자가 7명) 모두 저보다 나이도 많았지만 저는 소대장으로서 가장 먼저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자고 부대원들을 위해 일도 많이 하고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솔직히 힘들어도 부하들에게 내색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제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원체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이라 잘 지냈지만 약 4개월 정도 지나니까 정말 힘들고 지쳐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라는 후회도 하게 되고 이러면서 공포감도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잘 갔다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떤 것도 무섭거나 두려운 게 없어져 버렸어요.


Q. 전방에서 지냈는데 위험한 순간들을 없었나요?

A. 제가 묵었던 캠프에만도 7개월 동안 약 300개의 미사일이 떨어졌을 정도로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한번은 제 텐트 근처에 폭탄이 떨어져 그 충격에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정신적인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죠. 그리고 차로 이동하던 중 옆 건물에 폭탄이 터져 부하들이 부상을 당하는 일도 있었고요.


Q. 아프칸 생활에서 느낀 점은

A. 그쪽 사람들은 전쟁에 시달리고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평화롭고 안전한 캐나다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철저하게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힘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더욱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군대 차원에서 군수품들을 아프칸 시민들에게 많이 도네이션 하고 왔는데 그들이 나라를 재건하는 데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하니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7개월 동안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많은 위로와 격려 편지를 받았고요, 사관학교에 한국후배들까지도 선물과 편지를 보내주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저도 모르는 토론토에 어떤 교민 분들이 신문에서 저를 보았다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항상 기도한다는 편지까지 보내주는 등 많은 분들의 성원에 정말 놀랐어요. 이 자리를 빌어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Q. 2월 대위 진급을 하게 되고 나면 다음 목표 소령(Major)은 언제쯤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요?

A. 보통 대위에서 소령 진급은 일반적으로 8년 정도 걸리고요 (소령까지 못 가는 경우도 많지만) 가장 빠른 케이스가 4년입니다.

Q. 만약 안 대위가 4년 만에 소령이 된다면, 20대 동양 여자로서 소령진급 소식은 아마도 캐나다 한인사회에 큰 경사는 물론 CN드림으로서도 큰 특종감이 될 것 같은데, 많은 기대가 되는 군요.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 드려요.

A. 몇 가지 계획이 더 있습니다만 일단은 앞으로 어떤 기회가 또 오더라도 잘 수행해 나갈 수 있도록 계속 준비되어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Q. 끝으로 캐나다 사관학교 입학 지원 요령을 설명 부탁 드립니다.

A. 처음부터 포트폴리오를 잘 만들어 두어야 하는데 운동, 자원봉사, 공부, 각종 상등 자신의 장점들을 잘 정리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캘거리 다운타운에 Recruiting Office에 가서 지원서를 내면 인터뷰, 신체검사, 체력장, 약물 테스트 등을 하게 됩니다. 우선 지원을 하려면 강한  정신력을 갖춘 학생이라야 합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극복해 내려는 강한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운동이나 공부는 학교에 들어가 열심히 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지만 실제 개인의 사고방식이나 마음가짐은 쉽게 바뀌기 힘들기 때문이죠. 

RMC Web site : www.rmc.ca
Calgary 
Recruiting Office Suite 245, 220-4th Ave SE Calgary, AB T2G 
4X3 Phone : (403) 974-2920 Fax : (403) 974-2906
Edmonton 
Recruiting Office Canada Place, 9700 Jasper Ave, Suite 125 Edmonton, 
AB T5J 4C3 Phone : (780) 495-2274 Fax : 
(780) 495-7523
안예희 대위 이 메일 주소 leonaahn@live.com







기사 등록일: 201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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