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자, 일터·의료·학교서 '퇴출 위기' - 캐나다 취업 허가 만료 및 갱신 지연에 ‘불체자’ 신분 전락 수두룩
Immigration.ca
(안영민 기자)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습니다. 병원조차 갈 수 없습니다. 2년 전만 해도 캐나다는 희망이었지만, 지금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2022년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 정착한 인도 출신 이민자 데비 아차리아(33)의 한숨이다. 가사도우미로 성실히 일하며 자가 주택까지 마련했지만, 지난해부터 일터에 나가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노동 허가서 갱신이 지연되면서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최근 캐나다에선 아차리아 씨와 같은 체류 이민자들의 노동허가 만료 사태가 대거 발생하고 있다. 이민국의 처리 지연이 전례 없이 길어지면서, 수천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자리, 의료 혜택, 자녀의 교육권까지 모두 잃는 ‘3중 고통’을 겪고 있다.
∎ 노동허가 갱신, 58일→165일…1년 넘게 무응답도
캐나다 고용사회개발부(ESDC)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의 취업 허가에 필수적인 노동시장영향평가(LMIA) 처리 기간은 영업일 기준으로 2023년 9월 평균 58일에서 올해 3월에는 무려 165일(약 8개월)로 늘어났다. 실제로 1년 이상 응답조차 받지 못한 이민자도 적지 않다.
이런 적체 현상은 캐나다 정부에 접수된 LMIA 신청 서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관료적 행정 절차와 이민 정책 변화가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한때 두 달도 채 걸리지 않았던 LMIA 처리가 반년을 훌쩍 넘었고 현재 서비스 캐나다는 2024년 4월 서류를 처리하고 있다. 정부도 역대 최장의 적체라고 인정했다.
더 큰 문제는 노동허가 갱신 신청 후 60일 이내에 LMIA를 확보하지 못하면 합법적 취업 자격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이 조항 때문에 많은 이민자들이 법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이민 컨설턴트 칸와르 시에라 씨는 “이런 대규모 체류 자격 상실 사태는 처음 본다”며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이민자들이 불법 취업으로 내몰리거나, 무자격 브로커의 꾐에 빠져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 의료비·교육 중단…미등록 이민자 증가세
신분이 불안정해지면서 이민자들은 기본적 생활권도 박탈당하고 있다. 공공의료 이용이 제한되며, 병원 치료조차 받기 어렵고 자녀의 학교 등록도 거부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데비 아차리아 씨는 노동허가 만료 이후 임신 중 유산을 겪었지만, 의료보험이 끊겨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다섯 살 아들도 학교에 갈 수 없어 집에만 머무는 상황이다.
이처럼 허가 만료로 합법적 지위에서 이탈한 이들은 결국 '미등록 이민자(undocumented migrants)'로 전락하게 되며, 이들의 수는 현재 수십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이민자 줄이겠다"… 이민 서류 적체 더 심화될 듯
자유당의 마크 카니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이민자 수 감축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는 저스틴 트뤼도 전 총리 재임 당시 심화된 주택난, 의료 서비스 대기, 일자리 경쟁 등으로 국민 불만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트뤼도 정부가 말미에 이민 정책을 일부 축소한 데 이어, 카니 정부가 출범할 경우 이민자 감축 폭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외국인 취업 허가 심사 적체 현상도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자발적인 출국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체류 외국인을 줄이려 하고 있지만, 이를 두고 “인도적 가치에 어긋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반이민정서가 확산되면서 정부가 2023년에 약속했던 ‘미등록 이민자 합법화’ 정책도 사실상 시행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황이다.
정부는 “6개월 내 처리 속도가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대책이나 수치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민 단체들은 보다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