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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죽이고 있는 5개의 공식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0007 작성일 2017-04-30 12:27 조회수 4330

교회가 죽어가고 있다. 교회 안에서는 죽어가고 있는 줄 모르겠지만, 밖에서 보면 양적으로 질적으로 죽어가고 있다. 좋은 예로, 한국과 미국과 캐나다의 대선에서 기독교 교회들과 단체들이 정치와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최근에 한국의 서울신문이 2011년에서 2014년 사이에 종교계 신뢰도에 대한 여론조사들을 보도했다. 그 중에 개신교에 대한 결과가 큰 주목을 끌었다. 개신교에 대한 신뢰도는 대기업 보다 낮으며(2011년 조사), 도덕-청령섬 확립이 가장 시급한 종교계는 개신교로 드러났다(2012년 조사). 따라서 전체 교인의 90% 이상이 보수적인 개신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는 20% 밖에 안된다(2014년 조사). 시간이 흘러갈수록 여론은 악화될뿐이다. 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교회들은 문을 닫게 될 조짐이다. 이미 이러한 추세는 유럽과 북미에서 가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아마도 개신교인들은 언론이 발표한 이러한 통계에 대해 보수적인 정치인들처럼 언론의 뉴스와 통계는 가짜(fake) 라고 우겨댈지 모르겠지만, 이 통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양심적으로 깊이 성찰해야 한다. 특히 개신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형편없이 낮은 원인은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의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음의 다섯 개의 교리적 공식들에 있다. 국민들이 신뢰할 수 없는 다섯 가지 공식의 공통적인 믿음은 개신교인만 죽은 후 천당에 올라 가고 나머지 모두는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이분법적 구원론이다.

 

이 다섯 가지 공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보수적인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에게 뿌리 깊은 잘못된 편견과 고정관념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이 공식들이 보편적으로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잃었다. 도무지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믿지 못할 공식들을 무조건 믿으라는 강요에 사람들은 식상하여 교회를 떠났다. 남아 있는 교인들도 혼돈과 갈등 속에서 가족들과 친지들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있을뿐이다. 그러나 교회 내부에서 이러한 과거의 패러다임에 대해 누군가 예수처럼 솔직하게 용감하게 항거하는 사람이 없다. 신학자들과 목사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먹구멍이 포도청이라 양심적인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평신도들은 스스로 분별하고 논리적으로 질문하고 이성적으로 토론하려고 하면 믿음체계는 경고하기를 그것은 하느님에게 불복종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진노와 징벌을 면치 못한다고 위협한다. 교인들은 이단과 사탄으로 정죄받고 교회에서 쫓겨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숨소리 죽이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사람들에게 너희가 외치지 않으면 돌들이 외칠 것이라고 도전했다.

 

결론적으로, 세월이 흘러가면서 개신교(물론 가톨릭도 마찬가지)가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급속도로 죽어가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다음의 다섯 가지 공식들에 있다. 이 과거의 패러다임을 아낌없이 내려 놓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지 않는 한 교회의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공식 1. 성서 = 하느님 말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하느님 말씀과 동일시함으로써 성서를 우상화하는 잘못을 범한다. 성서는 인간들이 스스로 느끼고 깨달은 궁극적인 진리의 체험을 하느님으로 표현한 신화적인 책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성서의 원본들은 어느 한 권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현대인들이 읽고 있는 성서는 수없이 많은 필사가들이 베낀 사본들 중에 극히 소수를 편집해서 만든 사본집이다. 원본이 존재한다해도 성서는 원초적으로 한 사람이 단시간에 단행본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천여 년에 걸쳐 수십 명의 저자들이 여러 다른 지역에서 기록했다. 물론 성서가 기록될 때, 제한적인 인간의 언어는 당연히 당시의 시대적 문화적 종교적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당연히 성서에는 오류가 있을 밖에 없다. 정확히 말해서, 성서 자체가 하느님의 말씀은 아니며, 단지 하느님의 뜻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고 있다.

 

만일 성서=하느님 말씀이란 공식을 믿으려면, 무작정 믿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며 성서의 수많은 오류와 모순들에 대해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온전한 설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성서무오설에 따른 축자영감을 내세움으로써 성서의 수많은 오류와 모순들을 무시하거나 모른체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들은 성서의 오류와 모순이 아니라 관점의 차이들일뿐이라고도 말하는데, 물론 당연히 그러한 관점의 차이도 있겠지만, 성서의 오류와 모순들은 서로 양립가능한 관점의 차이들이 아니라 양립불가능한 차이들을 지적하는 것이다. 더욱이 성서가 무오하다는 축자영감설의 근거로서 디모데후서 316절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있는 데, 도대체 자기주장의 근거를 자기 주장 안에다 두는 것은 억지를 부리는 것이며 설득력이 없다. 예를 들자면,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 즉 과학 종교 철학 문학 예술에서 발생하는 의문과 질문과 방식과 문제점들의 모든 해답이 성서 속에 있다는 주장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교회가 만든 공식들을  무조건 믿으면 만사형통한다고 위협적으로 강요한다. 어떻게 21세기에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인간의 지혜와 삶을 성서 한 권 속에 가두어 둘 수 있는가? 인간의 자율성과 창조성과 가능성과 잠재력을 한 권의 책 속에 감금할 수 없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성서는 절대적인 권위가 아니라, 많은 권위들 중에 하나일뿐이다.

 

성서무오설이야말로 신앙을 빙자하여 사람들을 무지로 안내하는 거짓말일 뿐이다. 오히려 성서는 오류의 발견에 의해서 계시로 나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엄밀히 말해서, 성서의 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느끼고 깨달은 궁극적인 진리이며, 세속적인 세상 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영적 실제이다. 결론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은 책이나 문자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의 깨달음이다.

 

[더 읽을 책]
바트 어만. 성경, 왜곡의 역사. 청림출판, 2006

존 도미닉 크로산.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스리스도인인 되는가. 한국기독교연구소, 2015

마커스 보그. 성경 새롭게 다시 읽기.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6

최성철. 새로운 기독교, 새로운 교회의 탄생: 믿는 하느님 보다 더 소중한 깨달음의 참인간.

             퍼플(교보문고), 2014  

존 쉘비 스퐁. 성경을 해방시켜라. 한국기독교연구소, 2002

 

 

공식 2. 진화론 = 무신론

 

많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진화론을 흔히 무신론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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