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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중립화 통일은 왜 필요한가?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0355 작성일 2017-09-08 07:34 조회수 3211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무기 사용의 위협으로 오늘 한반도는 또다시 130년 전 주변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는 꼴이 될까 염려된다. 따라서 한반도 중립화론의 원조인 유길준의 주장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구글링하여 수집한 한반도 중립화에 대한 여러 자료들에 나의 생각을 첨가해서 소개한다. [특히 박노자 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너무 흡사해서 그 분의 글을 약간 수정해서 그대로 전달한다. 이 점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한반도 중립화론은 한국 근대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실제로 한국 근대사는 일제에 의한 식민지 역사가 큰 부분을 차지하, 전에는 수많은 서양 열강들의 이권 각축전을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이제이 (夷以制夷)라며 다른 서양 열강들에 의존하는 매몰하는 지배층의 경향까지 내비치기도 하면서 우리나라의 의존성은 극에 달하였다. 우리의 민족성이 그랬었는지, 아니면 사상적 문화가 기반하였었는지, 또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는지 많은 궁금증이 가시질 않는다.

  

한반도 중립화론이 등장하게 동기와 목적은, 주변 강대국들의 이권다툼형의 간섭에서 독립을 유지하는 방편으로서 중립화는 남북한의 자율적인 결정이 되어야 하며, 남북한이 주변 국가들 사이에서 이해조정의 주도권을 쥐고, 한반도의 정치적-경제적-외교적-군사적 독립을 보장하는 것이다.

 

한국 근대사에서 한반도 중립화론이 거론된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1882 임오군란(壬午軍亂) 계기로 일본 정부가 제의한 국외중립론, 1884 갑신정변 직후 독일의 총영사 대리 부들러가 조선 정부에 권고한 영세중립론, 1885 거문도사건 직후 다변적인 세력관계 상황에 착안해서 유길준이 제기한 중립화론, 청일전쟁 이후 승전한 일본과 러시아가 각축을 벌이던 시기에 제기된 것으로 미국인 고문 샌즈가 조선 정부에 권고한 스위스 모형의 영세중립론, 1900 의화단사건 직후 일본·러시아 사이의 협정 과정에서 러시아 정부가 추진하려 ·· 3 보장 하의 한반도 중립화안을 있다. 그러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고비로 한반도가 일본에 예속되는 과정을 밟게 됨으로써 시기에 제기된 한반도 중립화론은 모두가 무위의 공론이 되고 말았다.

 

중립화에 대한 기회가 물러간 직후 한국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지역적인 파국에 치닫게 된다. 방곡령에 목숨 걸고 강국들의 전쟁이 무려 번이나 국내에서 일어나는 지배층은 위기를 보자 가까스로 중립화론을 마련하기에 이르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열강의 이권 침탈은 떄부터 본격화 되어, 점차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점령 야식이 그러한 이권들을 잠식한다. 누구보다 서세동점의 세를 빨리 알아챘던 일본이었다. 그들은 서양 열강들의 신속하고도 은밀한 협약을 진행해갔고 한국은 둘바도 모른 체에 국가의 주권을 빼앗기도 것이었다.

 

중립화론이 받아들여졌다면 어땠을까. 한반도가 지난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자리를 지켜온 나라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런 지정학적인 위치가 한국인의 독자성에 더욱 빛을 발하게 하지 않았을까. 실패한 중립화론에 의해 한국은 실제로 자신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만큼, 독자성과 자주성을 크게 상실하게 되었다. 적어도 의존에서부터 비롯된 배타의식, 추종이 다른 차별을 낳고, 다른 서열화를 낳게 되듯이 그렇게, 한국의 모습도 다른 배타의식과 선민의식으로 그리고 성리학에 너무나 권태스럽게 몰두하다 드러난 독립과 변화라는 개념이, 끊임없는 개화 지식인들의 선례에 대한 학습을 방해해 왔다. 우리는 이렇다라는 보수적 개념이 결국 새로운 인재와 시대의 진정한 열쇠임을 망각하게 했고, 많은 개화지식인들을 죽게 했으며, 전쟁과 분단으로 오늘의 한반도 정세를 만들었다

 

1950·60년대의 중립화 통일론

 

사실 한국 공론의 장에서 한-미 안보관계가 성역화되고 한-미 동맹에 대한 일체의 수정론들이 모두 용공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시대와 그 이후의 일이다. 한국 정치를 후퇴시킨 박정희가 대미 안보관계를 신성 불가침의 영역으로 만들어 이 분야에 대한 현대적인 비판적 사고를 원천 봉쇄하기 이전에는 한-미 안보관계의 근본적 수정을 전제로 하는 중립화 통일과 같은 주장들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미군 철수를 전제로 하는 한반도 중립화론을 처음 제기한 것은 1948년 미소공동위원회의 일부 참가자와 6·25 동란 이후의 국무장관 덜레스 등의 미군 관변쪽이었다. 동서 양 진영의 틈새에서 중립을 지키는 오스트리아나 핀란드 등을 한반도를 위한 모범으로 제시한 1950년대 미국의 한반도 중립론자들은, 일단 남한의 극우 반공 체제의 지원·유지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미국쪽 비용을 줄이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1950~70년대에 함께 중립화 목소리를 높였던 재미·재일동포 학자·언론인의 논리는 폭력적인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평등한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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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  |  2017-09-0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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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무력통일과 북한의 적화통일은 망상이며, 불가능하다.
중립화 통일은 남북한이 독립적으로 공존하게 한다.
즉 남한과 북한은 상대방에 대해 주적관계가 아니라, 상호의존관계가 된다.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언제까지 남북한이 서로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공포 속에서 살 것인가?
적대감과 불신과 오만과 편견을 청산하고 서로 존중하며 자유하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전쟁이 일어나면 승자는 없다. 모두 피해자와 패자가 된다.
어느 쪽에서든지 전쟁을 일으키면 130년 전과 똑같이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의 속국이 된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7-09-09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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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박노자 교수의 글을 링크와 함께 그대로 퍼오시되 늘봄님의 글을 사족으로 다셨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늦게나마 링크와인용부호를 다셔서 다행입니다. 인터넷 글이나 설교, 개인적인 토론 글에 일일이 인용부호를 달기는 쉽지 않죠. 저도 자주 간과합니다. 보통 다섯단어 이상의 남의 글을 사용할 경우 인용부호를 다는데 학술적인 글이 아니면 좀 너그러운 편인 것 같습니다.

사족을 붙이면, 늘봄님께서 "특히 박노자 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너무 흡사해서 그 분의 글을 약간 수정해서 그대로 전달한다. 이 점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라고 하신 부분은 적극적으로 피해야 할 글쓰기라고 봅니다. 원저자가 아마 놀랄 것 같습니다. 이것은 "copy and paste" 식의 전형적인 글쓰기 형태입니다. 차라리 내식으로 요약한 것이나 paraphrase를 한 글(your own words)이 권장되어야 하죠. 심지어 이것도 원저자의 의도를 represent를 잘 했느냐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표절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 새벽 막간에 이 게시판에 들어왔다가 "1950·60년대의 중립화 통일론" 이하를 먼저 읽으면서 늘봄님의 글로 완전히 오해를 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올림.
prosperity  |  2017-09-0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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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핵무기를 보유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대등한 군사적 힘이 없는 상황 아래에서 중립화 통일을 하자는 제안은 대한민국을 통체로 김정은에게 바치고 노예로 살자는 제안과 다름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김정은 정권에 비하여 경제력이 월등하다 하드라도 비 대칭 군사력에는 평화를 지키는데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또한 광우병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다시 촛불집회를 열고 전쟁반대, 평화통일을 외치자는 제안도 김정은은 촛불집회로 아무리 외쳐도 듣지도 않을 것이기에 결국은 미국은 한반도에서 물러나라는 말씀 이신데 이도 또한 촛불집회 선동하여 대한민국을 김정은에게 상납하고 김정은의 노예로 살자는 제안으로 들림니다.

이차 세계 대전 직전 영국 체임벌린 수상이 히틀러와 회담한후 독일의 수데텐란트 합병을 승인한후에 "명예로운" 평화를 쟁취하였다고 선언 하였을 때에 "이에 대해 처칠은 이렇게 논평했다. 우리는 전쟁과 불명예 사이에서 한 가지를 골라야 했다. 우리는 불명예를 선택했고, 곧 전쟁도 치르게 되었다" "평화를 구걸한다고 평화가 보장되지 않는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이 전제되어야 한다." (출처: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08/2017090802987.html).

처칠의 위의 주장이 오늘날 대한민국에 해당되는 명언인것 같습니다. "평화를 구걸한다고 평화가 보장 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지키기위하여서는 전쟁을 막기 위한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