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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칼럼 - 종교문맹퇴치 33] 신의 계시(啓示)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1200 작성일 2018-09-16 08:46 조회수 3633

2001911, 이슬람 테러집단에 의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이 붕괴되고, 국방부 건물이 공격받은 테러사건 이후에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신으로부터 이라크를 침공하라는 계시(啓示)를 들었다고 했다. 부시는 이 계시에 따라 이라크 전쟁을 도발했으며, 수십만의 인명이 희생되었다.  (불행하게도 신은 그곳에 대량 살상 무기가 없다는 계시는 내려주지 않았다.)

 

오늘날 합리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개인적인 신의 계시는 그것이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설득력이 없으며, 흔히 정신병적이거나 망상적이라고 부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우주적인 과학시대에 부족적이고 개인적이고 사적인 초자연적인 신의 계시(啓示)가 전체 인류를 통제하는 믿음과 신앙과 가치관과 세계관의 기초가 될 수 없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사적인 계시(Personal revelation)와 공개적인 계시(Public revelation)의 다른 점을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인류사회는 인간의 존엄성 즉 인간의 자율성과 창조성과 가능성을 무시하고 박탈하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떠나 보내고, 신의 계시 없는 종교, 초자연적인 하느님 없는 종교, 자율적인 깨달음의 종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76억 인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은 백색, 흑색, 황색의 3대 집단 인종군(人種群)에서 진화된 수십종의 인종들과 7,000 여개의 언어와 3000여개의 민족과 237개의 국가와 10,000여개의 종교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서로 다름이 통합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사는 것이 우주의 법칙인데 이것들 중 어느 한 종교 또는 민족이 가장 우수하고 나머지 다른 것들은 열등하다고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대단히 유치하고 비상적이며 원시인들의 부족적인 오만과 편견에 불과하다.

 

21세기의 우주진화 세계관에 따르면 전체 우주는 개체들이 모여 하나의 생명의 망을 이루는 한 몸이기 때문에 모든 각 개체들은 동등하게 소중하고 성스럽다.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느 한 개체가 다른 개체들 보다 더 우수하고 나머지는 열등하다는 소위 제국주의, 우월주의, 차별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보호주의는 생존의 두려움과 이기적인 욕심을 드러내는 표층적이고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자유-평등-평화가 기본 정신이 되고 있는 우주진화 세계관에서 어느 특정 종교와 민족과 인종이 나머지 전체를 대표할 수도 없으며 통제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신앙이든 믿음이든간에 정신이상이나 망상이 될뿐이다. 불행하게도 교회기독교가 지금도 이런 믿음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세계는 자기들만 축복받고 구원받는다는 이분법적이고 부족적인 종교 보다 모든 개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우주적인 종교가 절실히 필요하다.

 

인류사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적인 계시들(Personal Revelation)을 통해 지역별로 다양한 전통들이 출현했고 이에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신관이 만들어졌다. 즉 원시 부족의 애니미즘(자연계의 사물에 영혼이 깃들여 있다는 원시 세계관)에서 그리스, 로마, 유럽 북구의 신들과 같은 다신교(多神)를 거쳐 유대교와 그 파생 종교인 기독교와 이슬람교 같은 일신교(一神)로 진화하는 과정이 있었다.

 

인습적인 종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계시(啓示)는 어원적(語源的)으로는 나타남또는 드러남을 뜻하며 인간이 스스로 계시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신적 지식을 받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하늘 위에 있는 초자연적인 하느님으로부터 땅 위에 사는 사람의 지혜로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이나 진리를 전달받는 것을 계시라고 하며하느님이나 신()이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직.간접적인 모든 것을 나타내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고대 역사를 신중하게 살펴보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한 뿌리에서 탄생했지만, 서로 다른 독특한 신의 계시를 믿는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소위 신의 계시(Revelation)3-2천 년 전 북아프리카와 중근동과 소아시아의 여러 지역들과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던 고대인들이 다른 부족들과 경쟁적인 환경에서 생존의 수단으로 창작한 것이다. 그러나 고대 부족들이 다양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독특하게 체험한 신적 계시들은 삼층 세계관에 근거하여 설정한 가치관과 윤리관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체험한 계시들은 이분법적-배타적-우월적이기 때문에 21세기 우주진화 세계관의 시각으로 볼때에 대단히 편협적이고 개인적이다.  

 

특히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주장하는 신의 계시를 사적 계시라고 밝히는 이유는  유대교의 계시는 3-2천 년 전 북아프리카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히브리인들이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에 허덕이던 유목민 시절 아브라함과 모세가 개인적으로 체험한 부족적인 계시이며, 기독교의 계시는 2천 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로마제국의 혹독한 탄압과 착취에서 예수를 통해 체험한 부족적인 계시이다. 물론 이슬람교의 계시도 15백 년 전 아라비안 반도의 여러 부족들을 통일한 모하메드의 개인적인 신적 체험을 기초로 한 부족적인 계시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계시들은 내부적으로 생존과 화합과 번영을 위해 통용될 수는 있는지는 몰라도 오늘 21세기에 온 인류에게 문자적으로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사적 계시(Personal Revelation)라고 한다. 부족적이고 사적인 계시를 신봉하는 인습적인 종교들의 특징은 자신의 경전과 전통과 민족만이 진실하고, 자신들의 하느님은 자신들만 구원하고 다른 모든 것들은 심판과 징벌로 다스린다고 믿는다. 따라서 사적 계시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종교인들은 오직 자신의 신-하느님-하나님-야훼-알라 만이 전지전능하고, 유일한 인류구원의 길이라는 오만과 편견에 빠져있다.

 

사적 계시는 외부세계와 단절하고 종교단체 내부에 한해서 적용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비단 이것조차도 망상에 불과하지만, 외부 세계에게 강요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며 위험한 일이다. 더욱이 내부적으로 사적 계시를 믿으면서 성차별, 빈부차별, 성적본능차별, 인종차별, 신분차별 등의 만행을 저리르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며, 오늘 사적 계시를 신봉하는 종교들이 급격히 쇠퇴하는 가장 큰 원인은 여기에 있다. 따라서 고대인들의 경전에 기록된 부족적인 신의 계시 즉 사적 계시를 문자적으로 믿는 믿음을 떠나 보내고,  은유적으로 재해석해서 현대인들에게 우주적으로 인류구원의 길이 되도록 전환해야 한다.

 

한편 현대과학이 발견한 우주진화 이야기의 사실들은 부족과 민족과 인종과 종교와 사상과 정치의 경계 넘어 온 인류가 지구적으로 통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개적 계시(Public Revelation)가 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21세기 과학시대에 사적 계시가 공개적 계시를 조정하거나 변형시킬 수 없으며, 사적 계시는 공개적 계시에 근거해야 한다.

 

필자는 캐나다 맥길대학에서 지질학 박사과정 중에 전공을 바꾸어 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졸업 후 캐나다연합교회에서 안수받고 20년의 전문목회를 했다. 신학자가 되기 전에 지질학 전문분야에서 15년간 산과 들에서 그리고 연구실에서 우주진화를 탐구했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과학의 기능과 목적은 지식과 정보를 조직화하여 사람들의 보다 낳은 삶을 위해 공개하는 것이다. 과학은 현실적인 지식과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실험하고, 재구성하고, 다른 의견들과 솔직하고 자유하게 토론하고, 수정하고, 깊이와 넓이를 확장하고 발전시킨다.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새로운 지식과 정보들이 세상에 알려진다. 과학의 가장 중요한 기능과 역할은 지식과 정보를 사유하기 보다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도록 돕는다.   

 

오늘 우리는 인류 역사의 대전환점에 서 있다. 우리는 과학의 덕분으로 지구와 인류의 출현 역사를 포용하는 우주진화 역사의 깊은 의미를 인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인류 역사의 근원인 우주 역사는 창조론을 주장하는 종교인들이 믿는대로 단지 6천 년이 아니라 138억 년이다. 빅뱅으로부터 시작한 우주와 지구와 생명들과 인류의 진화는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과학은 눈으로 보고 느끼는 실제적인 현실의 본질을 더욱 깊이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따라서 과학에 근거한 새로운 패러다임 또는 새로운 이야기는 더 이상 과거의 패러다임에 얽메이지 않고 미래의 물결을 타고 앞으로 발전해 간다. 또한 과학적인 새로운 진리는 주관적이거나 특정 종교와 문화에 국한하지 않고, 공개적이고 통합적이고 우주적이다. 따라서 과학의 역할은 진리를 숨기지 않고, 그것을 공개적이고 일반적인 계시로 밝히는데 있다. 과학은 온 인류가 이해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진리를 소개한다. 과학은 과학자들의 독점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공개적인 생활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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