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안톤 슈낙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庭園)의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질 때,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히 내리고
사랑하는 이의 인적(人跡)은 끊겨
거의 일주일 간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옛 궁성(宮城),
벽에서는 흙 뭉치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
'아이세여 나는 너를 사랑하노라'라는
거의 판독(判讀)하기 어려운 글귀를 볼 때,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그 곳에 씌었으되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소행이 내게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가져오게 하였던가..."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연애 사건, 혹은 하나의 허언(虛言), 혹은 하나의 치희(稚戱),
이제는 벌써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 속에서 찾을 수가 없는데,
그 때 아버지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
동물원에 잡힌 범의 불안 초조가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가를 왔다 갔다 하는
범의 그 빛나는 눈,
그 무서운 분노,
그 괴로운 부르짖음,
그 앞발의 한없는 절망,
그 미친 듯한 순환,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더 없이 슬프게 한다.
'휠델린'의 시장, '아이헨도르프의 가곡,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 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리하여 그가 이제는 우러러 볼만한 고관 대작,
혹은 돈 많은 기업주의 몸이 되어,
우리가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 밖에 못 되었다는 이유에서
우리에게 손을 주기는 하나
벌써 우리를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같이 보일 때,
포수의 총부리 앞에 죽어 가는 사슴의 눈초리
한국 교민 이나, 특히 비즈니스에 분노와 악의에 찬 글들을 봅니다.
건축업체에게 당했다. 또는 이민업체에게 속았다. 이런 글들이지요.
물론 사실일수도 있지만,
한인이기 때문에 억울한게 아니라,
살던 한국하고 다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시간을 현지인들과 부딛 치면서 살아본 느낌은...
현지인들도 무척 무섭습니다.
특히 첨으로 동양인이 가게를 인수하면
참 해코지를 많이 합니다.
심지어, 판 사람이 루머로 가게를 힘들게 만들고,
다시 자기가 다시 사게 또 되팔려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동포에 나쁜 선입감을 가지고 계시고, 싫어 하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 갑습니다.
살다 보니 절대로 현지인들이 더 좋은건 아닙니다.
차이는 있어도 비슷합니다.
어떤 경우는 바로 렌트 계약해지 되는걸 뻔히 알면서,
어떻한던 팔려는 비즈니스 현지 오너도 있습니다.
또, 오래전 코스코가 들어온다는 정보를 듣고,
큰 가스스테이션을 코스코 에정지 바로 옆에 걸 팔아서,
사신 현지분은 한 4년을 버티고, 역시
자기가 당항것을 그걸 이민자 (한인)에게 팔려는 사람도 있었지요.
다행히 한인들이 안사게 주위 분들이 말려서,
현지인분은 그냥 뱅크럽시 하더군요.
정보에 어두운 이민자들은 무척 조심해야죠
business is business 하면서
어리벙벙한
"이민자들을 슬프게" 하지요.
현지인에게 많은 아픔을 느껴본 경험입니다.
좋은 현지인도 있고, 또한 훌륭한 한인도 많습니다.
이민을 사기 당햇단 어떤분의 글을 읽고
꼭 사실이 아니란 생각에 써봅니다.
아래 링크는 라고님이 퍼오신 슈낙의 글에 올렸던 댓글도 있습니다. 안톤 슈낙이 나찌 전범이기도 하고 히틀러 충성을 맹세한 인물인듯 합니다.
https://cndreams.com/cnboard/board_read.php?bIdx=1&idx=5858&category=&searchWord=%EC%95%88%ED%86%A4&page=1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림 형제의 동화가 나찌의 필독서로 읽혔다는 것을 보면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이성보다는 감성일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됩니다. 무엇인가 원형 (archetype) 같은 것, 또는 정수(essence)를 찾아 가는 과정에서 심금도 울리죠. 또는 정치와 결합하여 민족주의도 형성되기도 합니다. 이른바 낭만주의 또는 로맨티시즘의 발로겠죠. 낭만주의는 참 좋은데 말이죠.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민족주의 바람이 불어 일본 선불교가 불교의 "정수"라고 하면서 일본제국의 불교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옛날이 생각나서 댓글을 조심스럽게 답니다.
안톤 슈낙의 과거는 케이블링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의 에세이에 추억에 젖는 사람들은 헤르만 헤세나 앙드레 지드를 잊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슈낙은 위의 링크의 댓글처럼 그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인터넷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것이고, 나찌즘에 대해서 좀 배우고 읽다 보니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일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