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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92] 개인의 자유와 믿음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었다!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3885 작성일 2020-09-24 09:16 조회수 3606

국민의 기본권이란 국가에 대하여 청구할 있는 개인의 주관적 공권(公權)이다. 또한 인간의 존엄권 인간의 생명권, 평등권, 명예, 인격권,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 등을 포함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인간다운 생활을 권리와 자유롭게 권리와 명예와 인격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이의 침해는 금지된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인간의 생명의 권리도 공공복리 질서 유지 위해 법률로써 제한할 있다고 하여 이를 합헌이라고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진리를 추구하며 사람답게 살려는 개인의 권리는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 공동체적책임 의무가 수반된다.

 

최근에 바이러스 팬데믹 위기에서 온 국민이 협력하여 공동체적으로 바이러스 감염 확산을 방지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일부 극우 보수성향의 사람들은 개인 종교 자유 표현 자유를 주장하는 소리가 사회를 혼돈과 불안 속에 빠트리고 있다. 이렇게 개인적이고 부족적 자유 권리를 주장하는 불량 믿음불량 정치가 국가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이렇게 이기적 자유권리 주장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고 자신의 구원만을 추구하는 이분법적이고 파렴치한 믿음광신자들은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감염 예방 수칙을 무시하면서 마스크 착용사회적 거리를 거부하고, 군중집회와 예배모임을 감행하는 몰상식한 행위로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방식의 자유 믿음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은 커녕 저주가 된다. 하느님 진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우주적인 축복이 되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차별적인 저주가 되고 있다. 교회 예배에 충성하는 신자들이 인식해야 할 것은, 예배 드리지 않아도 하느님의 징벌과 심판은 없다. 그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바이러스가 감염이 확산되지 않도록 집단예배를 자제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 오늘 기독교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또한 하느님은 바이러스 팬데믹의 미래에 대해서 모른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인간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바이러스 팬데믹을 계획하지도 않았을뿐만 아니라, 오늘 바이러스 감염을 막지도 못하고, 내일 바이러스 팬데믹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모른다. 하느님바이러스 팬데믹과 천연재해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하느님의 진리참 사람 예수가 깨닫고, 가르치고 몸소 살았던 진리인 데, 진리를 추구하는 심층적인 삶의 방식은 자신의 두려움과 이기심을 담대하게 내려놓고, 사심없이 조건없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진리에 대한 짧은 이야기 세 개를 소개한다: (1) 첫번째 이야기는 한 신학교 교수가 강당에 운집한 2000명의 학생들에게 산상수훈을 중심으로 평화에 대한 강연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는 말씀하시기를,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예수의 이 말씀의 뜻은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불행하고,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비폭력적인 예수를 따르기 원한다면 평화를 위해서 일해야 하며, 우리 모두 이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악하고 끔찍한 전쟁을 막아야 합니다.”

 

이 학자가 강연을 끝내기가 무섭게 진리에 대해 무엇인가 깨달은 500여명의 학생들은 일제히 학교 밖으로 나가서 불의한 전쟁을 일으킨 부시는 물러가라! 전쟁을 중단하라!’ 고 외치면서 시위를 벌렸다.

 

(2) 두번째 이야기는 여섯 명의 장님과  코끼리에 대한 고대 인도의 이야기다. 여섯 명의 장님이 코끼리에 다가갔다. 첫번째 사람이 코끼리의 몸을 더듬더니 큰 소리로, “신께서 나를 축복해 주신다. 코끼리는 벽처럼 생겼다두번째 사람이 코끼리의 뿔을 만지더니, “나는 확신한다. 코끼리는 창처럼 생겼다.” 세번째 사람이 코끼리의 귀를 만지고는, “내 말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코끼리는 부채를 닯았다.” 코끼리의 코를 잡고 있는 네번째사람은, “너희들은 모두 바보야! 코끼리는 길고 굵은 뱀과도 같다.” 다섯번째 사람이 코끼리 다리를 붙잡고는, “너희들 모두 미쳤어. 내가 잡고 있는 견고한 코끼리는 나무기둥 모양이다.” 코끼리 뒤에서 꼬리를 잡고 있던 여섯번째 사람은 큰소리로 코끼리는 그렇게 큰 동물이 아니다. 코끼리는 가느다란 밧줄과 같다.”

 

이 여섯 사람은 서로 자신의 진리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면서 장시간을 소리소리 지르면서 입씨름을 벌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옳지 않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3) 세번째 이야기는 어느 날 악마가 자신의 부하와 함께 구름 위에서 인간세계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들은 한 사람이 길을 걸어 가다가 잠시 멈추어 서서 땅에서 무엇인가를 줍더니 주머니에 집어 넣고 다시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악마가 부하에게 이 사람이 무엇을 주웠는지 물었다. “작은 진리 하나를 주웠나 봅니다하고 대답했다. “진리라고? 그 사람을 멈추게 할 수 없을까?. . .아니야, 그럴 필요없어하고 악마가 말했다. “기껏해야 한 가지 작은 진리일 뿐이야. 오래지 않아 이 사람은 그 진리를 정통이라고 주장하고, 내가 하는 일을 그대로 따라 할거야.”

 

신약성서를 신중하게 읽으면, 로마제국의 잔인한 통치와 탄압에서 하루도 생존하기 힘들었던 초대 교회 공동체 내부에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예수의 정신을 담대하게 살아내려는 그룹과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이기적인 그룹이 대립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성서 기록의 배경이 되었던 초기 교회는 개방적인 그룹과 반면에 폐쇄적인 그룹이 생존의 문제로 심각하게 충돌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한 그룹은 포용적이었는데 한편으로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힌 또다른 그룹은 강박 관념적이었다. 한 그룹은 하느님진리에 대해서 보다 우주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했는데 또다른 그룹은 진리에 대해서 대단히 부족적이고 편협적으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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