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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96] 과학이 “하느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했다!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3965 작성일 2020-10-17 16:30 조회수 4186

21세기 첨단과학 시대에 일상생활 속에서 과학이 발견한 우주진화 세계관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살아내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은 종교인이든 무종교인이든 간에 사실상 인격신론하느님”()이란 말이 필요없다. 자연의 법칙을 깨트리는 기적을 일으킨 초자연적인 하느님은 존재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런 기적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종교체제가 만든 믿어야만하는 그런 하느님이 필요없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믿음체계만든 망상의 하느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족적-이기적-이분법적-차별적-우월적-내세지향적인 불량 믿음에 병적으로 세뇌되어서 하느님이란 말을 떠나 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참된 인간으로 사람답게 사는 우주적이고 통합적인을 표현하기 위해 하느님이란 말이 필요하다면 현대과학에 근거하여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하느님 의미를 탐구해야 한다. 오늘날 인간 존엄성생명의 신비스러움과 자연의 성스러움이 불량 종교 불량 정치에 의해서 하찮은 것으로 폄하되었으며, 성차별성적본능차별인종차별과 극심한 빈부차별로 인해 지구촌의 수십억 인구가 고통과 절망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기후위기의 긴박한 지구적 상황에서 망상에 사로잡힌 극우 보수 정치인들과 성서문자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이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로버트 피어시그는 삶의 궁극적인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는 여정에서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하며,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고 고백했다. 망상(delusion)이란 말에 대한 여러 사전들의 정의를 살펴보면, 잘못된 믿음이나 인상을 뜻하며, 모순되는 강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비상식적이고 이기적인 불량 믿음을 고집하는 정신장애의 한 증상이라고 한다. 현대 종교인들은 만들어진 망상의 하나님(The God Delusion)에 대한 보상심리에 빠져서 무작정 믿는 사심을 버려야 한다.  

 

오늘 인류는 과학이 발견한 138억 년의 광활한 우주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우주세계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팽창하고 있으며, 우주의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 있다. 또한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개체들은 따로따로 개별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통합적한 몸으로 상호의존관계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과학은 새로운 세계관 즉 우주진화 세계관을 공개적으로 계시했다. 따라서 21세기 현대인들의 종교, 정치, 경제, 문화는 과학이 발견한 우주진화 세계관을 기초로 삼고 있으며, 35백 년 전 고대인들이 상상했던 삼층 세계관은 설득력과 영향력을 잃고 무용지물이 되었다. 21세기의 종교는 삼층 세계관의 인격신론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떠나 보내고, 과학이 발견한 우주진화 세계관의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를 깨닫고, 그 의미를 실천적으로 살아내어야 한다. 하느님은 이 세계 밖에 저 하늘 위에 존재하는 인격신이 아니며 더욱이 믿어야 좋은 일이 일어나고 믿지 않는 나쁜 일이 생기는 믿음대상객체적인 존재가 아니다.

 

과학이 발견하기를, 20만 년 전 지구에 출현한 태초의 이성적 인간 호모싸피엔스는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생물종이다. 인간은 이 우주에서 살면서 자신의 자아의식으로 이성의 눈이 뜨여지고, 삼라만상으로부터 에 대한 정신적, 철학적, 종교적 의미를 인식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쏘크라테스, 노자, 장자, 석가모니, 예수가 인간의 본성자율성 창조성을 깨달았다. 또한 세월이 흘러가면서 인간의 이성이 성숙해지고, 과학적 사고가 깊어져서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톤, 다윈, 아인슈타인이 우주진화 세계관을 발견했다. 그리고 흄, 칸트, 스피노자, 헤겔, 하이데거, 프로이드, 프롬, , 키에르코르, 윌버는 과학적 사실로부터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 즉 우주, 자연, 생명, 인간의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의미를 발견했다. 과학과 종교는 마치 동전의 앞뒤와 같아서 어느 한 쪽을 무시하면 인간의 정체성은 온전하지 못한 반쪽이 될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은 땅에 떨어지고, 인류사회는 분열과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고 절망적인 위기에 빠진다. 인류역사가 분명하게 밝히듯이, 과학과 분리된 종교가 신봉하는 초자연적인 하느님은 차별적이고, 내세적이고, 이분법적이고, 물질적이고, 인격적이고, 배타적이고, 우월적이다. 따라서 인종차별, 빈부차별, 성차별, 성적본능차별, 종교차별, 기후위기, 황금만능주의 등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나 과학에 기초한 종교하느님은 우주진화 세계관의 현세적이고, 우주적이고, 통합적이고, 포월적이고, 비인격적이고, 현실적인 실제(實際 Reality) 삶의 비전이고 방식이다. 따라서 과학이 발견한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전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개체들이 지금 여기에서 경계 넘어 평등하게 존엄성을 잃지 않고 온전함을 살아내는 것이다.

 

오늘날 우주진화에 대해 주류 과학계와 철학계와 종교학계는 심층적인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현대과학은 자연과 생명과 인간과 이 세계의 상호관계에 대해 이원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내세론과 부족적인 삼층 세계관을 폐기처분하고, 오직 이 세계와 현세적 영원함과 우주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통합 비전(Integral Vision)우주진화 세계관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안한다. 과학우주진화를 발견한 것은 인류에게 기쁜 소식(복음)이다. 왜냐하면 인종과 종교와 문화의 장벽 넘어 온 인류가 조화를 이루어 평화롭게 사는 길은 138억 년의 우주진화 이야기공통의 경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성서를 기록한 고대인들이 상상할 수도 없었던 138억 년의 우주진화 역사에 따르면, 지구는 둥굴고, 태양 주위를 돌고 있으며, 수천조 킬로미터 밖에 엄청난 양의 질소 가스가 헬리윰과 용합하여 북극성을 이루고 있으며, 지구 상에 여러 개의 대륙판들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산맥들이 융기하고, 이러한 지각운동으로 인해 지진과 화산활동이 있으며, 바다에서는 쓰나미가 일어나고(판구조론), 살아있는 생물들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변형한다. 고대인들은 138억 년의 우주진화 과정에 대해 전혀 몰랐다. 성서가 집대성된지 15백 년 이상이 지난 후,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와 뉴톤과 다윈이 새로운 세계관을 발표했을 때, 기독교교회 지도자들은 종교의 세계관과 윤리관을 과학적인 세계관 위에 새롭게 정립하기를 거부했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과학적인 사실들을 기괴하고 우수꽝스러운 생각이라고 단정했다. 더욱 한심한 것은 과학이 발견한 사실들은 하느님에게 불경스러운 일이고, 사람들을 혼돈하게 하는 위험한 생각이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사람들이 잊어버리도록 강요했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아직도 구약성서에 기록된 히브리인들의 초기 역사를 인간과 생명과 자연의 기원 역사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과학의 고고학과 인류학의 발전으로 인간 50만 년 전에 의복, 오두막, 불과 손도끼를 완성했고, 18천 년 전 동굴벽화를 그렸고, 12천 년에서 9천년 전에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11천 년 전에 도자기를 만들었고, 55백 년 전 설형문자를 발명했고, 37백 년 전 초기 알파벳을 창조했고, 산스크리트 언어와 아리안-베다인들이 인도로 이주했다는 역사적인 사실들이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다시 말해, 35백 년 전 유대교와 기독교의 종교적 영웅인 모세가 탄생하기 200년 전에 팔레스타인 지역 이외의 세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이미 상세하게 알려졌다. 물론 기독교 성서에는 다른 지역들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현대 역사가들은 모세가 태어나기 전 그리고 아담 이브의 이야기가 기록되기 전, 동남아시아인들은 배를 타고 남태평양 섬들을 찾아다녔고, 토착민들은 지구의 대부분의 남반부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피라밋을 건설한 이집트 제국들의 흥망성쇠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성서가 기록되기 전 이미 오랜 세월동안 세계는 활발하게 운행되고 있었다. 세계 창조 시작은 성서가 기록된 곳이 아니다. 우주세계의 시작은 138억 년 전 자연적이고 우연적빅뱅의 순간이다. 다시 말해, 6천 년 전 하느님과 세계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성서에 기록되기 몇십만 년 전에 이미 장구한 진화과정을 거친 이성적인 호모싸피엔스 인간본성에는 창조성과 자율성이 있었다. 따라서 자아의식의 인간은 자신의  언어를 사용해서 세계의 모습을 창조했고, 거기에 하느님-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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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20-10-1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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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늘봄님의 지난 7년간인지 몇년인지 기억할 수 없지만, 동일 또는 비스무리한 내용의 regurgitation의 무한반복입니다. 그래서 아주 disgusting 한 글입니다.

그리고 무신론자이면서 "하느님의 의미"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은 어린 아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외치는 정도로도 정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런 시도는 지적으로 정직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주 못된 cultural 또는 religious appropriation입니다. 이런 문화/종교 도둑질보다는 정직하게 초자연적 신, 인격적 신을 완전히 배제된 religious naturalism에 맞는 단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좋죠. "가령, 자연의 깨달음을 살아내자." 그래서 일말의 양심이 있는 종교자연주의자들은 God니 하나님이니 하는 이상한 말을 삼가하죠.

본인이 아래서 분명히 유신론적 진화론을 거부하고 이것을 말하는 사람들은 혼란을 주는 사람들이라고 블레임을 하시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신 것 같아요. God이라는 말은 어떻 형태든 supernatural 또는 superhuman assumption이 있는 것이죠. 이른바 학문의 기초에서 분명한 글이 나오려면 분명한 개념과 정의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한 개념이 배타적이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즉 나무는 태양이 아니며, 물은 돌이 아닙니다. 신은 신이고 다른 것이 아니어야 독자들이 혼란을 겪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농담으로 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신을 버리지 못하는 종교자연주의는 유신론이라는 숙주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라는 뜻입니다. 기생충은 숙주가 죽으면 같이 죽습니다.

무신론적 종교자연주의는 기독교나 불교에서 기대지 말고 자기만의 독자적인 동창모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의 독립적인 종교집단으로서 존재할 가능성이 희박해요. 새로운 종교운동과 제도의 생로병사를 죽 살펴본 저의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