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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107] 크리스마스는 “유신론적 종교”를 넘어선 사회적-정치적인 도전이다!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4264 작성일 2020-12-20 17:24 조회수 4274

2천 년 전의 예수 탄생 이야기들이 오늘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무엇을 뜻하는가? 현대 기독교인들은 그 이야기들이 1세기의 고대 세계에서 지녔던 의미를 21세기의 현대 세계에서 뜻하는 의미로 전환해서 새롭게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현대인들은 성서를 읽기 전에 가장 먼저 성서가 기록될 당시의 극도로 제한적인 고대 언어와 고대인들의 우주관과 당시의 보편적인 신화적 문화환경과 생존에 위협이 되는 긴박한 사회적-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충분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면 현대인들은 고대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고 직역적으로 믿을 수 없다.

 

기독교 성서는 예수가 죽은 후, 반세기가 지난 후부터 기록되기 시작했다. 또한 성서 원본은 실종된체 2세기 동안 수많은 사본들이 필사가들에 의해 복사되었다. 현대인들이 읽고 있는 성서는 기독교의 공식적인 정경으로 채택된 적이 없었다. 다만 오늘까지 사본들의 모음집인 현대성서는 그냥 읽혀졌다. 주목해야 할 것은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누구였는지, 예수의 사상과 철학과 가치관과 윤리관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복음서를 읽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현대 성서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성서비평학을 끊임없이 발전시켜왔다. 성서비평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주류 신학계의 대학들은 성서비평학을 필수과목으로 채택했다. 오늘날 전문학자들은 성서비평 작업을 위해서 고대세계사, 고고학, 인류학, 지질학, 고대신화, 고대언어, 진화과학, 천문학 등의 학문들을 광범위하게 활용하여 고대 성서를 심층적으로 연구한다. 예를 들자면, 성서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왜 어떻게 기록했는지, 예수는 과연 하느님의 아들, 처녀 마리아의 아들이었는지, 예수는 무엇을 가르쳤는지, 예수는 기적을 행했는지, 예수는 새로운 종교를 창시할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누가 왜 예수를 처형했는지, 부활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독교는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서 탄생했는지, 예수의 하느님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등등에 대해 사회적-정치적-종교적으로 탐구한다.

 

특히 세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 탄생 이야기들을 왜곡하지 않고 정직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이 이야기가 출현하게 된 동기 배경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이 이야기가 등장할 당시의 고대 지중해 문화, 현대의 산업사회와는 다른 고대의 농경사회, 귀신들림과 치료와 치유 그리고 주술과 귀신축출, 제국과 식민지의 상황들, 지배층과 농민들, 정치와 가정, 세금과 빚, 계급과 성에 대해서 이해해야 21세기 성탄절 의미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예수 탄생 이야기들은 마태, 누가, 요한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서로 일치하지 않고 각각 독특하게 다르다. 더욱이 신약성서가 가장 먼저 기록될 때에 예수 탄생 이야기는 없었다. 최초 신약성서 저자바울과 최초의 복음서 저자인 마가는 예수 탄생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았다. 예수가 신비스럽게 탄생하였다는 전승은 기독교 교회가 탄생한지 비교적 후대의 전승이다. 성탄절 이야기들은 마태복음서 누가복음서의 처음 두 장에서만 발견되는데, 이 이야기들은 예수가 죽은 후 70-80년이 지난 1세기 말엽에 기록되었다. 요한복음서는 마태와 누가보다 더욱 후대의 것으로 성탄절의 의미를 동정녀 잉태 없이 신학적으로 설명했다. 또한 초대 교회가 탄생하고 수세기 동안 성탄절은 교회 예배력에 없었다. 물론 성서에는 예수의 탄생일1225일이란 기록이 없으며, 다만 서로 다른 출생지를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성탄절 이야기들은 마태, 누가, 요한 복음서의 전주곡으로 기록된 것처럼 보인다. 즉 각각의 성탄절 이야기의 핵심적 주제는 그 복음서 전체의 핵심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마태는 자신의 유다인 독자들을 향하여 예수를 유대인들의 왕이라고 정치적인 선언을 하며, 누가는 자신의 이방인 독자들을 향하여 예수를 사회적 예언자로 선포했고, 요한은 예수의 하느님은 종교적으로 믿어야하는 객체적 존재가 아니라 무신론적 창조적 에너지로 선포했다.  이러한 성서비평을 통해서 예수 탄생 이야기의 메시지는 사회적-정치적인 도전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따라서 1세기는 물론 21세기에 기독교인들이 참 사람 예수정신에 따라서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하느님의 의미를 살아내는 것은 개인적이며 동시에 사회적이고 정치적비전이다. 물론 개인적인 의미와 사회-정치적인 의미는 구분할 수 있지만 서로 분리할 수는 없다. 그것들을 분리하게 되면 서로를 배신하게 된다. 교회예수 탄생 이야기들의 사회적이고 정치적 의미를 무시하기 때문에 교회 밖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삶의 문제들에 무관심하고 세상과 분리된다. 따라서 예수 탄생 이야기들은 단지 개인적유신론적 믿음의 이야기로 전락하고 만다. 예수 탄생 이야기들은 우리의 현세적인 삶의 두려움과 희망과 용기에 관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다. 그 이야기들은 죽은 후 천국에 올라가는 유신론적이고 내세적인 이야기들이 아니다. 그 이야기들의 핵심은 우리 마음의 평화만이 아니라 이 땅 위의 평화이다.

 

예수가 탄생했던 1세기의 세상은 로마제국이 모든 것을 약탈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예수가 살았던 갈릴리와 유다 지방의 통치자들은 로마 황제에게 아부하고 자신의 권력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백성들을 쥐어짜는 일에 열중했다. 유대교의 제사장들은 성전을 마치 강도들의 소굴과 회칠한 무덤으로 만들었으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누리며 희희낙낙거리는 세상이었다. 민중들은 하루에 한 끼 먹는 것도 기적적인 일이었다. 따라서 폭력과 살인과 강간이 난무하며 곳곳에서 피바다를 이루는 세상에서 굶어 죽으나 저항하다가 칼에 찔려 죽으나 매한가지인 세상은 악마가 지배하는 지옥같은 세상이었다. 성전종교인격신론 초자연적 하느님98%의 힘없는 민중들을 위해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하느님은 권력층과 부유층의 편에 서서 그들을 보호했다. 이와같은 암담한 세상에 나사렛 예수가 태어났다.


예수 탄생 이야기들은 인간의 가장 깊은 갈망, 즉 어둠 속에서 을 기다리며 우리의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염원에 호소하는 내용이다. 예수 탄생 이야기들은 단순히 감상적인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들은 개인적인 변화는 물론 사회적-정치적인 변화에 도전한다. 원초적으로 예수 탄생 이야기들은 교회가 예수에 대한 유신론적 교리들 즉 삼위일체론과 원죄론과 구속론을 제정하기 훨씬 전에 기록되었다. 다시 말해 그 이야기들은 갈릴리 바닷가를 거닐던 초라한 농민, 평범한 나사렛 청년, 무신론적 참 사람 예수를 성상의 자리에 앉히고 신적인 예수, 하느님 예수로 변질시키기 훨씬 전에 기록되었다. 예수 탄생 이야기들은 거룩한 유신론에서 탄생하지 않았으며, 그대신 민중들의 삶의 현장에서 인생생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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