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는 다양한 인종들과 민족들이 살고 있다. 인류 집단은 얼굴 모양, 피부색, 체형, 골격 등 생물학적인 특성에 따라 인종으로 나누고, 언어, 종교, 생활양식 등 문화적인 특성에 따라 민족으로 구분한다. 인류의 언어는 오랜 세월 동안 한 민족의 역사, 문화, 정치에 매우 긴밀하고 복잡하게 작용했으며, 그 민족의 통일된 문화유산이다. 또한 언어는 인류의 문화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세계에는 약 6,500여 개의 크고 작은 언어공동체가 있다. 또한 특유의 관습이나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나누어진 민족이 전 세계적으로 약 3,000여 개에 이르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민족들은 환경에 따라서 자신들의 언어로 표현하는 고유의 종교를 만들었다. 그리고 세계의 문화권들과 종교들은 각자 자신들에게 가장 적절한 경전을 만들고,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발전시켰다. 이렇게 인류사회는 상호복합문화의 다원주의 세계를 이루고 있듯이,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세계는 하나의 생명의 망을 이루고, 우주 전체를 구성하는 개체들은 한 몸으로 상호의존관계 속에서 생존하고 있다. 이 우주의 법칙에서 어느 한 개체가 전체를 대표하거나 다른 모든 개체들을 통제하고 조정할 수 없다. 쉽게 말해서, 어느 특정 인종 또는 민족이 가장 우수하다든지, 어느 한 종교와 경전이 온 인류에게 절대적인 권위가 될 수 없다.
인류의 진화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2백60만 년 전에 최초의 인간 호모 하빌리스가 등장했으며, 20-30만 년 전 최초의 이성적인 인간 원시 호모 싸피엔스가 출현했다. 진화과정은 계속되어 7만 년 전 현대 호모 싸피엔스 인간은 처음으로 원시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처음으로 종교적 인식을 갖게 되었던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종교적 행위라고 할 수 있는 증거는 아직 언어가 발명되기 이전 중기 구석기 시대(50-30만 년 전)부터 발견되고 있다. 1만8천 년 전, 아직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 인간은 그림과 상징으로 자신들의 체험과 인식을 표현함으로써 정보를 축적해왔다. 드디어 인류의 최초의 문자라고 할 수 있는 설형문자가 기원전 3500년에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에서 탄생했고, 고전 문명의 시작과 함께 기원전 1800년에 최초의 창조신화 길가메쉬 서사시가 기록되었다. 고대인들은 신화에서 우주세계를 상중하 삼층천 즉 상층에는 신들이 살고, 중간층에는 인간이 살고, 하층에는 죄인들이 사는 것으로 상상했으며, 이때 신화들에서 신(god)이란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인들이 주목해야 할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하느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구약성서 창세기 이야기는 인류 최초의 기록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중근동 지역에 보편화되어 있던 신화였다. 다시 말해 창조신화의 원조는 구약성서가 기록된 기원전 1500-400 년 보다 훨씬 이전에 기원전 3000-4000 년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탄생한 창조신화였다. 결국 성서의 삼층 세계관적 창조론은 중근동 지역의 보편적인 창조론을 인용한 것이다. 다시 말해 바벨론에 유배되었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포로생활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하느님을 바벨론의 창조주 보다 더 훌륭한 하느님으로 격상하는 창조론을 창작했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들의 다신론은 유일신론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를 신중하게 읽으면, 기존의 수메르 문명의 창조론과 유대인의 창조론은 그 내용들이 너무나 흡사하며 유대인들의 플래저리즘(plagiarism 베끼기)이 숨길 수 없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류사에서 성서는 인간 생물종의
성서에 그렇게 기록되었으니 성서에 기록된 문자들을 무작정 믿어야 한다는 억지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습니다.
나에게 10살된 손자가 있습니다. 하루는 학교가 끝난 후에 나에게 전화로 심각하게 묻습니다. 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나는 손자에게 성서구절을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나의 양심과 이성으로 그런 몰상식한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대신에 그리스도는 믿어야만 하는 신적 존재가 아니라, 예수가 산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나의 최선의 대답이었습니다.
신자들은 성서라는 조그만한 방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인들을 성서라는 책 한 권에 그들의 인생을 감금해 버렸습니다. 성서는 단지 많은 책들 중에 하나의 지혜서일 뿐입니다.
성서는 백과사전, 역사책, 과학 교과서가 아닙니다.
성서는 자연의 법칙을 깨트리는 마술책이 아닙니다.
성서는 문자적으로 암송하고 믿어야하는 교리책이 아닙니다.
성서는 지금 여기에서 오늘 하루하루 순간순간 참된 인간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안내서입니다.
성서를 많이 읽는다고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며, 죽은 후에 천국에 올라가는 책도 아닙니다.
성서는 그저 평범한 책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자신을 변론하거나 상대방을 반박하기 위한 자기 정당화에 쓰이는 구절은 고작 10-20구절 정도입니다.
성서를 하나의 큰 그림으로 보고 전체적인 사상의 핵심을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구절 몇 개를 상습적으로 문자적인 인용을 거듭하는 것은 성서도 잘 모르면서 인간과 하느님과 예수에 대한 무식함을 드러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