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신론의 초자연적인 하느님에 대한 유신론과 죽음 후의 천국에 대한 내세론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다시 말해, 오늘날 유신론이 신뢰를 잃고 죽어가면서 내세론도 함께 설득력을 잃고 동반죽음의 길을 가고 있다. 이 두 가지의 비상식적인 믿음이 함께 죽어가는 주요 원인이 있다. 첫째로, 현대 기독교인들이 살고 있는 138억 년의 우주세계의 진화 과정과 역사는 이 세계와 다른 세계의 분리 또는 육체와 영혼의 분리라는 이원론은 원시적인 망상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밝혀주고 있다. 둘째로, 기독교인들이 따르는 예수는 부족적이고 이분법적인 인격신론의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반대했다. 예수는 형이상학적인 내세론자가 아니라, 현세적이고 형이하학적인 현실주의 사회개혁가였다. 다시 말해, 현대과학과 역사적 예수가 입증하듯이, 우리의 우주세계에서 죽은 후에 가는 하늘 위의 천국 또는 영의 세계 또는 내세적인 다른 세계는 없다. 21세기 과학시대에 기독교인들이 내세의 천국을 믿는 것은 예수를 배반하는 것이고, 헛되고 유치한 짓이다..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의 반경은 46억km, 은하계의 지름은 약10만 광년, 우주의 관측가능한 지름은 약465억 광년 (광속: 초속 30만km)이다. 2020년 7월 30일에 지구를 떠난 우주 탐사선이 2021년 2월 18일에 5600만Km 떨어져 있는 화성에 7개월만에 도착했다. 죽은 후에 하늘 위 또는 하늘 밖 천국에 올라간다고 믿는 기독교인들은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의 크기와 모양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태양계와 은하계는 접시모양의 원반형이며, 우주는 나선형으로 상중하층이 없으며 어느 공간에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우주 공간을 날르고 있다. 지구가 평평하고,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고대인들의 공상적인 천국을 오늘 과학시대에 문자적으로 맹신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짓이다. 태양 주위를 끊임없이 회전하는 지구에서 하늘 위와 땅 아래라는 구분은 무지함과 무식함을 드러낼 뿐이다. 무엇보다 이 세계와 저 세계, 물질의 세계와 영의 세계를 분리하는 플라톤의 이원론도 21세기 과학시대의 우주론에서 말이 되지 않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138억 년 동안 계속해서 팽창하는 우리의 우주세계는 영원하지도 않으며 언젠가 폭발해서 사라지고, 새로운 우주가 출현한다. 또한 우리의 우주는 유일한 것이 아니며 다른 우주들과 함께 다중의 우주세계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138억 년 전에 빅뱅으로 우주가 우연히 자연적으로 출현하여 지금까지 진화과정을 거쳐 우리의 우주적 환경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과학이 발견한 이러한 우주진화 세계관은 초등학교에서 대학원에 이르는 교육과정의 기초가 되고 있으며, 현대인들에게 내세적인 천국은 오히려 밝은 미래의 비전에 부정적인 장애물이 되며 위험하다.
코페루니쿠스와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발견한5세기 전까지만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평평하고, 하늘은 마치 야구장의 원형돔 천장같고, 땅 아래와 천장 밖에는 물로 가득하다는 삼층천의 우주론을 상상했다. 그리고 하늘 밖에 신들이 존재하고, 그곳에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죽음 후의 다른 세계를 간절히 염원했다. 고대인들은 신들과 세계를 창조하고, 이것을 은유적이고 서사시적인 신화로 기록했다. 그리고 삼층천에 기초한 종교체제가 만들어지고, 신화들을 기초로하여 경전들이 기록되었다. 고대의 삼층 세계관적 종교와 경전은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지난 수세기 동안에 발전된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운동으로 삼층천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무용지물이 되었으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우주진화 세계관이 현대인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 기초가 되었다. 따라서 죽음 후의 내세적인 천국과 영생에 대해서 주장하는 믿음체계는 설득력과 효력을 잃고 죽었다. 불행하게도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천국행 티켓을 팔아먹는 교회의 거짓과 은폐에 세뇌되어서 수동적으로 나가고 있다. 오늘 우리는 초자연적인 하느님과 천국과 영생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며, 참 사람 예수에게 솔직하고, 이성적이고 현세적인 교회와 종교가 절실히 필요하다.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다니는 목적과 의미를 내세의 천국에서 현세의 세속적인 세상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믿어야 하는 하느님을 하늘 위에서 땅으로 해방시키고, 하느님의 의미를 살아내는 삶의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의 의미와 인간의 의미와 생명의 의미에 대해서 삼층 세계관적인 과거의 패러다임을 떠나보내고, 우주진화 세계관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정과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망상의 믿음이 아니라, 상식적이고 이성적이고 솔직한 삶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들은 죽음 후에 이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이주해 가서, 거기에서 영원히 잘 살 것이라는 헛된 꿈에 사로잡혀 있다. 따라서 이런 내세론적 믿음을 보호하기 위해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으며 그것은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의 명령이란 어떤 의미이며,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성적이고 상식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예수의 하느님은 내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존재가 아니었으며, 오직 현세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삶의 방식이고 비전이었다. 예수의 하느님은 하늘 위에 있지 않았으며, 죽음 후에 만나는 존재도 아니었으며, 오로지 지금 여기 하루하루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살아내는 삶과 생명 그 자체였다. 예수는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을 하찮은 것으로 폄하하는 내세적인 성전종교의 안식일법과 십일조와 정결법을 철저히 반대했다. 예수에게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믿음체계가 만든 내세적인 교리와 전통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하느님의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서 코로나 바이러스 19의 국가적 위기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무시한체 바이러스 감염확산의 온상지가 되는 집단예배를 감행하는 것은 예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이비 종교단체의 파렴치한 행태이다.
오늘날 과학시대에 세상에서 설득력과 신뢰를 잃고 힘없이 죽은 내세론적인 초자연적인 하느님은 교회 내부에서 다시 살아나려고 온갖 몸부림을 치고 있다. 여전히 교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유신론적 하느님의 이미지와 언어가 예배와 설교를 차지하고 있다. 교회 지도자들은 내세적이고 유신론적인 생존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또한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와 역사적 예수에게 솔직하고, 참된 인간을 탐구하는 것에 완강히 반대하고 저항한다. 그들에게 하느님에 대해 달리 말할 수 있는 대안이 없으며, 유신론이 붕괴되면 지옥만 남는다는 공포와 불안에 빠져 있다. 우리의 주류 사회에서 자연의 법칙을 깨트리는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유신론을 교리적으로 믿는 것은 망상이며, 믿어야만 한다고 우겨대면 그것은 몰상식한 일이다. 이런 하느님을 믿으면 죽은 후에 하늘 위 천국에 올라간다는 내세적인 믿음도 몰상식하고 유치한 일이다.
우주진화 세계관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현대 기독교인들은 죽음 후의 천국행 내세론의 초자연적인 하느님에 대한 유신론이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무신론에 대한 편견과 공포를 용감하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한편으로 교회가 표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내세론적 하느님 언어에 세뇌되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으로 시달리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138억 년의 우주 역사 속에서 우주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살아내는 주류 사회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고대의 부족적이고 이분법적인 초자연적인 유신론적 하느님을 떠나 보내고, 우주적이고 통합적이고 현세적인 무신론적 하느님의 의미를 살아낼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여기 현세에서 초자연적 하느님 없는 무신론적(godless)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