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드림 캐나다 앨버타주 1등 신문

라이프

자유게시판

늘봄님 보시와요!!!--님의 인간관에 대한 자가 오류

작성자 내사랑아프리카 게시물번호 15455 작성일 2021-11-20 20:01 조회수 4548

* 늘봄님의 참고문헌 도서에도 나온 라일리의 책에서 서술된 예수의 영혼관에 대한 개략입니다. 본인의 사상과 반대되는 것을 인용하는 자유는 자유죠하지만 이것도 표절의 일종일 있습니다.
** 포스트는 지난 번에 제가 올린  예수는 영혼의 불멸 (Eternal Soul) 전파하다가 죽었다! 그가 부활했는지는 나는 모름에서 올리겠다는 글입니다

https://cndreams.com/cnboard/board_read.php?bIdx=1&idx=15408&category=&searchWord=&page=2


-아프리카 올림

 

그레고리 라일리의 [신의 강] (The River of God) 부제는 기독교기원에 대한 새로운 역사” (A New History of Christian Origins)이다. 라일리는 기독교의 기원을 알려면 하구 어귀 (estuary) 보기보다는 이런 강물을 이루게 다양한 물줄기를 살펴봐야 된다고 주장한다.   강줄기의 하나는 바로 예수의 유일신론(monotheism) 형성과 발전 중에서 중심축을 이루는  불멸의 영혼” (eternal soul) 발견이다.  어떤 이는 유신론적 이원론을 깨고 무신론적 일원론을 형성한 대표적인 인물로 예수를 들지만, 이것은 아직까지는근거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라일리는 반대로 예수는 일원론의 종교지형에서 이원론적 종교지형을 확실하게 촉발시킨 인물로 그리고 있다.   글은 라일리의 영혼관을 다룰 없고, 예수 이전의 종교지형, 예수의 영혼관 형성, 그리고 중요성를 다룬다.
The River of God - A New History of Christian Orig | Cokesbury

 하느님의 강 - YES24

 

예수 이전의 종교지형

 

1) 인간의 불멸의 영혼이 없다.

메소포타미아, 이스라엘, 그리고  초기 그리스 지역에서 형성된 종교관은


3
7
Utata  |  2021-11-21 14:29    
1 0

글이 좀 시간 순차적 순서이네요.

과연 우리에게 시간은 같은걸 까요?
아이쉬타인의 시간에 대한 설명과 증명이 이미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특히 인문학쪽은 부정을 하는것으로 봅니다.

우린 예수시대와 우린 동시간대에 살수 있다.

이걸 설명해드리면, 아마 더이상 시간에 대한 말이 필요할까 합니다.

우린 모두 다른시간대에 살고 있다.
이말은 시간은 더이상 절대적인게 아니란 말이지요.

< 시간의 실험 >

아이쉬타인이 말한 움직이는것은 시간을 변화한다는 것이죠.
그 증명은 우주선에 시계를 지상으로 가지고 오면 시간이 느려지는것을 확인 하였죠.
즉 모든 물건이 움직이면 시간의 차이가 나는 거지요.

비행기를 타고온 난 사실 미래의 사람과 같이 산다는것이지요.
비행기를 타는 동안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느려지고, 상대적으로 느려진 시간에 살다.
다시 내려오면 난 미래의 사람들과 살게 되는거지요.

즉 더이상 시간은 절대적인게 아니라 그냥 죄표에 해당하는 축이지요.
즉 시간축 말입니다.

사실 엄격히 말하면 우리 몸 조차 다른 속도를 가지고 있고, 다른 시간대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과거의 세포와 미래의 세포가 어울려져 현재의 나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종교에 대한 어떤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글들이 요즘 많이 보여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은 더이상 절대적인게 아니라, 더 위에서 보면 종결된 것입니다.
즉 우리의 모든것은 다 이루어졌다는 거지요.

그래서 시간의 다른 나의 몸은 각각 다른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과의 관계는 다양한 많은 것을 만들어 냅니다. (멀티우주론)

제가 여기에 글을 쓰는 시간도 있고, 또한 제가 글을 쓰지않은 시간이 있다는 말씀이지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유로 이해 안가는 몇개로서 전체를 부정하기도 힘듭니다.

세상에 도저의 이해가 안되는것이 많습니다.

우린 모두가 결정된 존재들입니다. 즉 우린 이민 결정되어졌고, 이루어 졌습니디.
하나의 영화처럼요.

너무 작은 직식으로 큰걸 판단하는것은 무리입니다.

신이 존재하냐 안하냐에 대한 결론을 내리시기에 너무도 지식이 짧고,
사실 그걸 판단할 사람은 최소한 여기에 없고, 어디에도 없을겁니다.

보다 배울수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혹시 진실을 아시는게 중요하십니까?
아니시면 자기 짤은 지식을 고집하시는게 중요하십니까?

많은 비유가 현 과학에선 많이 동떨어진 말들입니다.
시간은 정해진겁니다. 제 키처럼요.

자연적으로 우리가 만들어진 존재라면 참 이상합니다.
히한하게 우리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 나무처럼 자유롭게 생기질 못할까요?

그게 신이 없다면 우린 나무 처럼 생기는게 보다 자연스러운걸 겁니다.
암수가 있는게 자연스러운걸까요? 바위처럼 같으면 더 자연스러운데...

작은 부정으로 큰 부정을 이끄는것은 논리의 비약입니다. 신의 없다는 것 보다.
있다는게 더 많습니다.

자기 아는 지식을 이야기 하는것만 좋아하면, 절대로 오늘도 내일도 그 바닥입니다.

열려 있어야, 자기 자신이 보다 높아질수 있습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21-11-21 15:48    
0 0
Utata님, 님의 위 댓글의 논지가 무엇인가요?
내사랑아프리카  |  2021-11-21 17:35    
0 0
위의 글은 제 생각을 담았다기 보다는 그레고리 라일리의 [The River of God] 중에서 영혼 부분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제 개인생각을 담지 않고 라일리의 논지를 따라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라일리는 영지주의 문헌인 토마의 글들의 전문가이고 또 영지주의가 당시 기독교에 공헌도 상당히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의 영/육의 이원론은 전통적인 기독교와 상당히 다릅니다. 라일리는 전자에 더 방점을 찍는듯합니다.

제 소박한 생각에 영지주의는 내면의 신앙이나 영혼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영주주의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오강남 선생의 심층신앙도 영지주의적 관점과 상당히 연관이 깊습니다. 영지주의는 심층신앙을 전통적인 기독교는 표층신앙이라는 이분법이죠. 앞으로의 대안적 종교는 바로 심층신앙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 포스트에 간략하나마 담아 보려고 합니다.

말씀을 더 덧붙이자면, 종교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적 접근은 종교라는 현상 자체에 대한 것이지 신이 존재한다/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또는 예수는 부활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등의 증명에도 관심없고 “있다/없다”라고 하는 현상 자체에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이러한접근에는 religious studies라고 복수라고 표현하듯이, 종교에 대한 자연주의적 접근도 있습니다. 이런 접근은 종교란 자연의 현상이기 때문에 충분히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 설명 (explanation)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런 설명을 환원론 (reductionism)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노력이 인간을 이해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