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돈바스 내전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도 푸틴이 돈바스에 평화유지군 파견한다는게 단초가 되어 시작되었다.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동쪽 러시아 국경과 맞닿은 곳인데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2 개 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우크라이나는 동부가 공업이 발달했고 서부는 농업이 발달했다. 동부는 친 러, 서부는 친 유럽으로 지역 감정이 심하다.
돈바스는 소비에트 연방 시절 세계 최고 중공업 지역으로 각광을 받은 곳으로 소련이 미국과 더불어 양강 체제를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본토에서 돈바스로 이주했다.
돈바스의 몰락은 소비에트 몰락과 궤를 같이 했다. 기술 혁신과 투자가 없는 생산시설은 낙후하기 시작해 공해산업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연방이 해체될 때 주민투표에 의해 우크라이나에 속하게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는 행정구역 개편을 해도 같은 연방이었으나 이젠 남의 나라가 된 것이다.
키이우 정부는 부패하고 무능해 돈바스는 해를 거듭할수록 쇠락해 갔다. 주민들의 삶의 질은 계속 떨어져 수입이 80%가 줄었다. 돈바스가 호황을 누릴 때 러시아 본토에서 이주해 온 러시아 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인들이 섞여 살며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어가 공용어였고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계가 더 많았다. 돈바스 주민들은 과거 연방 시절 잘 살던 때에 대한 향수가 강하다. 국가에서 삶을 보장해 주어 남 부럽지 않게 살았으나 좋았던 때는 지나갔다. “이럴바에야 무능한 중앙정부 믿지 말고 우리끼리 살아보자” 라며 자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자치를 비롯해 중앙정부 약속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럴 때 야누코비치라는 인물이 등장했다. 돈바스 지역 출신 친러파 정치인 야누코비치는 도네츠크 주지사를 지내기도 했는데 중앙정치에 진출해 2004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부정선거 논란이 일어 “오렌지 혁명”으로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그후 우크라이나 EU 가입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공약을 취소하고 친러 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민중들은 ‘유로 마이단’이라는 봉기를 일으켜 야누코비치를 축출했다. 뮤지컬 ‘레 미제자블’의 바리케이드 봉기를 연상케
다만 젤렌스키 친미정부의 주변에서 기생하는 극우민족주의세력은 말씀하신대로 청산대상이 맞습니다.
1929 년에 창설된 Organization of Ukrainian Nationalists가 우크라이나 내에서 반볼세비키 반 소비에트연방을 기치로 출범했는데, 이들은 이후 2 차대전후 독일이 소비에트연방을 침공하고 우크라이나 지역을 점령하자 나치정부에 빌붙어 유대인과 공산주의자 색출학살에 가담했습니다.
이 친나치 세력들이 여러 조직으로 재탄생하며 부침을 거듭하다가 젤렌스키 정부가 등장하자 그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나토가입 등 반러시아정책을 밀어부치다가 이런 사태를 맞게 된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에 비협조적인 것도 다 이런 역사적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국회화상연설을 거부한 것은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무모한 침략전쟁을 비판하고,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예상치 못한 강한 저항정신에 공감하는 것과는 별도로, 사태자체는 객관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독일 통일하면서 "나토의 동진은 더 이상 없다"는 약속은 구속력도 없고 과거 소비에트 연방 이었던 발트 3국 폴란드 헝거리 루마니아 체코 등등 모두 나토가입과 EU가입을 원하는데 구속력 없는 약속 보다는 주권국가의 선택에 따라야 합니다. 몰도바 같은 작은 나라 빼고는 전부 나토 회원국에 EU회원국에요.
우크라이나 빼고.
우크라이나도 주민투표에서 나토 가입, EU가입이 훨씬 많아요. 러시아는 지역패권이라도 되찾겠다는 꿈 버려야 하구요. 전쟁으로 통해서라면 모를까 말로 해서 러시아 연방에 들어갈 구동구권 나라가 어디 있겠어요? 전쟁이야 어차피 시작되었고 우크라이나에 좋은 결과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