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끝까지 뻗은 길 위로
알버타의 6월 햇살은 눈이 시리도록 투명한데
내 반백의 머리칼 위로 자꾸만 사십 년 전
그해 오월의 매캐한 최루탄 기가 겹쳐온다.
독재타도와 계엄철폐를 외치던 청춘,
라이락 꽃 만발한 그해 6월의 캠퍼스 도서관 꼭대기서 쩌렁대던 친구의 절규
독재타도! 계엄철폐!
내 청춘은 군화발에 짓밟힌 아스팔트 위에 두고 왔는데
시간은 무심히 흘러 이 이국의 광활한 대지 위에 나를
세워두었구나.
아, 계몽령 이라니.
윤석열의 그 무모했던 계엄선언을 두고
그대들은 그렇게 부른다.
깨우쳐 이끄는 명령이라니, 이 무슨 가당치 않은 유희더냐.
그대는 새벽을 깨우는 군용 트럭의 무거운 엔진 소리를 아는가.
탱크의 궤도가 아스팔트를 긁으며 오던 그 공포의 무게를 아느냐.
총구 앞에 숨죽여야 했던 어머니의 흐느낌과
쥐도 새도 모르게 남산으로, 보안사로 끌려가
비명조차 박제되어 버린 친구들의 끊어진 손가락을 그대는 아는가.
계엄령은 숨구멍을 틀어막던 거대한 무덤이었다.
자유는 공기처럼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어늘,
그 서늘했던 군사독재의 망령이 다시금 살아나
민주주의의 목을 죄려 했던 그 밤의 섬뜩함을
어찌 '계몽'으로 분칠할 수 있단 말인가.
역사를 잃은 청춘의 눈동자는 슬프다.
그 무서움을 회상하는 이 늙은이의 회한은
알바타의 거친 바람 속으로 흩어지지만, 내 마음은 이미
종로로, 광화문으로, 그 밤의 국회 앞 길거리로 달려가고 있다.
신경림 시인은 일찍이 노래했지,
우리는 깨어지고 부서지면서도 다시 만나고 있다고.
그래,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강물이 흐르고 흘러 마침내 거대한 바다에서 만나듯,
그 시절 피 흘렸던 노병의 기억과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그대의 차가운 지성이
이 로키산의 굳건한 바위처럼 단단하게 다시 만나야 한다.
알버타의 끝없는 하이웨이 1번 위에서
나는 정면의 거대한 산을 바라본다.
그대여, 명심하시라.
계엄령은 결코 그대를 깨우치는 계몽령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베어버리려는 날 선 도끼 였을 뿐.
다시는 그 어두운 시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달리는 길 위에서 간절한 기도로 그대를 부른다.
우리는 이 아픔의 기억 속에서,
반드시 다시 만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