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40주기라는걸 알기도 전에 며칠전부터 우연인지 전태일 평전을 읽고 있었습니다. 책첫장에 "85년에 진나글방에서" 라는 싸인이 되어있었으니 25년만에 다시 꺼내든 책이네요. 카나다에 살것이 확정되구 한국에 갔을때 책을 죄다 버렸었는데 이 책은 어찌어찌 태평양을 건너 왔네요.
한겨레에 가보면 "나에게 전태일이 무엇인가" 하고 묻습니다. 저두 생각해 보았는데 딱히 좋은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전태일열사를 생각해 보는 기회로는 더 없이 좋은 기획입니다. 암튼 저의 소년시절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몇몇분들중 한분인것은 분명하구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46424.html
25년전 그때 광주항쟁과 전태일을 읽고 혼자 많이 울었었던 생각이 나네요. 착/한/바/보 전태일을 추모합니다. 토마올림

target=_blan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66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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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논객 조갑제님께서는 전태일 열사도 친북좌파의 사주를 받고 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이 분은 주무실 때 테러당할까 야구 빠따를 침대밑에 두고 주무신다고 합니다. 전태일 열사도 사주를 받았으니 오죽 하실까요.
담에 아프리카님 뵐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요?) 그 평전이랑 그 영화 the edge of heaven 가지고 나가겠습니다.
-- 이말씀에 한마디하자면... 저두 비슷한 맘입니다.
Scorpions님의 무기 설명,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조갑제님이 손님으로 초대받아서 한 내용입니다. 유트브에 있었는데 지금도 있을 것입니다. 조갑제선생은 말씀을 아주 차분히 하는 스타일이고 너무나 차분해서 극우 논객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경이감을 느끼게 하는 분이더군요. 어쨌든 멋진 분입니다.
물론 그러한 혈기가 반드시 비난 받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의감과 용기란 것은 일종의 계급적 위치 또는 인간적인 품성에서 나오는 특성이기 때문이라고 보기에 그러합니다.
무임승차라고 한 것은 지나친 폄하이겠지만 저 같은 경우엔 운동을 그만두는 것이 힘들어서 계속 나간 경우지요. 스스로 배신하는 것 같은 느낌이 싫었다고나 할까요.. 어쩌면 참 한심한 생각이기도 하지요.
전태일 열사는 제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준 선생같은 분이시지요. 그 분의 따뜻한 인간애는 시대를 초월한 모랄 중의 하나라고 봅니다.
그 분의 평전을 군대에서 읽다가 고참에게 엄청 두들겨 맞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금서를 읽고 보관한다고 보안사에 넘긴다는 공갈도 받고 그랬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토마님 ^^
그리고 지나고 보면 그시대는 엄격함이 지나쳐
무서운 낙인찍기가 성행했던 것도 같아요.
소부루주아로 낙인찍힐까 본의아니게 과격해지는
면도 있었던 것 같고..
사실 진보진영에서 이런 면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프리카님의 자책은 분명히 지나치신 것 맞습니다.
누구도 그와 같은 자책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보는데요..
노회찬의원이 전태일열사의 동생 전순옥 *사장님* 을 만난 링크입니다. 오빠나, 동생이나, 그 어머니나 어떻게 그렇게 보통사람들하고 다를 수 있는지요...
<a href=http://chanblog.kr/367
target=_blank>http://chanblog.kr/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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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늦지 않은 것같은데요. 한 때 젊은 날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활동을 통해서 꾸준히 사회변혁을 위해 나아가야 하는데요. 의식의 진보는 문화적 진보와 함께 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종교, 음악, 영화, 경제, 정치 등 전분야에서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서 조금씩이이라도 실천해야 될 것같습니다. 저는 사회적 실천은 개인의 도덕적 양심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 활동을 통해서 이뤄져야 하는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꾸준히 할 수 있겠죠.
며칠 전에 곧 은퇴를 앞둔 분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연세가 있는데도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인데, 은퇴할 무렵 뭔가를 해야겠다고. 제가 농담으로 그랬죠. 하실 꺼면 빨리 coming out 하시는 것이 어떤가요? 이 분은 \"만일 그러면 상처받는 사람이 있을거구, 또 그 동안 쌓아온 인간관계가 단절될 것이라고.\" 저는 \"힘들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이 바른 인간관계일까요?\"라고 한마디 말씀.
이소선 여사와 박종기 선생의 인생 역정은 사회가 개인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고, 이 분들은 그 어려운 가족사를 딛고 우뚝선 시대의 부모님들이십니다. 한 분은 박정희 때, 한 분은 전두환때...이 분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텐데요. 이 두 역사의 가해자인 박정희는 시대의 영웅으로, 전두환은 웃으면서 골프치고 돌아다니고...현직 가해자가 한명 더 있죠. 이 넘이 댓가를 받는 것을 꼭 보고 싶습니다.
한국에도 나찌 전범 재판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친일인명사진 만드는데도 반동적 저항이 거세니, 제대로 된 \"역사적 기억\"조차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50년대-6.25, 60년대-4.19, 70년대-전태일, 80년대-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