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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엔드림 소통마당에 대한 어느 교회 리더의 반응을 듣고 (내용은 공개 안 함)
인문적 소양은 독서와 사색의 반영이다. 학습과 훈련에 의해 개발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든다. 사람에 따라 독서와 사색, 학습과 훈련으로만 커버되지 않는 불가항력적인 여백이 존재하는 듯 하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공부하고 나이를 먹어도 극복하기 어려운 사고력의 한계가 보인다. 반면에 사람에 따라서는 타고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이나 경력에 비해 탁월한 관점과 직관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인문적 소양이란 좁은 의미의 인문학적 지력이 아닌 탁월한 관점과 본질을 꿰뜷는 직관력을 생산해 내는 지성적 감각체계를 말한다.
온라인에서 수 년간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 보았다. 20 대부터 6-70 대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직업과 학력도 천차만별이다. 온라인 인연이 오프라인 만남으로 ‘승화’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다양한 만남의 경험들을 통해 받은 강렬한 느낌이다.
온라인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목적은 무엇일까? 과연 모든 행동에는 그 행동을 수행하는 목적이 있을까?
만일 목적의 의미가 purpose 나 goal 을 의미한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모든 행동에 그런 의미의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행동에는 동기 (motivation) 나 이유 (reason)가 존재한다.
싸르니아가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종교에 관한 글을 올린다. 전에는 이곳 자유게시판에 올렸었다. 종교이야기방에 며칠 전 처음으로 글 하나를 올렸다.
왜 그런 글을 올렸을까? 교역자들과 교인들이 성서무오설이나 축자영감설을 믿는 바보들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 계몽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그 분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그 분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다지 관심도 없다. 그건 전적으로 그 분들 개인마다의 선택이고 사상이다. 누구를 설득하는 일에는 애당초 취미가 없다.
싸르니아는 기본적으로 사회 안에 존재하는 다원성의 각이 서로 예리하면 예리할수록 역으로 톨러런스의 기대치가 확대된다고 믿는다. 복음주의자와 무신론자가 intimacy한 친구가 될 수 있는 사회야말로 예수 선생이 희망했던 공동체일 것이다. (참, 예수를 가리켜 선생이라고 지칭했다고 길길이 뛰는 목사와 장로들은 한국을 가리켜 남코리아라고 불렀다고 설레발을 치는 '남녀직원들'과 비슷한 오버를 하고 있는 것인데,, 분명히 말하지만 '선생'은 경칭이고 '남코리아'는 공정한 호칭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꽤 알려진 순교 목사님의 외손자로 자랐지만, 자라는 내내 예수 선생을 신통치 않게 생각했는데, 그의 놀라운 인문적 소양을 발견하고 공감’을 받은 적이 있다. 아마 1990 년대 초반 캐나다로 이주한 직후 criminology 를 공부할 때인데, 어느 학기에 선택해서 들은 religious study 과목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한 때 교회도 다녔다. (정말???) 나중에는 결국 일년에 두 번, 터키 디너에만 참석했지만 싸르니아로서는 혁명적인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요새는 교회에 가는 대신 일요일 아침마다 쳅터스 서점에 딸린 스타벅스 소파에 앉아 독서와 명상시간을 가진다.
탕약같은 스타벅스 커피를 안 좋아하기 때문에 맥카페 커피를 사 들고 간다. 그래도 파란 눈의 스타벅스 직원은 활짝 미소띤 얼굴로 싸르니아를 맞이한다.
내가 대화와 토론과정에서 가장 흥미롭게 주목하는 부분은 어떤 사람이 전개하는 논리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관점이 서로 일치하는가 여부이다. 싸르니아는 어떤 사람이 정치적으로 진보적인지 아니면 보수적인지, 종교적으로 fundamentalism 에 빠져 있는지 무신론자인지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그 사람의 사고력과 인문소양에 주목한다.
정보가 개방되어 있는 세상에서는 정보를 선택하고 해석하는 개인의 사고력과 인문소양에 따라 ‘그 사람의 격’ 이 결정된다. ‘지식 자체가 권위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사고력과 상상력’의 수준이 결국 인간의 격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다.
사람의 생각은 다양하다. 역사도 환경도 성격도 지력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생각과 너무나 동떨어진 의견이 등장했다고 해서 충격을 받거나 증오심을 발산할 필요는 없다. 지나치게 reactive 한 설레발은 금물이다.
엉뚱하게 온라인 게시판을 운영하는 신문사나 글 올리는 네티즌들에게 저주를 퍼 붓는다고 해서 자신의 맘이 편해진다거나 신앙이 더 강하게 지켜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견이 있을 때는 반론하시기 바란다. 반론을 준비하고 상대방과 토론하는 과정이야말로 자신을 좀 더 강하게 훈련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과학수사
유쾌하게 수사하고 화끈하게 방면한다
별것도 아닌 잔잔한 이야기에 설레발을 치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이겠지요. 영적 주제 가지고 고민할 때 텅 빈 공간을 만들어놓지 않고 무엇을 움켜쥔 채 그것을 놓칠까봐 불안해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존 쉘비 스퐁의 저서들은 비교적 쉬운 문장이 맘에 듭니다. 번역본과 원본을 함께 가지고 있다면 영어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 입니다. 한국의 어느 교회에서 평신도들이 세미나를 하면서 쉘비 주교의 저서들을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2007 년에 나온 이 분의 저서 J for NR 후반부에서도 결론적으로 강조하는 말이지만 4 세기적 사고에 제한된 유신론적 하나님관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핵심 화두 인 것 같습니다.
자, 여기까지는 그냥 일상 이야기니까 여기에 올리고 그 이상은 종교이야기방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보통 종교간의 대화는 대형종교, 이른바 세계종교(World Religions)와의 대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수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이단종교와도 해야 하는 것이죠. WCC(세계교회협의회)는 이미 신종교(New Religions)와도 대화를 해야 한다고 문헌을 발표 했습니다. 한국에서 \"이단중의 이단\"이라고 하는 통일교와도 대화를 하지 못할 법은 없죠. 대화를 가로막는 적은 비관용적인 태도입니다. 하지만 관용적인 사회에서 비관영적인 태도는 관용하지 못할 것같아요. 여기서 종북주의 운운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기 힘든 것도 그런 면이죠.
뱀의 해를 맞아 새해덕담으로 뱀 이야기했다가 뉴에이지 사탄숭배자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아, 이건 한국의 어느 목사 선생으로부터...)WCC 대회가 한국에서 열린다는데 한국에 그 대회를 호스트로 감당할만한 교단이나 진보적 기독교 세력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민주화 운동 열심히 했다고 진보는 아니겠고, 거 참..
맘에 안들면 다 뉴에이지라고 걱정들 하죠. 제가 아는 어떤 불교인이 어느 교회 싸이트에서 뉴에이지는 사탄적이고 이단적이라고 해서 저한테 그 노래 들어도 되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씨크릿 가든도 뉴에이지 음악에 속한다고 하는데 사탄적이겠네요.
한국에서 WCC 반대하는 인간들 땜에 많이 홍보되고 있는 셈이죠. 도킨스의 God Delusion도 보수 기독교인들이 설치는 바람에 책 엄청 팔아 먹었을 겁니다.
제게 뉴에이지 사탄 운운한 그 목사는 제가 사순절을 앞두고 교회 파괴공작을 시도하는 거라고 게거품을 물었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 사순절이 시작되었다면서요. 정작 저는 그 사순절이 언제 시작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말이죠.
http://www.amazon.com/Little-Book-Atheist-Spirituality/dp/0143114433/ref=sr_1_1?s=books&ie=UTF8&qid=1361170544&sr=1-1&keywords=atheist+spirituality
이 책을 방금 펼쳐보니 보다가 제가 남긴 노트가 있는데 이렇게 썼더군요.
\"신을 믿는 사실 때문에 또는 신을 믿지 않는 사실 때문에 인간성의 우월을 주장할 수는 없다. 그 우월성은 누가 더 인간적이냐에 달려 있다.\"
사이몬 앤 가펑클도 마귀였고 오지 오스본도 사탄이었고 뭐 다 그랬지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지난 수요일이 재의 수요일이었지요. 그런데 \'인간은 흙에서 태어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 이라던가 \'인간이 죽는 것은 죄\' 때문이라는 것은 참 명언이자 대단한 통찰력입니다. 어제는 사진 찍으러 자스퍼 갔었는데 날씨는 귀가 막히게 좋았지요.
근데 WCC 부산대회에 4개항을 선언한다는데 그건 어떻게 되었나요?
기독교는 고대 5000년전 이집트 태양신에서 파생된 하나의 구원론적인 종교이지만, 현재 존재하는 모든 종교가 그렇듯, 태생적 모순을 극복하려는 개개인의 부단한 자기성찰을 통해 God에 대한 Worship과 Religion으로 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아는게 병이고 모르는게 약이지만, 우리가 무엇을 그 어떤 것을 알고 모른다고 해서 인간의 삶이 진실에 가까워 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감당할 수 없는 진실에 가까워지고 싶은 부질없는 욕망을 채울 뿐 이지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에…
종교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올린 글은 아니었고, 대화의 자세와 인문적 소양의 관계에 대해 느낀 점을 토로한 글이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여러가지 주제를 넘나들게 되었군요.
이래서 주제의 분리 또는 격리란 참 어려운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종교방 분리의 원래 취지는 자유게시판에 노골적인 교회광고가 창궐하는 것을 막자는 거 아니었나요?
일부교회는 대회 자체를 반대 한다고 하더군요. 빨갱이 동성연애자들로 인해 거룩한 성지가 더럽혀 질수 없다던데요. 그나 저나 공동선언문에 기대하던 사람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파기 되었다니 그 사람들 실망이 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