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황사영의 백서서건이니 윤지충의 신주사건이니 하는 것을 개인의 일탈로 보면 안됩니다. 일명 천주교로 통하는 로마 카톨릭 교회는 로마 교황청을 정점으로 형성된 위계적 구조를 가지고 있죠. 그래서 한국 천주교 전래에서 유교라는 보수적 정치체계 속에서 약 만명의 순교자가 나왔는데, 그 원인은 바로 중국과 조선의 조상숭배 그리고 제사문제와 연결됩니다. 이것은 좀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The Chinese Rites controversy
라는 개념으로 널리 알려져 있죠.
특히 로마 교황청이 중국 선교사로 간 가톨릭 예수회에 보낸 서신들에 이 내용들이 아주 상세히 진술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원래 라틴어로 된 문서인데 영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한국 천주교는 조상의 제사까지 인정하는 포용적인 구조를 갖고 있고, 이것을 부정하는 개신교는 꼴통보수 취급을 하지만, 사실 천주교의 제사 인정은 로마 교황청의 이른바 이교문화 이해에 대한 갑작스런 정치적 변화 때문입니다. 한국 천주교가 조상제사를 인정한 것은 이것이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조상 존경으로 취부하고, 일제 때 신사참배도 허용한 것 역시 국가의례라고 로마 교황청이 말바꾸기를 해서 갑자기 한국 천주교가 친일행각을 한 것이져. 그전에 그랬다면 순교자 약 만명(또는 8천여명)에 이르는 희생은 아마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교황청의 일제에 대한 배려 때문인지도 모르죠.
제가 갑자기 이런 글을 쓴 것은 그만큼 천주교는 역사적인 근대에서도 저 멀고 먼 동방의 은자의 나라, 그것도 선교의 초초초기에 있던 조선 인민대중들의 종교의례까지 통제했다는 것이죠. 빛나는 한국의 순교사 뒤에는 로마 교황청의 폐쇄적 배타적 타문화 이해가 깊이 도사리고 있었다고 보구요. 카타콤의 순교자 등으로 치장된 초기 기독교의 빛나는 순교의 역사에서 수세기에 걸친 순교자가 500명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조선의 보수적 배타적 종교 정책으로 약 만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게 했다는 것은 좀 지나친 발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천주교의 순교사의 한 이면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런데 제가 깊이 존경하는 프란시스 교황께서 약자의 편을 들고 가난한 이의 눈물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하셨는데, 한국의 염수정 추기경이라는 분, 대단합니다. 뭐, 이 분도 교황님께서 임명하셨으니 할 더 말씀은 없지만요. 에고...
당신의 공감능력은 박근혜님과 오십보백보죠. 저의 이러한 개인적 발언이 anti-Catholicism으로 들리지 않길 바랍니다.
"유가족이 양보하라"
염수정님, 저는 당신의 이 정치적 발언을 박근혜님 발언으로 오해했습니다.
역쉬, 모든 발언은 정치적입니다. "순수"의 이름으로 말이져.
백프란시스코가 더욱 냉담해지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1987년 1월 14일 대학생 박종철군이 고문으로 사망한다....
고문경찰 : 이게 뭐야.......
(쳐보지만 일어나지 못한다.)
죽었다..... 큰일났어.,....
경찰은 사건을 조작한다.
경찰국장 :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그런데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 그리고 가담한 경관은 2명입니다.'
분노한 김수환 추기경님은 1월 26일 이를 비판한다.
김수환 추기경님 : 이 정권에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습니까?
총칼의 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그것은 고문 경찰관 두 사람이 한 일이니 모르는 일입니다’ 하면서 잡아떼고 있습니다.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
어떻게 한 학생을 죽이고 이렇게 비열한 짓을 합니까!!
이 소식을 들은 국민들은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자 전두환은 4월 13일
전두환 : 지금처럼 몇몇 사람들만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을 것이며.......
국민들이 직접 투표하는 직선개헌을 안할겁니다......
국민들은 분노하여 힘찬 민주화운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직선개헌하고 민주화실시하라!!
그리고 87년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김승훈 신부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김승훈 신부 : 박종철군을 죽게한 경찰관들은 2명이 아닌
5명이며...... 이 일에는 은폐와 조작이...... 그리고 물고문으로 사망하였으며......
서울, 대전, 부산등 여러곳에서 일반 시민들까지 참가하기 시작한다.
1987년 6월 10일 연세대학교 (시위가 한창중)
이한열 : 아악.......
이한열의 친구 : 한열아 왜그래.....
이한열 : 최루탄이 내 몸에.....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은 사건으로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사건이 된 6월항쟁)
시위대는 경찰에 쫓겨 명동성당으로 온다....
시위대 : 김수환 추기경님..... 저희들을 도와주십시오.....
여기가 아니면 갈곳이 없는 저희들입니다....
김수환 추기경 : 좋습니다....
그렇다면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내려놓으시오.......
강민창 경찰국장 : 당장 시위대를 내보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명동성당을 밟을 수도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먼저 저를 만나게 될 겁니다.
그 다음 신부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수녀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저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도 밟고 가십시오.”
(경찰은 돌아가고 김수환 추기경은 그들을 일주일동안 보호해주었다.
명동성당의 피신은 민주화운동에 큰 역할을 하여
대한민국 전 지역의 시민들이 참가하는 운동이 되었다.
(호헌철폐!! 군정종식!!)
마침내 당시 민정당 대표 노태우는 육이구선언을 발표한다.
노태우 : 직선개헌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며......
김대중씨를 석방하여.......
그후 이한열은 7월 9일 사망하여 많은 국민의 애도속에 장례식을 치렀다.
그의 장례식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 지역을 돌았다.
그리고 박종철과 함께 2001년 민주화운동의 공로로
명예졸업장을 받게된다
[출처] 김수환 추기경과 6월항쟁
천주교의 정식 명칭은 The Roman Catholic Church입니다. 한국 천주교를 포함해서 그렇다는 말씀이구요. 가톨릭 역사상 폭풍 변화를 몰고 오신 분은 제2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한 요한 23세이십니다. 원래 보수적인 분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제 2 바티칸 공의회를 전환점으로 해서 성서에 대한 비평적 이해가 가능해졌고, 개신교도 이단이 아닌 형제로 받아들여졌으며, 칼 라너를 위시한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활발한 논의가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요한 바오로 2세나 베네딕트 16세때는 보수 반동의 시대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일어난 변화의 물길로 신부 지망생들과 수녀들의 수가 줄고 천주교내의 개혁의 바람이 조직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던 것같구요. 저는 프란시스코 교황께서 천주교 조직 자체의 개혁에까지 손을 대실 정도로 젊지 않다고 보고 있지만, 이 분께서 그동안 하신 행보는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교황의 행보에 찬물을 끼얹는 분이 바로 염추기경 같은 사람이라고 보구요. 이분은 지극히 보수적일뿐 아니라 김수환 추기경같은 분과 달리 사회적 인식이 상당히 결여된 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자기가 하는 발언이 무슨 사회적 함축을 갖고 있는지모르거나 아니면 지극히 명민하여 기회의 밧줄을 잘타는 분 같다는 생각이 들구요. 독도는 자기들 땅이라거나 위안부 부인을 돌아가면서 하는 일본 극우 정치인들과 동일한 형태를 보이는 새누리당사람들과 같은 배를 탄 분으로 보이구요. 이명박 이후 이어지는 반동의 시대는 상당한 후유증으로 남을 것같군요. 잃어버린 10년의 회복은 커녕, 새눌당 어떤 자의 발언처럼 516 군사쿠데타(내란) 전야에 있는 것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