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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년 전 쯤, 한국의 어느 모임에서 작가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장편 서사시 ‘한라산’ 의 저자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한라산'은 1987 년 창간호이자 종간호가 되었던 ‘녹두서평’이라는 이름의 잡지 맨 첫 부분에 실렸었다.
제목이 한라산이라고 해서 한라산 등반이나 제주도 소주 이야기를 다룬 시는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즈음에 제주도 전역에서 벌어졌던 도민학살사건을 묘사한 십 수 페이지에 달하는 서사시였다. 한국인들이 이 사건을 실감나게 접한 매체는 이 사건에 대한 보고서나 보도기사가 아니라, 바로 이 시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그만큼 당시에는 이 사건에 대한 정보가 신통치 않았다.
‘여명의 눈동자’ 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23 년 전에 방영된 MBC 드라마였다. 언젠가 이 노래의 주제가도 올린 적이 있다. 이 드라마에 탤런트 전미선이 나왔었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할 분들이 있을 것이다. ‘전미선이 여명의 눈동자에 나왔었다고?’어디서 뭘로 나왔다는거지? 하고…
분명히 나왔었다. 그 드라마에서 전미선은 제주 4.3 항쟁을 주도하는 ‘촛불소녀’로 등장했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일제강점기 말, 미군특수부대요원으로 제주도에 잠입한 장하림을 돕는 어부의 딸로 나왔다가, 해방 후에는 거꾸로 미군정과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을 위한 총선거에 반대하는 소녀투사로 변신했다.
정부에 소속된 군사조직이 아닌 민병대,즉 민간인들로 구성된 무장단체 중 민간인들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잔혹하게 학살한 단체를 꼽으라면 단연 ‘서북청년회’ 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서북청년회는 해방정국판 탈북자 단체였다.
탈북청년들로 이루어진 이 폭력살인단체를 이끈 지도부는 역시 같은 탈북 기독교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탈북 기독교청년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사람은 한국 개신교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한경직이라는 분이다. 직업은 목사였다. 이 분은 특이하게도 자신의 친일행각에 대해서는 참회를 했는데, 자신을 정신적 지주로 받들어 모시던 탈북폭력단체가 3 만 여 명의 민간인을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방법으로 학살한 사건을 주도하다시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별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지난 가을 웬 아줌마 아저씨들이 난데없이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며 주책을 부리며 소동을 피운 적이 있는데, 이들이 말하는 서북청년단이란 아마 서북청년회를 의미할 것이다. 이 단체가 출범하고 활동할 당시 공식명칭은 서북청년단이 아니라 서북청년회였다. 단체의 공식명칭도 제대로 모르는 꺼벙한 분들이 뭘 재건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꺼벙한 사람들은 또 있었다. 몇 주 전,, 서울시 청소년수련관 관계자들이 서북청년단이란 말을 듣고 ‘아, 은평구 (서울 서북지역에 있는 구)에 있는 청소년 단체인가 보구나” 하고 이들에게 집회장소대여를 허가했다가 나중에야 부랴부랴 취소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국사교육이 개판되니까 벼라별 웃기는 일이 다 벌어지는 것같다.
사람이 이런 모습으로도 얼어죽을 수 있을까?
사진 속 여인은 서울시 관계자들이 "은평구 청소년 모임" 인 줄 알았다는 그 단체에 소속된 폭도들에 의해 모든 가족을 다 살해당했다. 당시 해안으로부터 5 km 안쪽 이내의 중산간마을 95 퍼센트가 불에 타 사라졌고 그 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민병대의 사냥대상이 되어 보이는 족족 죽음을 당해야 했다. 광기에 사로집힌 살인마들의 추격을 피해 아기를 안고 가까스로 마을을 탈출한 이 여인과 아기는 한라산 기슭에서 이 자세로 얼어죽은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이 아기엄마의 나이는 25 세 였다고 한다.
이 기념관을 나오면서 기념관 관리자에게 질문한 말이 있다. 관리상태가 너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싸르니아가 관리자에게 한 질문은 딱 한 마디였다.
"박근혜가 돈을 안 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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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바라 본 제주시 전경이다. 날씨는 내내 이렇게 흐렸다. 오른쪽 제주항에서부터 왼쪽 공항에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모습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창가에 있는 소파에 앉아 제주항에 들고나는 배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지난 4 월 16 일 아침에는 세월호가 저 항구에 평화롭게 도착했어야 했구나,, 하는 생각도 떠 올랐다.
야채호떡을 처음 먹어봤다. 어묵은 안 먹었다. 국물만 한 컵 마셨다. 호떡은 세
개 먹었다. 가격은 기억 안 난다.
(다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어묵도 한 개 먹었다)
한국여행하면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 24시간 영업하는 집에 들어가면 별로 실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귀포에서도 그랬고 제주시에서도 그랬다.새벽 다섯 시에 아침을 먹었다.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시차가 바뀌는 바람에 항상 새 벽 세 시면 눈이 떠졌기 때문이다. 항상 그랬다. 세벽 세 시에 일어났다. 한 시간 동안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샤워하고 밖으로 나왔다. 늦가을의 새벽.. 밖은 언제나 캄캄한 어둠이었다.
‘이중섭 거리’ 다. 이 거리는 새벽 다섯 시에도 조용하거나 심심하지가 않았다. 밥집에는 손님들이 가득 들어 차 있었다. 손님들 중에는 한라산이라고 써 있는 소주병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밥집 앞에선 웬 젊은 여자가 길바닥에 미동도 하지 않고 눈을 땅에 박은 채 퍼질러 앉아 있었다. 옆에서 그 젊은 여자를 한참동안 바라보던 젊은 남자가 갑자기 “가자!!” 하고 꽥 소리를 질렀다.
김포공항에서 제주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아래 사진)
이른바 착한 사람으로 알려진 한목사의 사고의 범위 안에 “서북청년단,” “반공주의” 등이 어떤 기능을 했으며, 그것이 어떤 폭력적 함의를 갖고 있는지 그 연관성을 밝혀 낼 수 있다면 매우 흥미로울 겁니다. 좀 추상적인 표현인 것같아서 예를 들자면,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 이분의 사고가 현실로 실현되는 문어발적 활동은 매우 폭력적이거든요. 우리는 끝없이 영웅을 만들어가야 하고, 그 영웅의 성격은 영원 불변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 영웅에 대한 비판은 금기를 깨는 일처럼 여겨질 수 있구요. 활빈당의 김진홍 목사처럼 자신 스스로 깽판을 쳐서 그 영웅 이미지를 본인이 추락시킨 경우도 있지만, 한번 만들어진 영웅에 대한 기억은 의례화되고(ritualized) 상징화되어서(symbolized) 좀처럼 깨기 힘들죠. 하지만 우리가 어떤 기억행위를 하느냐(remembering)에 따라 그 영웅은 사라지거나 다른 새로운 영웅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겁니다.
무려 6 만 명에 이른다는 이 교회 신도들 중에 자기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와 자기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대원로 목사가 현대사의 한 귀퉁이 음습한 암흑가에서 피보라를 일으킨 테러범죄조직과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아마 소수에 불과할 것 입니다.
심성이 착하고 유한 것과 ‘범죄연루’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당초 이 교회가 탈북기독교 청년들로 출발했고 고 한경직 목사 스스로 평안남도 출신 탈북자 출신으로 이들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신사참배를 고백하고 사과한 것과는 달리, 영락교회 탈북청년이 중심이 된 서북청년회의 테러행위, 특히 제주도에서 벌어진 천인공로할 살인만행에 대해서는 반성은 커녕 오히려 끝까지 자랑스러워 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병희가 쓴 한경직 바이오크래피 \'한경직 목사\' 55 ~ 56 페이지에서 한 목사 스스로 ‘서북청년회가 자신의 교회 청년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했다’ 공개한 채 해명도 사과도 없이 죽었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자백으로 남게 된 것 입니다.
한목사와 영락교회,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된 서북청년회의 관계는 최근까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지난 가을 일부 빗나간 보수가 서북청년단을 재건한다며 서울시청앞에서 소란을 피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새삼스럽게 드러나고 있는 것 입니다. 지금까지 그와 서청의 연관부분은 책에 기록된 그의 발언 몇 마디 뿐이라 좀 더 대대적인 조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 말기 신사참배를 놓고 참회를 했네 안했네 를 따지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제주양민학살사건같은 물리적인 반인륜범죄와의 관련여부를 밝히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한국이 오늘 일요일이라는 말을 하니까,, 공교롭게도 오늘은 1941 년 12 월 7 일과 같은 일요일이라는 것이 떠 오릅니다. 고 한경직 목사가 자의든 타의든 충성했던 대일본제국 (그는 신사참배 행각에 대해서는 사과했습니다) 의 해군-공군 연합함대가 300 여대의 함재기를 출격시켜 하와이 펄하버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됐던 바로 그 날이군요.
당시 일본 해군 모함에서 함재기들이 출격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화장면을 담은 주소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weeHMxVW5M
클립보드님께서 말씀하신 영락교회가 서북청년단의 중심이었고, 그 위에 한경직이 있었다는 점은 충격이군요. 두 주전 San Diego에서 열린 AAR이라고 하는 어느 모임의 한 세션에서 Templeton Prize Plenary Lecture에 참석했는데, 이 재단에서 나눠주는 브로셔에서 이전 수상자에 한경직 목사가 들어 있더군요. 옛날에 이런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은 있는데, 이것이 그것인 줄 다시 되새김질 하였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한경직 목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Kyung-Chik Han (1992)up
Kyung-Chik Han was the founder of Seoul’s 60,000-member Young Nak Presbyterian Church. His fervent work for refugees and the poor epitomized the growth of Christianity in South Korea. His experience as a survivor of war and political oppression made him one of his country’s most respected religious leaders.
http://templetonprize.org/previouswinner.html
웹싸이트에도 올라가 있군요.
저는 요즘 종편이나 극우단체에서 활약하는 탈북자들과 한국전쟁 전후에 내려온 탈북자들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고 보구요. 탈북자들을 크게 두 형태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계형 단순탈북자와 이념형 탈북자. 한경직 목사는 기독교인인데다가 반공주의에 무장된 사람이었고, 그 귀결이 서북청년단과 연결되었을 것 같은데, 앞으로 새로운 내용이 있으면 업데이트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 한국사회란 이러한 수많은 사회적 배우들(social actors)이 만들어 놓은 실재이고, 한경직도 그런 사회의 형성에 큰 몫을 한 것 같군요. 중정, 안기부, 국정원 등이 만들어낸 가짜 간첩이라는 허구가 하나의 유령이 되어 한국 사회를 난도질하듯이 말씀이죠. 거기에 7시간도 있구요. fictional Korea! 갈수록 흥리롭습니다. 그러한 이슈를 꺼집어 낸 클립보드님께 감사합니다.
종교라는게 잘만 이용하면 사회통합에도 유용하니 그런 조직이 혼란스러웠던 해방정국에서 능구렁이 이승만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을테구요.
김병희씨가 쓴 그책을 읽어본적은 없는데 에드몬톤 살다 캘거리로 이사한 어떤 분, 영락교회 출신인데 공산당 때려잡던 영웅담을 이야기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어요.
개신교 반공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사기꾼으로 빵에 가있는 김홍도가 시무하는 금란교회도 교시에 반공이 들어 있고 빤쓰 목사 전광훈이도 반공 찾고 있으니 반성하기는 싹이 노란 것 같습니다.
탈북자 출신의 폭력단체안에 소속된 해골이 빈 양아치같은 인간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주면서 이념지도를 했던 게 영락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지식계급 탈북자들이었겠지요. 한경직 오제도 등이 그 지도부 역할을 한 거 겠구요. 그들의 상층부에는 북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토지개혁에 따라 타의에 의해 재산을 공동체에 의무적으로 헌납하게 된, 이른바 있는 집 자식들이 일부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북의 갑작스럽게 변화된 체제의 조직된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으름뱅이들과 무능력자 부랑자 등 사회 하층부류가 대거 남으로 밀려 내려왔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