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자유게시판
차 한잔의 명상-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작성자 Harry     게시물번호 -1100 작성일 2005-02-13 15:10 조회수 1778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는 '아이세여, 내 너를 사랑하노라.......'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음을 볼 때.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씌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어린 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 사건이었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 때 아버지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가를 왔다갔다하는 그 동물의 번쩍이는 눈, 무서운 분노, 괴로움에 찬 포효,
앞발에 서린 끝없는 절망감, 미친 듯한 순환,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더없이 슬프게 한다.
휠데를린의 시, 아이헨도르프의 가곡.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 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사냥꾼의 총부리 앞에 죽어 가는 한 마리 사슴의 눈초리. 자스민의 향기. 이 향기는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 그루 노목이 섰던 나의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날아가는 한 마리 해오라기
추수가 지난 후의 텅 빈 논과 밭
술에 취한 여인의 모습
어린 시절에 살던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는 이 없고
일찍이 뛰놀던 놀이터에는 거만한 붉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데다
당신이 살던 집에서는 낯선 이의 얼굴이 내다보고
왕자처럼 경이롭던 아카시아 숲도 이미 베어져 없어지고 말았을 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어찌 이것뿐이랴
오뉴월의 장의 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 색과 그리고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얼린의 G현
가을 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있는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가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만월의 밤 개 짓는 소리
크눗함센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이의 모습
철창 안으로 보이는 죄수의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
이 모든 것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 작가 소개

안톤 슈낙(Anton Schinack, 1892∼1973).

독일 표현주의 작가. 그의 글들은 서정과 낭만으로 가득 차 있으며, 사물을 관찰할 때에도 그 섬세한 시선과 감각이 돋보이는 문체로 환상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그의 작품 중 시나 소설보다는 수필이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필로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과 <내가 사랑하는 소음, 음향, 음성들> 등이 있다.

0           0
 
다음글 켈거리에서 취업을 하려면
이전글 상뚜스
 
최근 인기기사
  캐나다 식료품, 주류, 식당 식..
  드라이브 쓰루, 경적 울렸다고 ..
  앞 트럭에서 떨어진 소파 의자 .. +1
  (CN 주말 단신) 우체국 파업..
  “나는 피해자이지 범죄자가 아니..
  연말연시 우편대란 결국 현실화 ..
  주정부, 시골 지자체 RCMP ..
  캘거리 트랜짓, 내년 수익 3,..
  AIMCO 논란, 앨버타 연금 ..
  주정부, AIMCO 대표 및 이..
  주정부 공지) 알버타의 회복적 ..
  웨스트젯 인천행 직항, 내년 주..
자유게시판 조회건수 Top 90
  캘거리에 X 미용실 사장 XXX 어..
  쿠바여행 가실 분만 보세요 (몇 가..
  [oo치킨] 에이 X발, 누가 캘거리에..
  이곳 캘거리에서 상처뿐이네요. ..
  한국방송보는 tvpad2 구입후기 입니..
추천건수 Top 30
  [답글][re] 취업비자를 받기위해 준비..
  "천안함은 격침됐다" 그런데......
  1980 년 대를 살고 있는 한국의..
  [답글][re] 토마님: 진화론은 "사실..
  [답글][re] 많은 관심에 감사드리며,..
반대건수 Top 30
  재외동포분들께서도 뮤지컬 '박정희..
  설문조사) 씨엔 드림 운영에..
  [답글][답글]악플을 즐기는 분들은 이..
  설문조사... 자유게시판 글에 추천..
  한국 청년 실업률 사상 최고치 9...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