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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딸 아들에게 들려주는 세상살이 이야기
작성자 이경직     게시물번호 -120 작성일 2003-11-06 22:31 조회수 2385

네 얼굴에 책임을 져라

아버지가 딸 아들에게 들려주는 세상살이 이야기-좋은 글 펌

 

 

백범 선생의 얼굴

몇 해 전, 한 대학 신문사에서 학생들에게 복제하고픈 인물을 설문 조사한 바, 제1위는 백범 김구 선생이었다고 했다. 나 역시 언제, 어디서나 백범 선생의 사진이나 동상을 대할 때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옷깃이 여며진다. 왜 많은 사람들이 백범 선생에게 머리를 조아릴까?

김구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를 보면, 선생은 어렸을 때 수두를 앓았는데 당신 어머님이 예사 부스럼 다스리듯 죽침으로 고름을 짜낸 탓으로 얼굴에 마맛자국이 남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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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범 김구 선생(좌)과 이승만 대통령(우).

 

선생이 소년 시절 청운의 뜻을 품고 공부를 해서 과거를 보고자 임진년 해주에서 거행되는 경과(慶科: 당시 과거제도)에 응시코자 과장에 갔다. 글도 모르는 부자들이 큰선비의 글을 몇 백 냥, 몇 천 냥에 사고 파는 부패한 과거 시험 현장을 목격하고는 벼슬길을 단념한 후,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자 풍수와 관상 공부를 했다.

선생은 석 달 동안 두문불출하고 관상 공부를 하면서 거울을 앞에다 두고 먼저 자신의 상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자신의 얼굴을 뜯어보아도 천격(賤格)인데다가 빈격(貧格)에 흉격(凶格)일 뿐이었다. 당신의 못난 얼굴을 새삼 알고 난 선생은 비탄에 빠졌다. 세상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관상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상호불여신호 신호불여심호(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

이는 ‘얼굴이 좋은 것이 몸이 좋은 것만 못하고, 몸이 좋은 것이 마음이 좋은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이 글을 본 후 용기를 얻은 선생은 얼굴이 좋은 사람보다 마음이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한다.

얼굴만 보면 백범 선생은 미남이 아니다. 만년의 백범 선생 모습도 그저 수수한 시골 할아버지 상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백성들이 백범 선생을 우리나라 현대사 가운데 가장 존경하고 흠모하는 인물로 꼽는다. 그것은 바로 그분의 인품, 사상, 인생 역정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링컨 대통령도 미남이 아니었다. 링컨의 초상을 자세히 뜯어보면 턱이 좁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보통 이하의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을 가진 링컨이 미국인의 우상이 된 것은 노예 해방 운동에 앞장 선 것을 비롯하여 자유와 평등을 위해 혼신을 다한 그의 삶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은 변한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얼굴로 태어난 사람도, 못생긴 얼굴로 태어난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평생 사는 동안 사람의 얼굴이 열 번은 변한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얼굴로 태어난 사람일지라도 후천적으로 얼굴을 가꾸지 않으면 추한 얼굴로 일생을 마감하게 되고, 비록 추한 얼굴로 태어났을지라도 열심히 자신을 가다듬는다면 아름다운 얼굴로 길이 역사에 남는다.

여기서 얼굴을 가꾸고 가다듬는다는 말은 성형수술을 한다거나 피부 미용을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품성과 인격을 갈고 닦고 바르게 사는 걸 뜻한다.

아무리 미남 미녀일지라도 그가 나쁜 마음을 품고 악한 행동을 한다면 그의 얼굴에서는 혐오스럽고, 독기를 내뿜는 끔찍한 얼굴로 변해 버린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 미녀배우들이 맡은 배역에 따라 이미지가 다름을 볼 수 있다.

인현왕후의 배역을 맡은 배우는 선량하고 어진 성품으로 관객들의 연민을 불러일으키지만, 장희빈 역을 맡은 배우의 얼굴은 그 표독스러움으로 시청자들의 소름을 끼치게 한다.

지난날 한때 의과대학 학생들은 성형외과를 가장 선호했다. 개업의 가운데에 가장 수입이 좋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젊은 여성 가운데 성형 수술을 한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였다.

졸업 후 학교로 찾아오는 제자의 얼굴이 몰라보게 변해 고개를 갸웃거릴 때도 더러 있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성형 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어디 젊은 여성뿐인가. 중·노년층도 이마의 주름살을 펴기도 하고 심지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까지도 수술을 하는 모양이다. 예뻐지기만 한다면, 섹시해지기만 한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랴. 얼굴에다 진흙도 바를 테고 송장 썩은 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들 겉으로 드러나는 육감적인 아름다움에는 혈안이 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 곧 내적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데는 소홀하다. 겉만 아름답고 속이 추한 사람은 천박해 보이거나 과대 포장한 상품처럼 곧 배신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의 인격에서 풍겨 나온 체취이고, 그의 영혼에서 나오는 은은한 향기이며, 그의 올곧은 삶에서 느낄 수 있는 꼿꼿함이다. 곧 아름다움의 최상급은 그의 인품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이요, 영혼의 그윽한 방향(芳香)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두 인물이었던 김구 선생과 이승만 대통령의 얼굴을 비교해 보면 대조적이다. 현실 정치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승자요, 김구 선생이 패자였다.

이승만은 대통령 재임 때 남산 팔각정에 자신의 동상을 세우고, 또 지폐에다 당신의 초상까지 새겼지만 4·19 혁명 후 당신의 동상은 쇠사슬에 묶여 종로 을지로 네거리에 끌려 다녔고, 지폐는 곧 다른 인물로 바뀌어 버렸다. 하지만 백범 선생은 이 대통령 사후에 남산 공원에 동상이 세워져 지금도 참배하는 이가 줄을 잇고 있다.

백범 선생의 초상에서는 순박하고 인자한 모습이 마치 조선의 무명천이나 투박하고도 담박한 백자를 떠오르게 하는 데 견주어, 이 대통령의 초상에서는 어딘가 탐욕스럽고 노회(老獪)하며 질이 낮은 외국산 도자기와 같은 천박함이 풍긴다.

 

네 얼굴을 가꾸어라

나이 사십이 되어서도 남의 미움을 받으면, 그는 마지막이다”고 공자가 말했고, 링컨 대통령도 “마흔을 넘긴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얼굴이 못났다고, 잘났다고 비관하거나 으스대지 말고 이 순간부터 자신의 얼굴을 가꾸어야 한다. 못난 얼굴이 잘난 얼굴이 될 수도 있고, 잘난 얼굴이 못난 얼굴로 변할 수도 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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