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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작성자 강현     게시물번호 -2530 작성일 2006-01-30 01:05 조회수 1680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정권을 상대로 더 이상 왈가왈부 한다는 것도 별로 내키지는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쯤 해서 일단 그만하고 당분간 지켜보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만 당분간 지켜보는 것을 시작하기 전에 총선 후 포착된 보수당의 몇 가지 주목할만한 움직임에 대해 몇 마디만 언급하겠습니다.
   
총선이 끝나자 마자 보수당 지도부가 세 가지 패를 한꺼번에 내놓고 꽃놀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패는 북극해에 대한 미국과의 주권 논쟁을 가시화한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 오타와 주재 미국대사 David Wikins 는 한 포럼에서 “(북극해 항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확고하며 캐나다의 북극해에 대한 주권을 인정할 수 없다” 고 분명히 못을 박았습니다. 일부 언론은 미국대사가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주권문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새 정부의 입장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북극해에 대한 주권문제를 둘러 싸고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대립각이 형성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하퍼와 새 정부에게 의외의 좋은 기회를 가져다 주고 있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이 나라의 정치세력으로서 수치의 火印 이나 다름없는 친미집단 딱지를 떼어주고 네오콘으로부터의 음성자금수수의혹에 면죄부를 부여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하퍼가 기다렸다는 듯이 일각도 지체하지 않고 미국대사를 향해 반격을 퍼 부은 것이 이를 반증해 줍니다. 하퍼의 즉각적인 대응은 ‘캐나다를 위해 일어서자’는 보수당의 총선구호처럼 보수당 지지자들을 다시 결집시키고 일부 여론의 좋은 반응을 얻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하긴 북극해 문제는 양국의 주권이 상충하고 있는 쟁점이 아니라 국제항로에 있어서 캐나다의 주권여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외교적으로 별로 손해 볼게 없는 분쟁이므로 새 정부의 체면을 적당히 살려 주는 재료로는 안성맞춤입니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까지 신경을 써서 하퍼에게 친미주의자 라는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려고 배려하는 것을 보면 미국이 기쁘긴 기쁜 모양입니다.     
 
두 번째 패는 좀 노골적입니다. 극우보수가 아닌 진화된 보수이기를 바랬던 많은 분들을 실망시켜 드릴만한 패입니다.  금요일 하퍼의 진영에서 떠보는 듯이 일부러 새 주미대사 물망에 오른 프레스톤 매닝 이야기를 흘렸습니다. 자유당 당권경쟁에 참여하기 위해 대사직을 사임한 매카나의 후임으로 전 개혁당 당수이자 하퍼의 정신적 스승인 ‘극우’의 대명사 매닝 또는 그와 비슷한 성향의 인믈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함은 물론, 아마디네자드 정권까지 전복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그 D-Day 가 초읽기에 들어간 이 마당에 프레스톤 매닝이 새 주미대사로 거론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그는 2001 년 부시정권이 들어선 이래 미국의 대 중동 및 이스라엘 정책을 비롯해 모든 침략전쟁에 반대한적이 없는 인물입니다. 프레스톤 매닝은 부시와 그의 이너써클 ‘죽음과 증오의 성경공부 모임’ 멤버들과 절대적인 정신적인 유대관계를 주고 받는 동지들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공부 모임 앞에 살벌한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침략전쟁을 결정하는 마지막 순간에 부시가 항상 이 모임과 함께 있으면서 결정적 조언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지적대로 이번 총선을 계기로 캐나다는 역사상 유래를 찿기 어려울만큼 심각하게 분열해 있습니다. 일부 언론은 그 분열의 양상을 애써 동서의 분열, 대도시와 농촌의 분열로 표현하고 있지만 분열의 본질은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관 간의 문제라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의 지적입니다. 알버타 의 시골에서 보수당 후보들이 싹쓸이에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했다면 소수민족이 밀집거주하고 있는 밴쿠버 와 토론토의 대부분의 선거구에서는 反보수당 후보들이 비슷한 득표율로 판을 쓸다시피 했습니다. 이?현상은 캐나다 사회의 균열의 조짐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판국에 주미대사를 매닝 같은 사람으로 하겠다는 발상자체가 개혁당 시절에서 한치도 진화할 생각이 없다는 보수당 핵심세력의 의지를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두 가지 패를 둘러싸고 긴가민가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하는 사이 도둑고양이처럼 슬그머니 내놓은 또 다른 패가 동성결혼에 대한 Revisiting 입니다. 선거기간 중 하퍼는 이 문제가 선결과제가 아니라며 애써 언급을 회피했습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지 마자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이 문제가 엄청 급한 과제는 아니지만 매우 급한 과제이기는 하다” 는 요상한 말장난을 구사하며 딴소리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빨리 서두르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의외로 신속하게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흐름을 보면 당지도부가 애당초 가지고 있던 말 바꾸기 속임수였다기 보다는 당과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극우의 거센 반발에 못이기는 척하고 ‘빠른 순위’에 끼워 넣은 듯 합니다.
 
토요일 자 글로브 앤 메일의 사설이 재미있습니다. ‘하퍼가 일부만의 수상이 아닌 캐나다의 수상이란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개인적 가치관에 관계없이 동성결혼에 찬성 표를 던짐으로써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는 것이 어떠냐' 는 요지의 점잖은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 점잖은 충고 뒤에 조롱과 저주가 깔려있는 건 물론입니다. 이런 사설이나 칼럼에 분개한 그의 막료들 중 하나가 또 나서방 처럼 튀어나와 ‘ㅈ 도 모르는 놈들 몇 놈이 이 신문 저 신문 돌아 다니면서 새 수상 내정자님을 조롱하고 있다’ 고 내뱉으며 사고를 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칼럼니스트들이란 어떤 정보와 어떤 언어를 어떻게 조합해야 상대방에게 효과적인 조롱과 저주를 퍼 부을 수 있을까 연구하는 일에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말에 머리에서 열이 나거나 호흡이 가빠진다면 당장 정치를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하퍼 같이 웃지 않는 독실한 엄숙주의자가 약 올리기 원천기술로 중무장한 이들의 집중적인 십자포화를 어떤 심정으로 견뎌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보수당이 진화한 보수로 거듭나느냐 옛날 개혁당 식으로 주접을 떨다 비명횡사 하느냐는 그들의 선택입니다. 물론 하퍼와 보수당이 땅에 묻힌 개 꼬리가 아닌 이상 변화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저 역시 ‘착한 보수 진화한 보수 따뜻한 보수 별놈의 보수라도 보수는 보수’라는 식의 막무가내 논리는 믿지 않습니다.  결심한 대로 당분간은 말없이 지켜보려고 합니다. 다만 선거 끝나자 마자 하는 짓들로 보아 그 당분간이 아주 짧아 질 수도 있겠다는 재수없는 생각이 들어 또 몇 마디 한 것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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