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를 표하고 위로의 말을 전하는 건 의무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은
억울한 피해자다. 아무 이유도 없이 총탄을 맞아 절명하거나 부상에 신음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진심으로 보듬어 안는 건 의무이기 이전에 도리다.
마땅히 가져야 하는 측은지심이다.
그렇다고 오버하지는 말자. 유독 한국이 석고대죄할 일은 아니다. 총기난사사건을 저지른 장본인이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 전체가 죄인이라도 된 냥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릴 이유는 없다.
사건의 본질적인 원인은 미 총기보유정책
엄밀히 규정하자. 총기난사사건은 단순사건이다. 한 개인이 치정에 얽혀 저지른 '묻지마' 살인극이다. 조승희씨가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는지 안 했는지는 핵심문제가 아니다. 범행의 동기와 전개과정이 개인적이고 단순하다는 점, 이게 중요하다.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조씨는 여덟 살에 이민을 가 미국 교육과 문화에 편입된, 사실상의 미국 시민이라는 점을 놓칠 수 없다. 그래도 법률상으로는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하더라도 민족을 부각시킬 이유는 별로 없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 누구라도 저지를 수 있는 사건이란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 헌법은 누구나 자유롭게 총기를 보유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 헌법 조항 때문에 미국 가정이나 개인이 보유한 총기가 2002년 기준으로 2억 5000만 정을 헤아린다. 이 2억 5000만 정의 총구가 언제 어디서 불을 뿜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다. 사례는 수두룩하다.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사건만 있었던 게 아니다. 10대의 소년 소녀가 퇴학당했다는 이유로, 시험에 낙방했다는 이유로, 심지어 "월요일이 싫다"는 이유로 총기를 무차별 난사한 예도 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동양계든 유럽계든, 소년이든 성인이든 누구라도 총기를 난사할 가능성이 널려있는 게 미국 사회다.
미국도 이 점을 인정한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미국인들이 맞닥뜨려야 할 가장 큰 위험으로 "마음만 먹으면 너무도 쉽게 무장할 수 있는 국내 살인자들"을 꼽았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다르다. 모든 한국 언론이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이란 사실을 톱뉴스로 뽑았다. 한국 교민사회가 보복을 당할까봐 떨고 있다는 소식, 사건이 한미 양국의 마찰요인이 될까봐 외교통상부가 긴장하고 있다는 소식도 상세히 전했다.
'한국계가 범인'... 헤드라인이 간과한 사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사건의 본질이 뭐든 일단 새로 밝혀진 사실이 충격적이다. 주요뉴스로 뽑는 건 당연하다. 이게 언론의 생리다. 교민의 안전을 살피는 것도 자연스럽다. 국적 언론의 의무이기도 하다.
문제는 균형감각이다. 사실의 표면에서 헤엄만 칠 게 아니라 잠수를 해서 바닥을 함께 봐야 한다. 이건 언론의 원리다. 그 뿐만이 아니다. 대단히 긴요하고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미국 사회에 논란이 불붙고 있다. 대선주자들이 제각각 총기규제 방안을 거론하고 나섰다. 응당 나올 법하고, 마땅히 나와야 하는 문제제기이지만 그 뒤가 걱정스럽다. 문제제기가 거세질수록 대응수위가 올라갈 수 있다.
미국 총기협회가 총기 자유소지를 제한하려는 시도를 번번이 무산시킨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경험칙에 따르면 이번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미국 총기협회 입장에서 관건이 되는 건 여론이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로비를 한다 해도 대중의 관심을 다른 데 돌리지 않고선 수월하지가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물타기다. 칼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 칼을 식칼이 아니라 흉기로 사용하는 사람이 무섭다는 주장을 인종주의에 얹으면 여론 물길을 돌릴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미국 사회에서 실제로 나타날 경우 한국은 어떻게 대처할 건가? 혹여 미 당국이 총기소유 논란을 피하고 미국 여론을 달래기 위해 희생양을 찾는다면 어떻게 대응할 건가? 그 때도 "같은 민족으로서 부끄럽다"를 되뇔 건가? 그건 아니다.
한국언론보다 이성적인 미국언론
ABC방송이 보도했다. "용의자가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고 했다.
아이러니라고 말해도 될까? 한국 언론보다 미국 언론이 더 냉정하게 진단하고 합리적인 대처를 주문하고 있다고 평해도 될까? 한국 언론의 보도태도는 '과공비례(過恭非禮)'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해도 될까?
한 미국 언론의 한 마디를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따르지만 시사하는 바가 적잖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오버하지는 말자. 유독 한국이 석고대죄할 일은 아니다. 총기난사사건을 저지른 장본인이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 전체가 죄인이라도 된 냥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릴 이유는 없다.
사건의 본질적인 원인은 미 총기보유정책
엄밀히 규정하자. 총기난사사건은 단순사건이다. 한 개인이 치정에 얽혀 저지른 '묻지마' 살인극이다. 조승희씨가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는지 안 했는지는 핵심문제가 아니다. 범행의 동기와 전개과정이 개인적이고 단순하다는 점, 이게 중요하다.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조씨는 여덟 살에 이민을 가 미국 교육과 문화에 편입된, 사실상의 미국 시민이라는 점을 놓칠 수 없다. 그래도 법률상으로는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하더라도 민족을 부각시킬 이유는 별로 없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 누구라도 저지를 수 있는 사건이란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 헌법은 누구나 자유롭게 총기를 보유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 헌법 조항 때문에 미국 가정이나 개인이 보유한 총기가 2002년 기준으로 2억 5000만 정을 헤아린다. 이 2억 5000만 정의 총구가 언제 어디서 불을 뿜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다. 사례는 수두룩하다.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사건만 있었던 게 아니다. 10대의 소년 소녀가 퇴학당했다는 이유로, 시험에 낙방했다는 이유로, 심지어 "월요일이 싫다"는 이유로 총기를 무차별 난사한 예도 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동양계든 유럽계든, 소년이든 성인이든 누구라도 총기를 난사할 가능성이 널려있는 게 미국 사회다.
미국도 이 점을 인정한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미국인들이 맞닥뜨려야 할 가장 큰 위험으로 "마음만 먹으면 너무도 쉽게 무장할 수 있는 국내 살인자들"을 꼽았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다르다. 모든 한국 언론이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이란 사실을 톱뉴스로 뽑았다. 한국 교민사회가 보복을 당할까봐 떨고 있다는 소식, 사건이 한미 양국의 마찰요인이 될까봐 외교통상부가 긴장하고 있다는 소식도 상세히 전했다.
'한국계가 범인'... 헤드라인이 간과한 사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사건의 본질이 뭐든 일단 새로 밝혀진 사실이 충격적이다. 주요뉴스로 뽑는 건 당연하다. 이게 언론의 생리다. 교민의 안전을 살피는 것도 자연스럽다. 국적 언론의 의무이기도 하다.
문제는 균형감각이다. 사실의 표면에서 헤엄만 칠 게 아니라 잠수를 해서 바닥을 함께 봐야 한다. 이건 언론의 원리다. 그 뿐만이 아니다. 대단히 긴요하고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미국 사회에 논란이 불붙고 있다. 대선주자들이 제각각 총기규제 방안을 거론하고 나섰다. 응당 나올 법하고, 마땅히 나와야 하는 문제제기이지만 그 뒤가 걱정스럽다. 문제제기가 거세질수록 대응수위가 올라갈 수 있다.
미국 총기협회가 총기 자유소지를 제한하려는 시도를 번번이 무산시킨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경험칙에 따르면 이번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미국 총기협회 입장에서 관건이 되는 건 여론이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로비를 한다 해도 대중의 관심을 다른 데 돌리지 않고선 수월하지가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물타기다. 칼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 칼을 식칼이 아니라 흉기로 사용하는 사람이 무섭다는 주장을 인종주의에 얹으면 여론 물길을 돌릴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미국 사회에서 실제로 나타날 경우 한국은 어떻게 대처할 건가? 혹여 미 당국이 총기소유 논란을 피하고 미국 여론을 달래기 위해 희생양을 찾는다면 어떻게 대응할 건가? 그 때도 "같은 민족으로서 부끄럽다"를 되뇔 건가? 그건 아니다.
한국언론보다 이성적인 미국언론
ABC방송이 보도했다. "용의자가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고 했다.
아이러니라고 말해도 될까? 한국 언론보다 미국 언론이 더 냉정하게 진단하고 합리적인 대처를 주문하고 있다고 평해도 될까? 한국 언론의 보도태도는 '과공비례(過恭非禮)'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해도 될까?
한 미국 언론의 한 마디를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따르지만 시사하는 바가 적잖은 것만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