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래 감독이 명심할 것
• 저 D-War 아직 못 봤습니다. 그래서 말 할 자격이 없지만, 원론적인 차원에서 몇 가지 제 생각을 담아 보았습니다.
심형래 감독의 D-War가 미국의 주요 개봉관에서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수준에 상관없이 한국인으로서 기뻐하고 축하해야 할 일입니다. 그 동안 여러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제 나름대로 몇 가지 짚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1. 진중권의 혹평의 잔인함과 오류
소위 지독한 “썰”로 유명한 진중권씨가 백분토론에 나와서 D-War는 평론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의 근본은 이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가 너무나 빈약하다는 것입니다. 고작 점수를 준다면 컴퓨터 그래픽인데, 이것의 수준은 쓸만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독설에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나 안티-진중권 운동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저도 백분토론을 봤는데, 어느 여자 대학생이 진중권씨에게 무슨 근거로 이 영화가 평론할 가치가 없다고 했느냐는 당돌하고 맹랑한 질문에 진씨가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하는 것이 가관이었습니다. 아마 정곡을 찔린 탓이었겠지요. 이 세상에 어떠한 것도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이 없습니다. 인간이 쓰는 욕설조차 인간 담론의 한 장르로서 취급된다고 볼 때, 디-워가 평론의 가치가 없다는 것은 영화의 기본을 내러티브 구조로만 제한해서 보기 때문입니다. 네러티브가 형편없건, 연기가 엉성하건 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서 박스오피스에 올랐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독창적인 면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진중권씨의 평가는 그가 영상중심적 사고보다는 언어 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기본은 영상이지 언어가 아닙니다. 물론 영화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언어가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한마디의 언어도 없이 또는 극히 제한된 대화로도 내러티브 구소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어보다는 영상의 우선성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그런 면에서 걸작이지요.
2. D-War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인가?
진중권씨가 디-워는 내러티브가 전혀없다는 발언에 발끈한 네티즌들이 이 영화를 옹호하는 것 중에 이 영화가 성인용이 아니라 아이들 영화이기 때문에 이야기 구조가 약하다는 것은 당연하거나 봐줘도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직 영화를 못 본 상태에서 어떻다고 말 할 수는 없고, 일반적으로 평론가들이 말하는 것을 종합해 볼 때, 심감독의 이 영화가 좀 엉성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것같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재미없다는 법은 없지요. 그 영화의 재미는 관객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때라도, 만일 영화 디-워의 네러티브 구조가 형편없다고 한다면, 앞으로 심각독이 영화 만들 때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 네러티브 구조의 튼튼함은 성인영화든, 아동 영화든 모두 갖추어야 할 기본 요소입니다. 해리포터 소설과 영화를 아이들이 열광한 것은 바로 영상기술의 뛰어남도 있었겠지만, 바로 네러티브 구조의 튼튼함이 받쳐주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이야기 구조에 좋은 영화가 나온다는 것은 전혀 빈말이 될 수 없습니다.
제가 만화 영화 중에 열광한 것이 있는데 바로 일본 만화 영화 “은하철도 999”입니다. 혹시 영문판으로 구할 수 있다면 100불을 하더라도 전질을 사서 보관해서 다시 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놀라운 이야기 구조, 깊은 철학적 메시지, 긴 여운을 남기는 화면처리에 매료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은하철도 999를 좋아하는 것은 바로 네러티브 구조입니다. 이 네러티브라는 것이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야기가 시작과 중간과 결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을 가장 먼저 체계화시킨 사람은 희랍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서 그의 유명한 책 [시학] (Poetics)은 바로 심감독 같은 영화인들이 꼭 참고해야 할 중요한 교과서입니다. 그는 2300년 전 (384 BCE – 322 BCE) 사람이지만, 그 이론은 지금도 현대적입니다. 그가 제시한 것은 이야기의 인과적 전개입니다. 각 플롯이 인과적으로 필연적 관계에 있을 때, 이야기가 재미있어지겠지요. 이런 플롯을 이어가는 것은 플롯만들기 (emplotment)라고 하는데, 플롯의 필연적 인과성이 결여되면, 그 때부터 이야기는 우연성에 맡기게 되지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인가 “홍길동전”에서 길동의 아버지가 길동이를 “우연히” 밤에 정원에서 만난다는 식의 전개는 우리에게 긴장감을 전혀 주지 못합니다.
제가 장황하게 말씀드렸지만, 요약하자면, 이야기의 완결성은 성인용이나 아동용을 구분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차이라면, 이야기가 좀더 복잡해지느냐 좀 단순해 지느냐의 차이겠지요. 진중권씨가 제안하듯이, 앞으로 심형래 영화가 성공하려면, CG 기술 뿐 아니라 영화의 기본이 되는 네러티브 구조의 자기 완결성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그의 영화제작이 좀 더 분업화되어야 하겠지요.
3. 심형래 영화는 민족주의 코드인가?
영화시장 만큼 자본주의적인 곳은 없습니다. 심감독이 민족주의를 코드를 넣어서 한국에서 흥행을 했건, 할리우드에 진출을 했건, 모두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통해서 성공 여부가 판가름납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 제품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당연하고, 미국사람들이 자국민 보호를 다른 나라의 주권보다 우선시하는 것도 미제의 입장으로 봐선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자민족 중심주의 (ethnocentrism)겠지만, 어짜피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민족주의조차 상품화되어서 팔려 나갑니다. 심감독의 민족주의 코드도 한국 시장을 겨냥한 장삿속일 수도 있습니다. 지난 번 씨엔드림 설문조사 때, 일제차 사려고 한다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인데 이 분들이 한국을 증오해서 그런가요? 다 일제가 좋고, 또 중고 팔 때 고가로 팔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하는 것이 아닌가요? 결국은 다 자본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나요? 저도 일제 전자 제품 많이 갖고 있고, 중국제는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한국산도 있구요. 전자는 품질이 좋다는 이유이고 두번째는 싼 맛으로, 세 번째는 품질의 질과 한국산 또는 한국 브랜드라는 점에서 샀습니다. 결론적으로 민족이 앞서느냐 자본의 논리가 앞서느냐를 두고 보면,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자본의 논리에 굴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민족주의라는 강한 자기 정체성 민족적 울타리 (boundary)를 갖추려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한가지 삼성이나 LG같은 글로벌 기업에 민족주의를 가져다 붙이기도 힘이 듭니다. 중국에서 쏟아내는 삼성 제품을 민족적 애정으로 산다고 그것이 한국 노동자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데스크 탑 컴퓨터 살 때, 딸려 온 것 포기하고 웃 돈 더 주고 삼성 모니터를 샀는데 Made in China였습니다. 자본주의는 민족주의도 돈으로 상품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 부기: 심감독이 미국에서 이 영화 홍보 열심히 한다는데, 홍보하면서 차기 영화 시나리오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시나리오 작가를 찾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나리오가 좋지 않고서는 좋은 영화가 결코 나오질 않기 때문입니다. 대충 찍어놓고 나중에 편집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이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캘거리에 디-워가 상영이 안돼서 아쉽네요. 14일날부터 되는 줄 알고, 제 아이한테 가자고 했는데, 헛소리가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인터넷 검색해서 찾아 볼 수 있겠지만, 제게도 1%의 민족주의가 남아 있어서요. 그리고 미국 전역에 개봉되고 있으니 가히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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