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자유게시판
Van Halen 공연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12월 7일
작성자 락팬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122 작성일 2007-11-29 12:24 조회수 2507

약 2년전 캘거리에서 공연을 갖은바 있는 벤 헤일런 밴드가 또 다시 캘거리 시민들을 만나러 옵니다. 공연 날짜는 12월 7일이구요, 새를돔에서 개최합니다.

2년전 공연에는 보컬로 세미 헤이거가 참여했었는데 이번에는 벤 헤일런의 오리지널 멤버였던 데이비드 리 롯스가 보컬로 참여하여 벤 헤일런 팬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 밴드를 떠난지 22년 만에 복귀를 하여 공연을 갖는 셈이구요,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벤 헤일런이 발표하였던 주옥같은 헤비메탈 명곡들을 데이비드 리 롯스가 불렀으니까요...

이번에 멤버 교체가 한명 더 있습니다. 베이시스트에 마이클 앤소니가 빠지고 그 자리에는 에드워드 밴 헤일런의 아들인 울프강(16세)가 참여한다고 하며 마이클은 새미 헤이거를 따라 갔으며 새미 헤이거 밴드도 최근 북미 순회공연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데이비스 리 롯스의 복귀는 환영할만 하지만 16세의 어린 나이에 경험도 부족한 아들 울프강을 데리고 순회공연에 나선것에 대해서는 많은 언론들이 의문을 제기한바 있는데요, 밴 헤일런의 두 형제가 판단한 것임만큼 그들의 명성에 흠이 가지는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캐나다 공연 일정 안내
토론토 10월7, 12일 밴쿠버 12월 5일 에드몬톤 12월 9일

수퍼밴드 밴 헤일런의 역사  
밴 헤일런은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5천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며 에어로스미스(Aerosmith)와 더불어 현존하는 미국최고의 하드락 밴드로 꼽힌다. 네덜란드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밴 헤일런(Edward Van Halen)과 알렉스 밴 헤일런 형제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작곡법과 피아노를 배우며 성장했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부모의 교육 방식에 반항하기 시작, 73년 미국행 여객선의 승객으로 위장해 미국으로 밀입국한다.

처음에는 형인 알렉스가 기타를, 동생인 에디가 드럼을 연주했으나 서로 상의끝에 포지현을 바꾸기로 결정하였는데 락 역사상 가장 현명한 결정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이들을 비롯해 초대 보컬인 데이빗 리 로스(David Lee Roth)와 베이시스트인 마이클 앤소니는 폭행, 절도 등의 혐의로 수감됐던 감옥에서 만난 친구 사이로 멤버들의 과거(?)가 모두 범상치 않다. 밀입국한 후 모진 고생을 하며 LA시내를 돌아다니던 밴 헤이런 형제는 우연히 데이빗과 마이클을 만나고 의기투합한 이들은 마모스(Mammoth)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이후 산타나(Santana), UFO, 키스(Kiss) 등 쟁쟁한 그룹들의 오프닝 밴드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아가던 이들은 77년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으로 팝계에 모습을 드러낸다.

단 3주일의 제작기간을 거쳐 발표한 데뷔앨범 [Van Halen]에 나타난 에디의 기타 플레이는 당시 엄청난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은 누구나가 즐겨 사용하는 라이트핸드(Right Hand) 주법이나 양손태핑 등은 에디에 의해 최초로(공식적으로) 시도된 테크닉이었다. 예의 라이트핸드 주법이 빛나는 1분대의 연주곡 'Eruption', 싱글로 크게 히트한 'Running with The Devil', 'You Really Got Me' 등의 곡들에서 보여진 에디의 기타 플레이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현재까지도 이 앨범은 메탈 역사에 남을 명반으로 취급받으며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으며 이미 1천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들은 이듬해에 1집과 비슷한 포맷의 2집 [Van Halen II]를 발표하는데 'Dance The Night Away'가 싱글차트 15위에 오르는 대히트를 하며 쉽게 플래티넘을 따내 소포모어 징크스를 무난히 벗어났다. 애초에 대단한 실력이었지만 에디의 기타 플레이는 이후에도 계속 발전 양상을 보였으며 3집 [Woman And Children First](80)에서 실험적인 면모까지 갖추기 시작한다. 3집 역시 'And The Cradle with Rock'이 55위의 히트를 기록했고, 또다시 플래티넘을 따내는 기염을 토한다.

1981년에 발표된 4집 [Fair Warning]에서 에디의 실험정신은 극으로 치달으며 매니아들과 평론가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이듬해에 이들은 자신들의 곡이 아닌 선배 그룹들의 곡을 리메이크해서 수록한 [Diver Down]을 발표한다. 정규앨범의 성격이 약한 이 앨범에선 'Pretty Woman'이 12위, 'Dancing in The Street'이 38위에 올랐고 당시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현재 400만장 돌파)를 올리는 좋은 성과를 거뒀다.

1983년 12월, 이들은 싱글 'Jump'를 발표한데 이어 12월 31일 대망의 6집 [1984]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듬해 1월 'Jump'가 싱글 차트 정상에 5주간 머무르는 폭발적 히트를 기록하며 순식간에 플래티넘을 따냈고, 계속해서 'I'll Wait', 'Panama' 등이 연이어 13위에 랭크되며 [1984]의 대대적 성공(당시 500만장 판매)에 적잖은 기여를 했다. 음악적으로 볼 때 이들의 6집 [1984]에서는 무엇보다도 에디의 혁신적인 신디사이저 연주가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5150], [OU812]에까지 이어진다. 'Jump'를 통해 보여준 매력적인 신디사이저 연출은 당시 유행처럼 퍼졌고 팝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84]의 대성공으로 인해 밴 헤일런은 어느덧 미국의 대표 그룹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에디의 음악적 방향에 반기를 든 데이빗이 솔로 전향 의사를 밝히며 팀을 떠나는 충격적인 뉴스가 팬들을 의아하게 만든다. 밴 헤일런은 즉각 이 자리를 새미 해이거(Sammy Hagar)로 대체했다. 밴드가 음악계의 정상에 오른 시점에서 뜻밖의 진통을 겪은 이들은 새미와 함께 새출발의 결의를 다지며 7집 제작에 들어간다.

1986년 중반, 새미와 함께 작업한 첫 앨범이자 통산 7집인 [5150]이 발표되었다. 7집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신디사이저 연주에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다. 싱글 'Why Can't This Be Love'가 3위에 랭크되며 호조를 보인 이 앨범은 똑같이 22위를 기록한 'Dreams'와 'Love Walks in'의 히트 행진에 힘입어 전작에 결코 뒤지지 않는 놀라운 성적을 올렸다. 본작은 또한 밴 헤일런에게 앨범차트 1위의 기쁨을 안겨준 앨범이기도 하다.

이로써 데이빗의 빈 자리를 새 보컬리스트 새미 헤이거가 완벽하게 메꾸었다는 자신감을 얻은 밴 헤일런은 88년에 들어서 8집 [OU812]를 발매한다. [5150]과 마찬가지로 이 앨범 역시 앨범차트 1위에 랭크됐지만 의외로 싱글의 활약은 저조했다. 'Black & Blue'가 34위에 오른 게 전부다. 그러나 차트순위와는 별개로 연일 계속되는 공연은 팬들을 완전히 매료시켰으며 앨범은 가뿐히 3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대대적인 투어 공연 이후 밴 헤일런은 3년간의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긴 침묵 끝인 91년에 컴백한 이들은 통산 9집인 [F.U.C.K.]을 앨범차트 1위에 랭크시키며 팬들의 오랜 갈증을 단숨에 해소시켜 주었다. 수록곡중 'Poundcake'에선 에디의 드릴을 이용한 기타연주가 빛을 발하고 있으며 이 연주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미스터 빅(Mr. Big)의 'Daddy, Brother, Lover, Little Boy'라는 곡에서 폴 길버트(Paul Gilbert)가 들려준 드릴플레이와 함께 많은 찬사를 받았다. 200만장을 쉽게 돌파한 [F.U.C.K.]는 평론가들의 대대적 호평을 받았고 밴 헤일런은 이듬해 2월에 열린 그래미 시상식(Grammy Awards)에서 '최우수 하드락/헤비메탈 앨범'상을 거머쥘 수 있었다.

9집의 대성공으로 80년대 중반 이후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은 이들은 93년에 최초의 라이브앨범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9집의 투어 중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Presno)에서 열린 공연 실황을 녹음한 더블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라이브일 뿐만 아니라 더블 앨범인데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더블 플래티넘을 따냈고 앨범과 함께 발매된 뮤직비디오도 플래티넘(비디오는 10만장이 플래티넘)을 기록한다.

95년에 이들은 통산 11집인 [Balance]를 발표하고 거의 팝적인 스타일의 'Can't Stop Lovin' You'를 30위에 올려놓는 저력을 과시하면서 헤비메탈이 전반적인 하강세이던 시기적인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더블 플래티넘을 따내며 슈퍼 밴드의 명성을 드날렸다.

이듬해인 1996년에 들어서 이들은 또 한장의 베스트앨범을 발표하는데 이 앨범을 제작하기 직전 새미 헤이거가 밴 헤일런 형제와의 불화로 해고되고 이전 멤버였던 데이빗 리 로스가 앨범의 신곡 제작에 참여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선임자인 데이빗 리 로스가 불렀던 곡은 절대 부르지 않을 정도로 고집스럽고 에고가 강했던 새미 헤이거가 베스트 앨범 제작에 극력 반대했다는 후문인데 결국은 새미 헤이거의 퇴출로 일단락되었다.

데이빗이 신곡 작업에 참여한 것을 두고 팬들과 언론들은 데비잇이 재영입됐다고 반가워 했으나 밴 헤일런은 베스트 앨범 제작 후 새미 헤이거의 후임으로 96년 말에 해체된 익스트림(Extreme)의 보컬 게리 셰론을 영입한다. 데이빗 리 로스로선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1998년 초 게리와 함께한 첫 작품이자 이들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통산 12집 [Van Halen III]가 발매되었다. 밴 헤일런 자신들은 이 앨범을 두고 '밴 헤일런 역사상 최고',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에 견줄만한 완성도' 운운했지만 성적은 참담했다. 첫 싱글 'Without You'가 메인스트림 록 트랙스(Mainstream Rock Tracks)차트에서 7주간 1위로 랭크됐지만 싱글 차트 히트곡은 없었고, 앨범도 고전을 면치 못한 채 골드에 그치고 말았다. 이를 두고 밴 헤일런의 거듭되는 보컬 체인지에 팬들이 식상했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1977년에 진 시몬즈(Gene Simmons)가 지방 클럽에서 활약하는 이들을 발탁하면서 밴 헤일런(Van Halen)은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thers Records)와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들의 데뷔앨범 [Van Halen]은 1978년에 발매되었고, 그 중 싱글 'Runnin' with the Devil'이 성공을 거두었다. 앨범 발매 6개월 후 밴 헤일런은 플래티넘 밴드로 공인되었고 이 앨범은 이후 생겨난 모든 록 밴드에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몇년 동안 밴 헤일런은 레코드 산업에 가장 적합한 밴드 중 하나로, 그리고 발표하는 앨범마다 플래티넘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그룹으로 인정받았다. 1984년에 발표된 [1984]는 슈퍼스타로서의 그들의 입지를 확고히 다져주었다. 그러나 보컬 데이빗 리 로스(David Lee Roth)와 다른 구성원간의 갈등이 날로 더해지면서 1984년의 투어 때에는 멤버들이 한무대에서 공연하지 않는 등 불화가 극에 달하다 마침내 로스가 자신의 솔로앨범을 발매하면서 그룹을 떠나간다.

로스의 자리는 재빨리 새미 해이거(Sammy Hagar)에 의해서 대체되었고, 밴 헤일런은 그후 여러장의 성공적인 앨범을 발표했다. 그러나 밴드가 베스트 앨범을 발표하려고 계획할 때 밴 헤일런 형제와 새미 해이거 사이에 반목이 생기고 헤이거가 해고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베스트 앨범과 신곡 작업은 원 멤버 데이빗 리 로스와 함께 했으며 로스가 다시 밴드로 돌아올 것이라는 팬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밴 헤일런은 새 보컬리스트로 익스트림의 멤버였던 게리 섀론(Gary Cheron)을 영입했다.
이후 게리 셰론과도 결별하였으며 (표면적 이유는 음악적 견해 차이로 알려졌으나 자세한 속사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리더인 기타리스트 에디 밴 헤일런은 “헤어진 후에도 게리와 나는 음악적 동지로 남을 것”이라며 “새 보컬은 시간을 갖고 천천히 물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6년 전임보컬 새미 헤거의 뒤를 이어 팀에 합류한 게리 셰론은 지난해 3월 ‘밴 헤일런 3집’ 앨범을 발표했으나 이들이 지금까지 선보인 13장의 앨범중 유일하게 플래티넘(1백만장)을 기록하지 못해 팬들의 질타를 받아왔다.
이후 오리지널 멤버인 데이비드 리 롯스가 22년만에 친정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9           0
 
Fly_Zephyr  |  2007-11-30 09:04    지역 Calgary     
0     0    

햐.....가고 싶은 게 뜨니깐 시간이 안 맞네 아이고........

다음글 사랑의 편지
이전글 Calaway Park 년간패스 판매 시작
 
최근 인기기사
  캐나다 식료품, 주류, 식당 식..
  드라이브 쓰루, 경적 울렸다고 ..
  앞 트럭에서 떨어진 소파 의자 .. +1
  (CN 주말 단신) 우체국 파업..
  “나는 피해자이지 범죄자가 아니..
  연말연시 우편대란 결국 현실화 ..
  주정부, 시골 지자체 RCMP ..
  캘거리 트랜짓, 내년 수익 3,..
  AIMCO 논란, 앨버타 연금 ..
  주정부, AIMCO 대표 및 이..
  주정부 공지) 알버타의 회복적 ..
  웨스트젯 인천행 직항, 내년 주..
자유게시판 조회건수 Top 90
  캘거리에 X 미용실 사장 XXX 어..
  쿠바여행 가실 분만 보세요 (몇 가..
  [oo치킨] 에이 X발, 누가 캘거리에..
  이곳 캘거리에서 상처뿐이네요. ..
  한국방송보는 tvpad2 구입후기 입니..
추천건수 Top 30
  [답글][re] 취업비자를 받기위해 준비..
  "천안함은 격침됐다" 그런데......
  1980 년 대를 살고 있는 한국의..
  [답글][re] 토마님: 진화론은 "사실..
  [답글][re] 많은 관심에 감사드리며,..
반대건수 Top 30
  재외동포분들께서도 뮤지컬 '박정희..
  설문조사) 씨엔 드림 운영에..
  [답글][답글]악플을 즐기는 분들은 이..
  설문조사... 자유게시판 글에 추천..
  한국 청년 실업률 사상 최고치 9...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