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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선생님께 드리는 공개답글 |
작성자 강현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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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1240 |
작성일 2009-03-21 16:21 |
조회수 13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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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잠깐 도서관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의자에 붙어 앉아 있는 성미가 아니라 도서관에 가더라도 책을 읽는 일은 거의 없고 주로 영화를 고르는데 오늘은 한국영화 두 개를 빌려왔습니다. Time (시간) 과 Woman on the Beach (해변의 여인)라는 영어제목이 각각 붙어 있군요. Time은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고 Woman on the Beach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입니다. 두 사람 다 지루한 플롯을 가지고 지루하지 않은 영상을 만들어 내는 타고난 연출가들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답글 감사 드립니다. 답글이라는 게 쓰는 사람이 쓰는 거지 받을 사람이 대신 써 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기대치와 편차가 있다고 불평해 본 들 부질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주어진 문맥에서 상대의 진심을 읽을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해야겠지요..
‘미국식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시를 읽었습니다. 약 1 년 전에 발표하신 작품입니다. 이 시에는 이라크 와 아프카니스탄 침략전쟁에 대해 분명한 비판적 시각이 전제되어 있더군요.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피 멍을 들이고 한을 쌓아가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허상이 이 시의 주제인 것 같았습니다. ‘9.11 후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의사결정’을 존중하신 오늘 답글과는 인식과 관점의 궤를 전혀 달리하는 작품이어서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선생님의 그 시를 읽으면서 엉뚱하게 뇌리에 스친 생각은 ‘여성혐오 사상으로 가득한 기독교경전(신약) 디모데 전서 2 장을 사도 바울이 쓴 게 맞는다고 주장한 들 이상할 게 없다’는 것 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부터 수백 년 후 민초 선생님의 이 ‘답글’ 과 1 년 전 쓰신 시 ‘미국식 민주주의’가 한 저자의 이름으로 어느 동굴 항아리 속에서 발견됐다고 칩시다. 그 시대의 학자들은 ‘두 글의 저자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 거의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시란 필이 꽂힐 때 마음에 담겨 있는 것을 정직하게 언어로 표현하는 행위일 것 입니다. 한 사물을 보는 한 사람의 시각도 시간이나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으므로 시에 담긴 정치적 관점에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민초 선생님이 작년에 쓰신 시와 오늘 어떤 예의 없는 인간에게 주신 답글 안에 각각 내재돼 있는 정치적 입장이 크게 다르다고 해서 그걸 트집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런 변화 (또는 차이)는 민초 선생님의 실존적 고민과 관련된 개인적인 문제이고 그런 고민과 혼란의 각 고비마다 에서 정직하게 표현된 언어를 읽어야 하는 독자들은 그 ‘남이 써 놓은 시’를 공짜로 읽는 대가로 작가의 ‘고민과 혼란’에 동참해서 함께 헷갈려야 하는 고통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농담이 아니라 제 진심입니다.
그건 그렇고, 제가 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싶은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백분토론 같은 패널 토론도 그렇지만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토론 역시 한 개인과 개인이 전 인격으로 만나 벌이는 토론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제가 이유식 선생님을 지명해서 공개편지를 올렸지만 ‘공개편지’라는 개념 자체가 ‘이유식’개인에게 라기 보다는 이 게시판에 들어오는 모든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올렸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유식 선생님은 ‘양심에 거리낌 없는 부시론’을 반박하고자 공개편지를 올린 제 설득대상(독자들)을 대표하고 이를 매개하는 인물이지 저와 전 인격적으로 만나 둘이서만 대화하는 상대는 아니라는 것 입니다.
제 반박 목표와 설득대상을 ‘대표하고 매개’하는 인물로 선정되신 이유는 그냥 재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선생님께서 ‘양심에 거리낌 없는 부시론’을 설파하심으로써 그 대표와 매개 역할을 자청하셨기 때문이구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제 표현이나 지적에 무례하고 몰인정한 점이 있었더라도 ‘게임의 한 쪽을 맡고 있는 대표’가 감당할 수 밖에 없는 몫이구나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둘째, 선생님 같은 공인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저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도 공개된 장소에서 어떤 주장을 할 때는 긴장과 집중을 하고 시 한 수 글 한 편을 발표하더라도 ‘명품’을 만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언젠가 다른 곳에서 다른 분과 토론할 때 한 말을 그대로 다시 합니다.
제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팬’이라는 말 입니다. 누가 자기 좋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겠느냐 하겠지만 그건 그렇지가 않습니다. 자연의 이치나 인간 사회가 발전해 나가는 원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 하나의 구성인자가 서로 최선을 다 하는 상태에서 선을 이루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은 긴장과 집중을 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 입니다. 쉽게 말해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오는 긴장과 집중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관계에서 압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런 서로간의 압력을 통해 배우고 노력하며 발전하고 실수나 잘못으로 인한 사고나 말썽을 줄여나가는 것 입니다. 자연이나 인간사회나 기본 이치는 마찬가지일 것 입니다. 저는 언젠가 이런 이야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칭찬이나 덕담보다는 비난과 악플을 받을 때 더 기쁘고 에너지가 솟구친다"고. 당연하지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니 힘이 날 밖에. 이래서 적이 스승이라는 말이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편가르기나 싸움박질을 했다고 생각하면 지난 이틀 동안 우리는 잃어버린 것 밖에는 없을 것 입니다. 서로가 '명품'으로 한 발짝씩 다가서기 위한 자극과 노력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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