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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해질 무렵 |
작성자 Ho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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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12485 |
작성일 2019-11-13 17:38 |
조회수 2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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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해질 무렵 60회 생일이 지난 며칠 후 갑자기 Confederation cemetery park 에 간다고 하니, 집사람이 오지랖을 떤다고 야단을 쳤다. 약해 졌지만 아직 비가 내리고 있던 잔디 위에는 많은 누군가의 부모•자식•친구들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가 가득했다. 무덤은 소박하고 조촐했지만, 그들은 죽어서도 여전히 사랑 받는 사람들이 분명하다. 많은 꽃과 쪽지, 작은 선물들이 묘지 앞에 소담스럽게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민생활 중 오랜 기간 잘 알고 지내던 여러 지인 분들이 일찍 돌아가셨다. 결혼식 가본 적보다 장례식에 더 많이 갔다. 작은 딸은 상태가 심각한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로서 몇 년 동안 죽음을 많이 접하고 있다. 저절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제까지 난 어떤 방법으로든 오래 살아야 좋다고 생각해 왔다. 죽을 때가 되면 가족에 대한 걱정, 통증과 불편의 두려움, 고독사 가능성, 타인에 의지해야 하는 무력감, 인간의 존엄을 누릴 수 없다는 분노가 찾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을 해보았다. 생각조차 하기도 싫다.발달한 의료 기술이 없었다면 난 벌써 여러 번 죽을 기회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60이 되었다. 나이에 비에 이르다고 생각은 들지만 그 동안 겪은 상태로 봐선 죽음을 준비하는 것도 그럴 듯 하다. 어차피 외면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난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막 또 오르는 생각으론 나 스스로 먹거나 숨을 쉬지 못하게 될 때, 생명 유지 장치로 나의 목숨을 붙잡지 않겠다고 가족에게 다짐을 받아야 하겠다. 장례식에서도 떠들썩 한 것보다 조용히 가족 중심으로만 마무리 해달라고 하여야겠다.
영상을 만드는 중 떠오르는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해 둔다. -Rane-
“죽음은 생명과 뗄 수 없는 동정의 양면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 라는 말도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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