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씨 수사를 둘러싸고 극우파들간에 벌어지고 있는 패싸움이 아주 볼 만 합니다. ‘노무현 사면’을 주장한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은 이른바 코리아나호텔파가 27 일 장충체육관에 모인 갑제파와 정갑이파에 대해 어떤 경멸감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진보진영의 체면을 구기는 척 하면서 실은 장충동 건달들에게 직격탄을 날린 셈이지요.
그들간에 벌어져 있는 균열과 갈등은 이미 유서 깊은 것이고 면밀한 관찰력을 필요로 할 만큼 미세한 것도 아닙니다. 조선일보 김대중과 월간조선 조갑제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피 튀기는 칼부림은 ‘우파구역’ 의 주도권을 놓고 두 계파간에 벌이는 이권다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제가 지금 심판을 열심히 보고 있는 중인데 아직까지는 코리아나 호텔 대중이 파가 장충동 갑제파와 정갑이파 연합세력을 압도적으로 리드하고 있는 중 입니다.
코리아나 호텔 대중이 파에 가면 강천석이라는 펜잡이가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펜잡이들 중의 하나죠. 물론 저는 이념적으로 그와 정 반대편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 사람의 글을 즐겨 읽는 편입니다. 어떤 때는 그의 칼럼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습니다. 오래된 칼럼이지만 ‘이승만, 盧대통령에게 편지를 쓰다’ 라든가 ‘대통령과 손이 하나뿐인 경제학자’ 같은 그의 칼럼들은 제가 보기에도 명문에 속하는 글들입니다.
저는 예전에 극우진영에는 모두 돌대가리들만 모여있는 줄 알았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가끔씩 섞여있다는 걸 알고 좀 섬찟했던 적이 있습니다. 앞에서 예를 든 ‘이승만의 편지’를 읽으면 그가 한 경지를 이룬 현대사학자 같고 ‘……손이 하나뿐인 경제학자’를 읽으면 그가 경제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듯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그는 역사나 경제 각론에 관해서는 아마추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학문적 아마추어들이 쓴 칼럼이 어떤 역사학자나 경제학자가 낸 글보다 대중적 파급력이 있는 이유는 그들이 언어조합을 통한 선전기법의 천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선전은 사상논쟁의 배후에서 아군을 결집시키고 상대방의 논리를 무력화하거나 가치를 삭감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훈련된Propagandist에 의해 쓰여지는 ‘조직된 언어’입니다. 잘 훈련 받은 Propagandist가 쓴 글은 우선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겉으로는 균형이 잡혀 있습니다.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감하게 됩니다. 가끔 감동도 줍니다.
이들을 가리켜 칼럼니스트라고도 부르고 논객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학자가 아니라 선전전문가입니다. 선전의 테마를 만들고 대상을 선정하고 정보를 선택하고 이걸 언어로 조직해 나갑니다. 이게 이들의 전공이고 분야입니다. 프로정신을 가지고 있는 칼럼니스트들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표현’안 에서 자신의 속셈을 직설적으로 내비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독자들을 표나지 않게 자기의 사상세계로 유인해 갑니다.
같은 보수라도 이런 사람들이 미래한국이니 독립신문이니 조갑제닷컴이니 하는데 나와서 ‘주접’을 떨고 있는 일부 사이비 논객들과 구별되는 것은 바로 자기 역할에 대한 프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프로의식이 있다는 건 자기 감정과 표정을 관리할 줄 안다는 말이지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비분강개한 일부 사이비 논객들이 기본소양조차 갖추지 않은 글들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놓은 것을 읽고, 같이 덩달아 비분강개한 나머지 씨엔드림 같은 교민 사이트에 퍼 올리는 분들을 볼 때마다 좀 한심한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차라리 그 글들을 읽고 나름대로 자기 입장을 써서 올렸다면 반론을 할 지언 정 ‘한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곳 자유게시판에 열심히 사이비 논객들의 글을 퍼 나르시는 분들께 한 마디만 건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기왕이면 극우논리를 펴시던 그런 논리를 어디서 퍼 오시던 좀 더 감동을 줄 수 있는 세련된 것으로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부탁입니다. 그래야 저 같이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들도 한 층 자극을 받고 긴장해서 더 열심히 공부할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주장에 호감을 갖고 말고는 사실 그 주장의 정치적 배경이나 이념적인 차이 자체에 별로 좌우 되지 않습니다. 그 주장의 논리가 가지고 있는 ‘품성’이 호감 여부를 결정합니다. 지금은 구호를 외치면 그 깃발아래 수 천명이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세상은 냉정해 졌고 모든 이념에 세밀한 논리구조와 합리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피나는 연구와 고민의 흔적이 없으면 어떤 이념도 우상도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하루아침에 퇴출 당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살짝 가르쳐드리는 건데 코리아나호텔파에는 세련된 펜잡이들이 가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조갑제닷컴이니 미래한국이니 올인코리아니 이런 데서는 글 퍼 오지 마시구요. 한마디로 그런 곳은 ‘오합지졸들의 아우성’ 판인데 그런 아우성을 듣고 있다간 30 년 전에 골로 간 박정희 씨가 무덤에서 벌떡일어나 도로 남로당으로 재전향하게 생겼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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