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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 김동길 식 독설 늘어놓기 |
작성자 강현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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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136 |
작성일 2007-12-11 00:27 |
조회수 13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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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결과는 예상했던 대로다. 치명적인 윤리적 결함을 안고 있는 후보가 보란 듯이 압승을 거두고 말았다. 주가조작과 돈세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체제 윤리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최악의 범죄다. 범죄의 질로 따지면 위폐범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미국의 경우 그 형량이 2급 살인이나 미성년자 성폭행과 같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00 % 에 달하는 유권자들이 이런 흉악 범죄용의자의 아가리에 나라의 운명을 통째로 처 넣고야 말았다.
지금 문제는 ‘민주진영의 권력’을 수구냉전세력에게 도로 빼앗겼다는 것 따위가 아니다. 우리가 경악하는 것은 한국 사회 일각에 흐르고 있는 심상치 않은 광기 때문이다. 황우석 사태 이래 주로 보수 집단에서 계기가 있을 때 마다 나타나는 이런 광기의 편린은 이제 그냥 두고 볼 수준을 넘어섰다. 광기란 단어는 사회과학적으로 개념화된 용어는 아니다. 그러나 한 국가나 사회집단의 불특정 다수가 기본적인 윤리의식이나 규범조차 상실한 채 어떤 주장이나 이념에 맹목적인 지지를 보낸다면 이런 현상을 표현할 단어로서 이처럼 가슴에 와 닫는 말도 드물 것이다.
독일 동부 공업도시들의 슬럼가나 모스크바, 생 페테스부르그의 거리를 휩쓰는 스킨헤드무리의 집단행동 역시 최소한의 상식과 보편 윤리를 벗어난 이념을 공유하고 이를 공공연하게 정치적 행동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시대의 그늘을 반영하는 사회적 광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교육정도나 소득 수준, 정서지능이 낮은 일정한 연령층 (10 대 후반) 집단이라는 점에서 이00 씨를 지지한 한국의 유권자들과는 그 사회적 집단으로서의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이00씨를 지지한 한국의 유권자 집단은 1930 년 대 초반 히틀러와 나찌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 다수의 독일 국민들과 유사한 ‘사회집단’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이 두 집단은 어떤 정치세력을 지지하는데 있어서 윤리적 저항감을 무릅쓴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윤리적 저항감이 극복되는 경지라면 일반 대중이 전위조직의 이론지도자 수준의 신념가들이 아닌 이상, 종교에 필적하는 초이성적인 심리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으로서의 능력과 윤리성은 별개라는 지적이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대통령 중 하나인 클린턴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클린턴의 경우라면 이 지적이 타당할 수 있다.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는 사생활문제다.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는 실격일지 몰라도 공인으로서의 업무윤리와는 크게 관계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수신제가치국 어쩌구 하는, 영역별 특수성에 대한 개념분리가 덜 된 고대시대에 나온 격언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시 공화당 강경파의 클린턴 탄핵 시도가 얼마나 멍텅구리 짓이었는가를 잘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BBK 사건은 사생활과 관련된 윤리문제가 아니다. 이 00 자신이 그토록 신봉하는 자유시장경제의 룰을 배반한 사회적 범죄다. 그리고 유력한 사회적 범죄 용의자가 이 자유시장경제를 체제의 근간으로 하는 국가조직의 수장으로 당선됐다. 이00 씨가 기가 찰 정도로 뻔한 거짓말을 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라리 ‘성매매업소에 들락거린 적이 있다’는 사실이 들통났다면 이렇게 까지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00 씨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00 정권아래 펼쳐질 한국의 장래는 군사독재시대보다도 암담하다. 신자유주의자들의 권력은 20 년 전에 경험한 군사독재정권보다 훨씬 가혹하고 잔인하면서, 용의주도하고 교활할 것이다. 가진 자들만을 아예 내놓고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정치집단은 이 나라를 순식간에 약육강식의 피비린내나는 아수라판으로 만들어 갈 것이 분명하다. 돈, 권력, 지식 이 세 가지 클럽 중 한 군데도 가입하지 못한 약 80 % 에 달하는 국민들은 가능성과 사회적 보호망 조차 제거 당한 채 상대적 빈곤과 멸시 속에 소외감을 씹으며 처참한 인생을 대물림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빈 말이라도 자기들 걱정을 해 주던 ‘반미좌파’들의 무능한 얼굴들을 가끔씩 그리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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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써놓고 보니까 김동길 씨나 조갑제 씨의 독설보다는 훨씬 부드럽군요. 이래서 피는 못 속이는가 봅니다. 그리고 후보 실명 안 밝혔으니 선거법 위반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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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트
| 2007-12-11 17:2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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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론중 차선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현실적 제약과 가정을 기반으로 최선안을 구현할 수 없을 때 차선안은 최선안과 반드시 가깝지는 않다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외견상으로 사회복지와 형평성제고라는 이상을 가장 잘 실현할 정권같이 보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현실은 달랐다. 이제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어 각자 주어진 역량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최선보다 나은 차선시스템을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친미좌파\' \'신자유주의\'라는 과거 정치쟁점 및 사상적 잣대로 대선에서 누구를 뽑는가에 일희일비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만들지 못했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선진국이 개도국과 다른 것은 지도자 하나에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주어진 자원과 현실에서 국민복지와 만족이라는 목표를 위해 각자의 역량을 총 결집해 시스템을 만들고 그에 의해 운영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정치인의 하수꾼이아닌 지도자를 국민의 하인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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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
| 2007-12-11 20:5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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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1. 제 1 세계 자본주의 국가일수록 최고 지도자 (대통령 또는 수상) 개인의 역할과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 최고 지도자를 내세우고 있는 지지기반 내부의 엘리뜨 집단이 조직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지도자 한 사람의 카리스마나 도덕성 따위가 중요하게 부각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항상 미련을 못 버리는 환상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대통령이나 수상은 그 나라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으면 무언가 큰 환상적인 화해의 장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입니다.
2. 애석하게도 이 세상은 개개인이 각자 자기의 맡은 바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선을 이루는 동시에 지도자가 국민의 하인으로 만들어 지는 기적이 일어 날 만큼 착하게 재단되어 있지가 않습니다. 1 차적으로 대통령 후보란 후보 개인이 아니고 한 국가 시스템의 헤게모니를 장악해서 자신들의 정치 경제적 기득권의 극대화는 물론 ‘믿고 있는 바’를 실현시켜 보려는 엘리뜨 집단을 대표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3. 인간이 생각하는 것을 정지하지 않는 한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는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다만 기존의 이념과 사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선진국 (저는 이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만 님께서 사용하셨으니 그냥 쓰겠습니다) 도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어 ‘우리 보다 나은’ 차원의 시스템을 구가하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지적설계론을 교과서에 집어넣으라고 악다구니를 써대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이민, 동성결혼, 낙태 등 온갖 쟁점을 사이에 두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피투성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님과 같은 이상적인 사고의 틀을 가지고 문제들을 바라본다는 것은 신선한 기분이 드는 일입니다. 또한 진지한 댓글은 항상 저로 하여금 새롭게 긴장하게 하고 무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 키트 님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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