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할배 (첫번째)
“때르릉~ 때르릉~”
순진이는 벌써 잠이 들어서 가는 코를 골고 있었고, 나도 막 잠이 들었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누구야 ? 이 밤중에……”
순진이가 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그래~? 산파는 왔어?”
“…………”
“알았어! 무슨 일이 있으면 다시 전화해. 시내를 잘 돌보아 줘~”
둘째 아들 찬이에게서 온 전화였다. 출산 예정일이 아직 두 주일이나 남았는데 진통을 시작했단다. 시내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지 않고 산파(midwife)가 집으로 와서 출산을 돕는다고 했다. 순진이와 나는 병원에서 아이 낳기를 바랐지만 시내가 원해서 산파를 정하고, 몇달 전부터 집에 와서 검진을 하고 출산 계획을 세워 놓았었다. 난산일 때에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을 했더니, 병원이 차로 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곳에 있으니 문제가 될 게 없다고 했다. 집에서 아기를 낳는 게 산모와 아기에게 정신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좋은 점이 더 많다고 했다.
30년 전에 첫째 진이를 낳을 때 생각이 났다. 출산일을 기다리면서 마음 졸이던 일, 어떻게 할 줄 몰라서 허둥지둥 순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던 일, 차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소리소리 지르던 순진이의 얼굴이 떠 올라 혼자 미소를 지었다.
‘차~암 옛날 일이네!’
옆에 누어있던 순진이가 부시럭거리면서 일어나고 있었다. 처음엔 ‘화장실에 가겠지!’ 생각했었는데 아래 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아~니 이 밤 중에 자다 말고 어디를 가는거야?”
순진이의 뒷통수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미역을 물에 담가 놓아야 돼~”
“한 밤중에 미역은 웬 미역~?”
“남자들이란 다 저렇다니까. ㅉㅉㅉ”
“………”
“아~니 며느리가 애를 낳는다는데, 시어머니라는 사람이 누어서 잠이 와~?”
“………”
‘가만이 있을 껄! 괜히 한마디 해서 핀찬만 받았네!’
순진이는 미역을 물에 담궈 놓는다고 하더니, 부엌에서 계속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잠이든 모양이었다. 오줌통이 빵~빵~해졌다는 느낌에 화장실에 갈려고 일어나는데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이 사람이 어딜 갔지?’
아래 층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아~니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달그락 거리는 거야!’
시계는 새벽 6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이 사~람이 밤을 새운거야~?!’
‘어~~~ 시원하다!!!’
잠은 몽땅 달아나버렸다. 아래 층으로 내려가 보니, 순진이는 뭔가 열심이 썰고 있었다.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잠은 안자?”
“아유~ 깜짝이야!!! 제발 기척소리 좀 내고 다녀~!”
“자기가 못 듣은거지! 왜 나한테 소리는 지르고 야단이야?”
“애 떨어지겠어~!”
“씨~~ 애는 무슨 애~! 애도 못 낳는 여자가……”
“당신~ 그런 말할 자격 없어! 남자가 치사하게!”
“아~니 치사하다니. 뭐가?”
“불임수술을 여자가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들 남자가 하지!”
“이 여자가 사람 잡겠네! 현이를 낳으면서 병원에 있는 김에 수술하자던 사람이 누구였는데?”
“그땐 내가 바보였어! 남자들은 수술을 하는데 10분도 안 걸린데!”
“………”
“그럴 땐 남자가 ‘내가 할께! 당신 너무 힘들어!’ 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
“치사하게 여자한테 불임수술을 시켜?!”
“…… 이거 봐~, 뭘 몰라도 한참 모르시네! 불임수술 한 남자들 마음 놓고 바람피운다고 하더라. 알기나 알아?”
“에구~ 바람이나 피울 위인이여야지……”
“정말 한번 피워 봐?”
“피워 봐! 다 늙은 영감을 누가 좋다고 할까?”
“…… 여보, 집어치워~ 우리가 새벽부터 이게 무슨 짓이야?!”
“그런데 당신 밤을 새운거야?”
“아~니 나도 한잠 잤어”
“저기 끓는 건 뭐야?”
“소꼬리……”
며누리가 아기를 낳으면 소꼬리국에 미역을 넣어서 먹이겠다고 소꼬리를 서너 판데기 사오더니 꼭두새벽 부터 꼬리국을 끓이고 있었다. 구수한 꼬리국 냄새가 온 집안을 채웠다.
‘역시 모성과 부성은 차이가 나는구나!’
“이렇게 해서 먹여야, 젖이 잘 나와서 우리 손녀 잘 키우지!”
“왜 찬이한테서 아직 소식이 없지?”
“전화 한번 해 볼까?”
“조금만 참아! 애를 낳으면 어련히 전화 안 할까!”
물론 아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병원이 아니고 집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게 좀 불안했다.
‘어머닌 어떻게 여덟을 모두 집에서 낳으셨을까!’
다시 잠을 자기는 틀렸고, 순진이가 끓인 꼬리국에 아침을 먹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순진이는 총알처럼 튀어 일어나서 전화를 집어들었다.
“낳았어?”
“………”
“이뻐~? “
“………”
“여보~, 이쁘데!”
‘이구~ 건강하냐고 물어봐야지! 이쁘냐고 먼저 물어 봐?’
“알았어. 오후에 교회 갔다가 아기 보러 갈께”
전화기를 내려 놓는 순진이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아기는 건강하데? 시내는 괜찮고?”
“몰라. 안 물어 봤어”
“글쎄~ 이렇테니까!”
나는 이상하게 세 아들들을 낳고 처음 봤을 때, 모두 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열개씩 있는지를 제일 먼저 확인했었다. 왜 그랬었을까?
예배중 광고시간에 순진이와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온 교우들이 진심으로 축하를 해 주어서 기뻤다. 예배가 끝나고 교우들에게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고 집으로 달렸다. 순진이는 소꼬리 국과 미역을 챙기는 동안, 나는 기저기를 두 상자, 아기용 젖은 수건 한 상자를 사가지고 왔다. 마음이 바빴다.
“누구를 닮았을까?’
“글쎄~”
“여보, 한국 아이 같지 않을텐데…… 좀 섭섭할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들의 손녀인게 중요하지!”
“………”
세 며누리 중에 둘은 한국 며누리이고 둘째 시내만 서양 며누리이기 때문에, 어떤 때는 조심해야 할 때가 있었다. 순진이는 아들들과 며누리들에게 대개는 한국말을 썼다. 어떤 때 순진이는 시내가 서양 며누리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한국말로 말할 때가 있었고, 그래서 나는 부지런히 통역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어떨결에 순진이가 한국말로 시내에게 이야기를 하면, 시내가 알아듣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서로 한바탕 웃었다. 아들, 며누리들이 모두 카나다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공부하고 결혼을 했지만, 그 중에서 시내만 다르게 생겼기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더 많은 신경을 썼었다. 참 다행인 것은 세 며누리가 자매처럼 사이가 좋다는 것이었고, 시내가 한국 음식을 끔직히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시내는 가끔 우리가 집에 없을 때, 오게 되면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고 밥을 퍼서 찬물에 말아서 먹었다. 그리고 순진이에게 “어머님, 물밥에 김치가 너무 맛있어요” 라고 해서 순진이를 기쁘게 해 주었다.
순진이는 이제 첫 손녀가 태어났는데, 손녀가 서양사람처럼 생겼을 거라는 것을 좀 섭섭해 하는 것 같았다.
“여보, 수미가 정말 예쁠거야!”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어?”
“어떻게 알긴~ 누구 손녀인데!”
“치~이~”
“수미는 한국사람의 좋은 것과 서양사람의 좋은 것을 빼 가졌을 꺼야!”
“그럴까?”
“그렇테두~!”
“빨리 보고싶다!”
“나두~”
찬이네 집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콩당거리고 있었다.
‘수미가 어떻게 생겼을까?’
크게 심호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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