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수 있으면 그를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마지못해 칭찬해야 할 때도 ‘그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이라든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라는 따위의 말을 빼놓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우선은 내가 그보다 선명한 입장을 가졌다는 꼴값을 떠느라 그랬을 것이고 다음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발뺌을 할 도주로를 확보해 두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뿐 만 아니라 이른바 진보진영내의 많은 사람들이 늘 그랬다. 그가 이런 식으로 따돌림을 당해 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20 년 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내가 그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백 명이 옳다고 떠들어도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둘째,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무엇을 계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셋째, 자기편이라고 해서 잘못을 그냥 덮고 넘어가지 않는 ‘까칠한’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좀 부정적인 표현이지만 아주 시니컬한 사람이라는 인상도 함께 받았다.

그의 이런 스타일은 나름의 계보와 권력구조를 토대로 일사불란한 지휘계통을 형성하고 있었던 1980 년대 운동권 문화에서는 용납되기 어려운 것 이었다. 학벌과 지연으로 연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로열패밀리 문화가 보수진영의 전유물인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시민단체건 정당이건 노동운동권이건 ‘학출(학생운동 출신)인맥 헤게모니’의 배타적 권력구조는 어디에서나 예외 없이 마치 철옹성과도 같았다. ‘상고출신’ 인권변호사 노무현은 그 진보진영에서 조차 비빌 언덕이 없었다.

5공 청문회 스타라는 타이틀과 그의 뛰어난 토론능력은 그런 그에게 오히려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학맥과 계보의 지휘계통에 의지하지 않고는 우로도 못 가고 좌로도 못 가는 병신스러움이 잔존하고 있었던 운동권 주류문화의 눈깔에는 ‘노무현 스타일’이 ‘이단적인 자유주의 잔재’이거나 분열적 개인주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진보진영 주류와 노무현은 옛날부터 이렇게 궁합이 맞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서로 궁합이 맞지 않았다기 보다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당시 운동권 문화에 과분했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인 것 같다. 그것은 2002 년부터 2007 년까지 대한민국이 노무현 이라는 ‘분에 넘쳐 주체할 수 없었던’ 대통령을 가졌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일이다.      

‘바보’ 노무현의 좌절은 그가 대통령을 하던 시절 ‘수구꼴통’들의 훼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가 동지로 생각하고 몸과 마음을 의탁했던 진보진영이 옛날부터 그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언젠가 어떤 논객이 참여정부의 일부 타협정책을 비난해온 진보진영인사들을 가리켜 ‘이념적 결벽증’에 걸린 사람들이라고 점잖게 비판한 적이 있다.

‘이념적 결벽증’? 글쎄…… 내가 생각하기에는 결벽증이라는 말 자체가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다. 톡 까놓고 말하자면 그건 이념적 결벽증이 아니라 X도 모르면서 실천은 하지 않고 주둥이만 나불대는 일을 자기 직업인 줄 알고 있는 자들의 좌편향 기회주의이거나, 할 줄 아는 일이라곤 책상 앞에서 온갖 잡생각에 개똥을 섞어 비비고 주무르는 일밖에 없는 몽상가들의 헛소리들이다. 대부분이 그랬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을 포함해, 열사를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묻을 29 일까지 적어도 진보진영은 조중동이나 살인검찰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공격하기 전에 각자 골방에 처박혀 자기들이 노무현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반성하는 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열사는 음독을 하거나 목을 매지 않았다. 투신을 했다. 보통 자살과는 달리 투신과 분신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열사가 온 몸을 던져 저항하려 했던 문제의식의 일각에는 대한민국의 진보진영이 책임져야 할 몫이 분명히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몫의 분량도 아주 많다.

김동길 같은 놈이 지껄인 소리를 듣고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제 와서 열 받을 사람도 없을 것이고, 이명박 정권이 그들 표현대로’10 년 좌파정권’이 곳곳에 심어놓은 문화권력과 내부 골치거리 박근혜 측근들을 함께 제거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박연차 스캔들을 기획 추진해 왔다는 것 역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열사가 투신저항을 감행하기 수 주일 전부터 청와대 경호실과 검찰 정보계통을 통해 이상 징후가 청와대에 계속 보고되고 있었는데도 ‘치킨게임’을 밀어부친 현 정권의 비윤리적인 잔혹성 역시 지금은 이야기 하지 말자. 그게 그렇게도 놀랍고 새삼스러운 일인가.  

‘좌파 문화권력 제거 프로젝트’의 공격고리를 ‘도덕성 훼손’으로 정한 이명박 정권이 그 타켓을 찾다 찾다 못 찾아 기껏 그를 좋아했던 친구들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모아 준 ‘노무현 전별금’을 각색한 ‘소설극장’을 방영하기 시작하자 그걸 보고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는가. 이렇게도 말했었지. 아이큐가 쥐를 닮아 노무현을 좌파로 착각하고 있다고.

그리고는 그래도 옛 동지였던 사람이 천애고아가 되어 고립된 채 양아치 같은 놈들에게 둘러싸여 만신창이가 되도록 억울하게 몰매를 맞고 있는데도, 시치미 뚝 떼고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만 하고 있지 않았는가. 외면만 했나. 그 조롱행렬에 동참한 인간도 수두룩하지 않은가. 낯짝도 두껍게 동지 운운하면서……

그런데 그 엉뚱한 바보는, 자기를 헌신짝처럼 버린 것도 모자라 그 조롱에 동참까지 한 그 몰인정한 옛 동지들에게 날아 올 적들의 화살 조차 온 몸으로 막아주며 스스로 산화했다. 혼자서 모든 십자가를 지고 간 것이다. 어이, 옛 동지들. 지금 심정들이 어떤가? 황당하지? 나도 황당하다.      

열사 생전에 진작 했어야 할 말을 쪽팔림을 무릅쓰고 이제야 털어 놓는다.

…… 노짱, 정말 미안합니다. 좀 까칠하긴 했어도 당신은 지금까지 내가 봤던 사람들 중 가장 ‘사람다운’사람이었습니다. 가장 ‘대통령다운 대통령’이었구요.

2002 년부터 2007 년의 대한민국은 이런 문장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것 입니다.  

청소년들이 자기 나라의 대통령을 친구처럼 좋아했던 나라, 그래서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나라

…… 안녕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