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과 신문에 두 세 번 글을 올렸더니 저를 노사모 골수분자로 아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노사모와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염불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저 인간이 잿밥을 훔쳐가지나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에 정신을 팔다 보면 그렇게 본질을 놓치고 엉뚱한 해석을 하기 십상이라고 봅니다. 참고로 제가 캐나다에 있지 않고 한국에 있었다면 이라크 파병 이후 노무현 정권에 완전히 등을 돌렸던 많은 사람들처럼 참여정부의 거의 모든 노선, 또는 정책실패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을 가했을 것이고, 결국 나중엔 조문도 제대로 못 가고 봉봉분향소(봉하마을 가면 봉변 당할 사람들을 특별히 배려해 역사박물관에 따로 설치한 그들만의 전용분향소)나 기웃거리는 신세가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다행스런 일이지요.
제가 어느 글에서 5.23 사건을 두고 윌 헌팅이 숀 교수를 만난 사건 (영화 Good Will Hunting)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과는 별도로 조문국면을 통해 국민 대다수는 사람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그 진정성을 읽는 법을 깨달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을 지냈던 자가 자살이라니’ 하는 단세포적인 사건해석도구만을 움켜쥐고 있는 분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겠지만 ‘노무현의 죽음’은 대한민국 공동체의 미래를 몇 단계나 업그레이드시킬 정치-문화적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너무 기쁘다”고 마음껏 미소를 지어도 지하에 계신 ‘노무현 동지’가 결코 섭섭해 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죽음으로 대한민국 공동체와 소통을 이루어냈고 그 최후의 소통이 지금 세상을 바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입을 잘못 놀려 회생 불가능할 정도의 치명상을 입고 벼랑으로 떨어진 일부 극우인사들이 새 대한민국에 동참하기 어렵게 된 사실에 대해서는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노무현의 죽음보다 이것이 더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벼랑에서 떨어진 이유는 결코 그들의 이념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닙니다. 수구든 진보든 사상적 입장 때문에 당파가 나뉘는 현상 자체가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사물에 대한 해석의 관점과 태도가 달라지는 현상 그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 입니다. ‘진보-보수를 뛰어넘어’ 라는 말처럼 허구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은 없습니다. 그들이 실족한 이유는 이념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게임에서 준수해야 하는 원칙과 상식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들이 원칙과 상식을 지키지 않았던 이유는 ‘공정함과 사람에 대한 예의는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일종의 정의감이 결여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들에게 이념 같은 것은 처음부터 아예 없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상돈 씨나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그나마 돋보이는 이유는 경황 중에도 기본을 잃으면 설 자리도 잃는다는 사상가로서의 기본마인드를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인 반면 김동길, 조갑제, 지만원, 변듣보 같은 사람들은 그 기본을 겁도 없이 차버렸기 때문에 위기에 봉착한 것 입니다. (변듣보는 다른 세 사람과는 달리 살 날이 더 많은 젊은 친구인 점을 고려해 실명대신 아호를 사용했습니다)
교수요 기자요 군사평론가요, 논객이요 하는 걸 보면 아이큐가 모자란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데 그들이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요? 이유는 자명합니다. 그들이 진정한 사상가나 논객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이념으로 바운드리를 구축하고 그 이념을 좌판에 벌려놓고 ‘골라’ 골라’를 외치며 팽이를 돌려 온 사기도박단 비슷한 자들이었으므로 그럴 수 있었던 것 입니다.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신뢰 그리고 상대이념집단과의 마찰 속에서도 항상 최선의 합의를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사상가가 아니라, 그저 자기 이름을 날리고 구역을 확보하고 이익을 챙길 수 있다면 하루아침에 극우도 극좌도 자유주의자도 될 수 있는 장사꾼들에 불과했기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지요.
1990 년경 지만원이 거머리처럼 늘어붙어 자기 글을 내달라고 사정 사정하며 매달렸던 매체는 조선일보도 아니고 미래한국도 아닙니다. 그들이 말하는 좌파언론의 원조이자, 민언협 기관지로 출발한 ‘월간 말’지였습니다.
올해 82 세 의 김동길이 최근 가장 자주한 말은 다음과 같은 것 입니다.
“사람들이 나보고 조심하라고 하는데 내 나이가 몇 입니까? 여든 둘 이예요. 길거리에서 테러 맞아 죽으면 영광이지요. 이런 말 자주해서 그런지 지금까지 테러는 한 번도 안 맞아서(이북 사투리) 왜 그런가 하면, 아, 테러 맞으면 영광이라니까 저런 인간을 왜 영광스럽게 죽게 하나 해서 (테러) 안 하는 거 같애……”
이 말에서 어떤 진정성이나 솔직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이 말에서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묻어납니까?
길거리에서 테러 맞아 죽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그는 늘 집 안에만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며 동영상도 집 안에서 찍고 김석기(전 서울지방경찰청장)를 개인적으로 불러 자기 집을 ‘알아서 경호해 주도록’ 부탁까지 한 모양입니다. 스스로 한 실토에 따르면 김석기를 점심식사에 초대한 그 다음 날부터 경찰차가 그의 집 앞에 진을 치며 24 시간 경호를 해 주었다고 하지요.
길게 얘기할 건 없는데, 어쨌든 앞으로는 이런 비슷한 자들이 떠드는 소리에 더 이상 신경을 쓸 일도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을 것 같아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노무현의 죽음은 진보와 보수를 더 확연하게 편 갈라놓은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뒤섞여 있던 사상가들 사이에서 기본 품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이념장사꾼’들을 발가벗겨 백일하에 공개함으로써 그 사회적 영향력에 치명타를 입히는 부수효과를 가져 온 것 입니다.
그들 말마따나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자기들이 스스로 벼랑으로 몸을 날린 것이니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을 것이고. 한편으론 불쌍해서 짠 한 마음에 이런 말을 해 주고 싶군요.
한 1 년 장사해 먹을 밑천이 갑자기 날아가 버려 좀 화가 나긴 했겠지만 좀 참지. 너희들이 그렇게 화가 났을 적에야 게도 우럭도 다 놓치고 괜히 판돈(천신일)만 송두리째 날린 명박이 속은 오죽 했겠니? 그런데도 잘 참더만……
저도 입담이 심했습니다. 상소리도 좀 섞인 것 같고,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