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데 나와서 정치적인 견해를 발표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불가피하게 비판을 해야 하는데, 머리에 든 생각만큼 말 표현이 모질지 못한 저로서는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산환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좋아좋아 님의 질문이 이명박 씨의 재단설립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질문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거기에 대해서는 대답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이 평소에 한 약속’이라는 말부터가 잘못된 표현입니다. 재산기부 약속은 이명박 씨가 ‘평소에 한 약속’이 아니라, 2007 년 12 월 대선국면에서 BBK 사건과 관련해 후보사퇴요구가 거셌던 ‘비상시’에 위기돌파를 위해 내뱉은 말 입니다. 그것도 도곡동 대지매각대금과 (주) 다스 주식 등 차명재산은 제외하고 본인 명의로 등기되어 있는 서초동과 양재동의 부동산 만을 대상으로 한정해 마지못해 내놓은 선거공약이었습니다.
확신하건대 지금 대한민국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반독재항쟁의 위기국면이 없었더라면 기부형식이건 재단설립이건 이명박 씨의 호주머니에서 십 원짜리 동전 한 개도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 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332 억 원이 여기 저기 숨겨져 있는 차명재산 합계의 몇 분의 일에 불과하더라도, 또 사위와 친구들이 재단 운영권을 틀어쥐고, 증여세와 상속세를 면제 받고 법인 카드 등을 이용하여 온갖 탈세를 할 수 있더라도, 또 김경준과 했던 것처럼 온갖 기부금을 끌어 모아 재단 재산을 증식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아가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은 물론이요, 왼 발 오른 발도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대대적인 자기 이름 광고를 하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이명박 씨의 심정은 참담하고 불안하기 이를 데 없을 것 입니다.
많건 적건 자기의 시간이나 물질을 남을 위해 희생하는 행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타고난 심성도 중요하고, 자라온 환경이나 여유롭고 아름다운 품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 같은 것들도 어떤 사람의 이타심을 형성하는데 한 몫 합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남을 위한 희생과 봉사를 통해 그 자신이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행위를 반복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 입니다.
밥값 한 번 낸 적이 없다는 유명한 짠돌이로서는 재단이건 뭐건 ‘기부’라는 단어 차체가 이 세상 개념가 아니기 때문에 격심한 문화충격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아마 대통령 된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을 좀 해 보십시오. 밥값 낼 때 만 되면 화장실로 사라진다든가 뒷주머니를 메 만지며 ‘어, 지갑을 사무실에 두고 왔나?’ 따위의 핑계를 대 왔다는 사람 마음이 하루 아침에 무슨 천지개벽을 했다고 그 많은 돈을 자기 손아귀에서 벗어나도록 하겠습니까?
저는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이명박 씨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경위야 어찌됐든 그도 이제 소수이긴 하지만 몇몇 사람들로부터는 기부천사라는 ‘황당한’ 칭송도 받고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그가 정치적인 입장과는 관계없이 이번 일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기부천사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 사람 혼자 힘으로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을 많이 해칠 수도 있습니다. 한 번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합니다. 진짜 기부천사를 한 번 찾아가 만나 보는 것 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유명한 기부천사 중에는 통일운동가 류낙진 선생의 외손녀답게 훌륭하게 자라 준 대한민국의 젊은이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 수양을 하다 보면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밥값을 내고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법’ 정도는 배울 수 있을 것 입니다.
그의 나이가 예순 여덟이면 어떻습니까?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라면 스물 세 살에 불과하지만 누님으로 모시고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거듭남의 출발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4 년 후에는 저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 용기 있게 거듭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이었다” 는 글을 한 번 써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동시대에 연달아 두 명의 대통령다웠던 대통령을 배출한 행운의 세대가 될 것 입니다.
추신: 대한민국의 ‘합법적 대통령’인 이명박 씨가 불행해 지는 일이 없기를 제 이름을 걸고 진심으로 바랍니다. 비판을 하건 비난을 하건 자유이지만 이 글을 조롱이나 정치적 비난으로 오해하고 엉뚱한 동문서답이 오가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