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oneer 님의 글에서 진정성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진지한 문제제기를 ‘자기 이야기’로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보기에 저와 Pioneer 님이 각론을 주제로 토론을 하는 것은 너무 에너지 낭비가 크다고 봅니다. 피차 그럴 시간도 없을 것이구요.
Pioneer 님께서 믿고 계신 대로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Pioneer 님께서는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합법정부를 압박하고 비판하는 이유를 그들의 사상과 품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인 것처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그게 왜 오해인지 말씀 드리고 싶은데 이야기가 좀 길고 복잡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이야기를 두 대목으로 나누어 하겠습니다.
첫 번째 대목 입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 입니다. 맞습니다. 민주주의는 절차 입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과 절차를 기본요건으로 제도화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형식적 시스템에 관념적 수술을 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가령 이런 이야기입니다.
개개인의 ‘함량’을 달아 볼 합의된 저울을 만드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그것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자면, 리콴유 시대의 싱가포르처럼 만 40 세 이상의 유권자나 국가유공자들에게 투표권 두 개를 주자는 발상 따위가 여기에 속합니다. 아무리 답답해도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좀 더 쉽게, 실감나게 말해 볼까요?
만일 누군가가 나서서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무현이나 유영모, 문익환, 안중근, 김구, 이순신, 유관순 같은 사람들에게는 투표권 두 개를 주고 송병준, 이완용, 고재봉, 유영철, 조갑제, 김대두, 강호순, 김동길, 노덕술, 김진홍 같은 사람들에게는 두 사람씩 묶어서 한 표 씩만 주자”고 주장한다면 저는 결사적으로 나서서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을 맹비난할 것입니다. 왜? 그런 식으로 만든 형식은 그 자체로 비윤리적이니까요.
그러나 다수결이나 절차는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자, 여기서부터가 두 번째 대목입니다.
공동체가 정의와 평화간에 최선의 균형을 이루며 유지되기 위해서는 소속 집단간의 견제와 상호 저항이 항시적으로 작용해야 하고, 이런 견제와 저항을 통해 그 중 가장 강한 이해집단들이 항상 긴장하고 필요이상의 자기 욕구를 자제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게 민주주의의 또 다른 작동법칙입니다. 이 작동법칙은 다수결과 절차라는 민주주의의 형식적 시스템과는 별도로 오히려 그 형식을 견제하며 존재합니다.
형식의 윤리만 고수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때로는 심각한 상황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자유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권이 어떤 비행을 저지르더라도 절차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그 정권의 권력행사를 중지시킬 방법이 없는 상황을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격과 정도는 각각 다르지만 1930 년 대의 독일과 2009 년의 한국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정권의 비행이란 대통령이 밤중에 청와대를 슬그머니 빠져나가 딸보다 어린 여대생과 여가수를 옆에 앉혀놓고 술마시는 짓 따위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 정권의 지지기반인 기득권 집단이 자기 욕구를 자제하지 않고 현재 유지되고 있는 균형을 갑자기 깨 버리기 위해 벌이는 공작에 국가공권력을 함부로 동원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국가공동체 안의 다른 이해 및 이념집단은 깨진 균형을 다시 유지하기 위해 거센 저항에 돌입하게 됩니다. 유기체나 다름없는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형식의 윤리만을 고수할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제거하는 기능을 하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요건이기도 합니다. 만일 한 세력이 균형을 깨려는 행동을 하는데도 다른 쪽의 저항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견제를 받지 않아 끝없이 부도덕해 지는 기득권 집단이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독재국가가 돼 버리고 말 것입니다. 독재국가란 한 사람의 대통령이 철권을 휘두르며 장기집권을 하는 나라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지배집단이 대를 물려 가며 한 나라 각 분야의 권력을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현상도 의미합니다.
이명박 정권의 핵심지지세력은 과거 10 년 동안에도 청와대와 정부조직 일부를 제외하고는 돈과 권력이 따라붙는 현장에서의 기득권을 빼앗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 난리를 피우는 것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돼온 문화권력을 그들이 생각하는 이른바 ‘비주류 천민집단’에게 빼앗긴 것에 대한 질투와 분노 때문입니다. 언론, 교육, 문화, 예술, 시민운동 공간 등에 대한 이들의 저주와 악담을 동반한 무차별 공격은 정권 차원이 아닌 범기득권 계급의 조직적 폭력이고, 그 조직적 폭력을 행사하는 데 국가기관이 동원되는 형국이 지금 시국문제의 핵심적 본질입니다.
그들은 국민들이 지난 20 여 년 간 피눈물로 이루어 놓은 대한민국 사회의 균형과 견제구조를 뒤집어 엎고 다시금 모든 분야의 권력을 독식하기 위해 대대적인 역사후퇴 공작을 진행하고 있는 중 입니다. 여기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은 당연한 것 입니다.
문제는 일부 국민들에게 일어나는 착시현상입니다.
균형을 깨려는 자들은 합법적으로 보이고 균형을 유지하려는 저항세력이 오히려 혼란을 야기하는 집단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 민주주의의 시스템과 운동법칙이 각각 별도의 기능을 가지고 상호 견제하는 작용을 하며 善을 이루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 국가권력은 대체적으로 지지기반을 위한 이해집단으로 기능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국민은 이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며, 때에 따라 시민권력을 구성해 저항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국가권력의 공권력 행사에 저항하는 사회집단의 반응과, ‘절차’를 무시하는 비민주적인 행동을 서로 같은 개념으로 혼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소리 안하고 말로만 상대방 존중을 외친다고 예절 바른 글이 아닙니다. 상대가 말장난을 한다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다시 한 번 좀 더 깊게 고민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Pioneer 님의 진정성은 제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양한 계급과 이익집단 그리고 이념집단이 함께 존재하는 국가공동체는 목표가 하나로 정해진 캘거리 산악회나 에드먼턴 자동차 동우회와는 그 공동체 개념과 존재양식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 입니다. 제가 언젠가 다른 분께 한 말인데, 국가공동체에서의 최선의 정의란 추상적인 애국심이나 공동체 사랑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기 보다는, 계급과 이념집단간의 긴장과 균형에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모든 분야의 모든 권력을 다시 독식하려고 시도하는 집단이 가장 위험시하고 가장 증오하는 다음과 같은 표어가 어느 분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입니다”
실례 많았습니다. 나가야 하므로 줄입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