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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화해하고 식사나 한 번 할까요? |
작성자 강현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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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1589 |
작성일 2009-07-15 10:18 |
조회수 2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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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님과 더 이상의 논쟁을 하기보다는 화해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님께서 참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쁜 놈이면 어떻게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겠느냐”는 말씀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말이 영화 ‘비열한 거리'보다 더 비열한 복마전 정치판에서 모든 정적을 물리치고 산전수전 다 겪으며 정상에 오를 정도면 모두 나쁜 놈들일 거라는 예단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 예단 자체는 무의미한 것일 수 있습니다. 개인 pioneer 와 대통령 pioneer 는 다를 수 밖에 없듯이 개인 이명박과 대통령 이명박도 다를 수 밖에 없겠지요. 개인을 움직이는 것은 상식과 양심이지만 권력을 장악한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조직의 보존논리와 명분이기 때문에 두 사람에 대한 행동양식을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잣대가 각각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포폄이 심한 이유는 특이하게도 그는 그 차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한 쪽에서는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열광하는 것이고 또 한 쪽에서는 대통령으로서의 아마추어리즘을 비판하는 것 입니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평가하더라도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조직적 환경과 역사적 조건을 같이 살펴야 하고, 무언가를 판단하려면 엄청난 공부와 고민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역사를 바로 읽으려면 사실과 해석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스스로 가져야 하는데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분야별 전문가의 해석을 존중하는 이유는 그들이 1 차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정보들을 맥락 속에서 해석해 내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명을 수행하는 학자나 1 차 자료를 수집하고 보도하는 기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직업윤리는 가치중립과 정직입니다.
적어도 한반도 현대사를 다룸에 있어서 학자와 기자들은 가치중립을 지킬 수도 없었고 정직할 수도 없었습니다. 남한과 북한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사실입니다. 한 인간을 신으로 둔갑시켜버린 북한이나, 엄연한 독립운동가들을 천하의 개새끼들로 격하시켜버린 남한이나 천박한 거짓 역사를 써 온 것은 속된 말로 도낄 개낄 입니다. 오죽하면 6 년 8 개월 동안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던 자가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의 참모습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웠다” 고 회고록에다 고백을 해 놓았겠습니까? 어떤 집단에 대해 무한 증오를 가지고 있거나 무조건 충성심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두 한반도 비극의 역사가 낳은 피해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그런 피해자들이 너무 많다 보니 조그만 캐나다 알버타 주 동포사회의 게시판에서 조차 이렇게 사태가 심각해 진 것 이구요. 이 작은 캘거리 에드먼턴 한인 동네에서 사회심리학까지 출동해야 할 만큼 사태가 심각해 진 걸 보면 참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불행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요?
저는 우선 해방정국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김일성-이승만 대립구도로 남북한의 권력구조가 확립됐다는 것 자체가 우리 민족으로서는 매우 불행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 모두 각각 소련과 미국의 후견이 없이는 통치조직을 구성할 기반이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집권과정에서 무리한 지배이념 조작이 필연적으로 수반됐던 것입니다. 한쪽은 반공(사실은 반북)이고 또 한 쪽은 수령론이지요. 비극적이게도 두 명 다 ‘전쟁광’이라 할 만큼 서로를 죽이려고 혈안이 돼 있었지요. 개인적인 호전성을 각자의 발언만을 토대로 해서 비교하자면 김일성 보다는 이승만이 더 심했습니다.
Pioneer 님과 제가 쓸데없는 감정대립을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불행한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일일 것입니다.
한반도의 비극을 잉태시킨 이 두 명의 정치지도자가 과연 처음부터 그 자격이 있는 자들이었을까요? 이승만 이야기는 많이 아실 테니까 저는 김일성 이야기를 좀 하지요.
독립운동을 취미생활 겸 향후 정치권력을 위한 경력관리 정도로 삼아 미국과 임시정부가 있던 중경 상해 등지를 시계불알처럼 왔다 갔다 한 것이 독립운동 경력의 전부인 이승만이 국내 기반이 취약하고 남한 주민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다 손 치더라도 김일성의 경우는 약간 특이합니다.
그는 성장배경도 무난하고 항일투쟁 경력도 화려합니다. (저 누누이 말했지만 친북좌파 절대 아니고 김정일 정권 무지 안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선입관 갖지 말고 읽어 보세요)
알려진 대로 그는 북한사회에서 말하는 기본계급 출신은 아닙니다. 친가와 외가 모두 비교적 ‘쟁쟁한’ 집안입니다. 외조부 강돈욱은 창덕학교를 설립한 교육자이고, 부친 김형직은 조선국민회를 결성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은 둘 다 숭실학교를 졸업한 인텔리였는데 외가 쪽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입니다.
1926 년 김형직이 사망하자 그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역시 독립운동가였던 손정도 목사의 극진한 사랑과 돌봄을 받으며 만주의 명문 육문중학교에 입학합니다. 김성주(김일성의 어릴 적 이름)의 사람됨을 일찍부터 알아보고 그의 후견인 역할을 맡은 손정도 목사는 아시다시피 그의 큰 아들(손원일 대한민국 초대 해군참모총장)은 남한의 국립묘지에, 작은 아들(재미교포 손원태 박사)은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각각 묻혀 있는, 한반도 분단 비극을 상징하고 있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아버지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비교적 반듯한 집안과 교육풍토,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후견인과 학교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어린 김성주는 1920 년대 판 ‘촛불소년’으로 자라날 수 있었고, 15 세 나이에 길림시에서 강연회를 한 도산 안창호에게 계몽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질문을 할 정도로 뚜렷한 역사의식 또한 갖출 수 있었던 것 입니다.
그는 성장배경은 물론이고 항일투쟁 경력 역시 비교적 화려했지만, 그가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북한의 권력을 장악하기에는 좀 어려운 요인과 여건이 있었습니다. 첫째, 남한과는 달리 북한에는 엄청난 수의 쟁쟁한 항일투쟁경력을 가진 인사들이 몰려들어 그가 지명도면에서 상대적인 열세를 면할 수가 없었지요. 둘째, 중일전쟁 발발 이후 관동군의 강화된 토벌작전으로 그가 이끄는 항일연군이 소련지역으로 퇴각할 수 밖에 없었는데, 1941 년경부터 1945 년 8 월 9 일 소련의 대일참전이 선포되기까지는 그의 알려진 활동이 별로 없는 공백기였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이 4 년 간의 기간 중, 해방 후 실제로 조선에 진주한 소련군 지도부와 끈끈한 인맥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는 게 그 개인에게는 전화위복의 기회였는지 모르나, 정치적 열세와 소련인맥, 이 두 가지 사실의 묘한 결합은 1945 년부터 ‘종파사건’으로 연안파가 숙청된 1956 년까지 김일성의 무리한 권력장악과정을 배태시킨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한미디로 한반도의 비극은 이승만이든 김일성이든 광범위한 대중과 함께 호흡해 오지 않고 엘리트주의에 빠진 교만한 정치조직의 집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제부터는 이데올로기에 매몰돼 다른 견해를 무작정 증오하려 하지 말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사람이나 사건의 흐름을 남이 해 놓은 해석이 아닌 사실에 근거해 바라보면 좀 더 큰 틀에서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게 되어 무엇이 잘 한 것이고 무엇이 잘못한 일인지, 그리고 그런 변화를 있게 한 역사 환경적 요인은 무엇인지를 좀 더 객관적이고 차분한 마음으로 검토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오늘의 북한 문제나 남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좀 달라질 수 있을 것이고, 작은 동포사회에서 이런 문제를 가지고 서로에게 못할 소리 하며 싸울 이유도 줄어들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런 노력은 각자 천천히 해 나가기로 하고 우선 pioneer 님에게 화해를 제안합니다. 그 동안 미안했습니다. 지난 번에 드린 주소로 메일 한 번 주십시오. 식사나 한 번 합시다.
추신: Pioneer 님, 혹시 ‘내 사랑 아프리카’님 하고 ‘토마’님 기억하시나요?
이틀 정신 없이 지내다 다시 들어와보니 두 분이 오랜만에 들어오셨네요. 반갑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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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09-07-15 19:28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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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을 전설, 신화,동화 등과 일치시켜서는 안되지만, 문제는 우리가 일차 자료로 삼는 것은 raw materials로서 파편적인 (fragmentary) 것이라서 불충분한 증거 ( imperfect evidence)만을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적어도 역사적 이해는 이런 파편적인 raw materials이 최소한 인과 관계 (cause-and-effect relationship)를 형성했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가 북조선을 이해하는데 이런 파편적인 일차자료조차 미비한 상태입니다. 이런 사태는 남북분단과 이데올로기 대결이라는 구도가 역사적 자료를 교류하는 차단 막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조선과 그 지도자들을 악마화시키는 것은 매우 손쉬운 방법이겠죠. 작년에 어느 칸프런스에 참여했는데 발표자가 북조선의 주체사상을 종교적 틀로 해석했는데 발표자나 청중이나 북조선에 다녀온 적이 없어서 질문과 답변이 진짜 우습게 된 적이 있습니다. 가까운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남북관계조차도 우리는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거대 역사를 말하기 이전에 우리는 북조선에 최소한 2-3년 상주하면서 주민들의 삶을 그리는 민족지 ( ethnography)조차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인류학의 몫이긴 하지만, 희망컨대 (가능하다면), 남북 통일의 이후를 이해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것이지요. 북조선 뿐 아니라 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참여자가 나의 현재의 지식이나 문화적 습성을 뒤로 하고 현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겠지요.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을 테러리스트의 온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현지 자체의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미국식 근대성과 이념으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한 사해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지요. 국제관계가 얽혀 있고, 경제적 차이가 노정되어 있고, 다른 세계관이 생산되는 현 시점에서, 특정인과 사회를 악마화하기 이전에 그 자체를 바라보는 노력을 한다면 현실의 국제 관계조차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북조선을 대하는 방식이 우리가 중국을 대하는 방식정도의 수준만 되더라도 남북관계는 달라질 것입니다. 남한과 중국의 경제 교류 땜에 평화의 사도 달라이 라마조차 초청못하는 이른바 역사적인 불교국가인 남한의 현실입니다.
제가 싫어하는 것이 둘러치기 논법입니다. 아래에 해바라기 님이 퍼온 김정일 관련 동영상에 제가 이명박을 데려 왔지만, 사실 어쩌면 이것은 야비한 일이죠. 그냥 길게 댓글을 달기 싫어서 그렇게 했지만요. 우리가 북조선의 김정일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한의 이념과 체제라는 척도로 이해한다면 영원히 평행선만 그을 것입니다. 남한의 민주화 이야기하는데 왜 북조선은 비판하지 않느냐는 순진무구하고 유치찬란한 polemical arguments로는 결코 토론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거니와 비생산적인 것입니다. 몇 년 전에는 이런 댓글들이 네이버에 난무했는데, 네이버가 이것을 닫자, 야후 코리아에 이런 댓글들이 횡횡거리고 있습니다. 알바들도 많구요. 캘거리엔 아직 그런 알바가 없는 것같아 다행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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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
| 2009-07-15 21:01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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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이해를 위한 자료선택 자체가 참 어렵습니다. 특히 역사자료들은 북한 것을 의존해야 하는데 왜곡되거나 과장된 게 거의 확실시되기 때문에 판단이 어렵지요.
저는 북한 역사를 이해하는 데 그냥 이런 경로를 통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인 읽기를 하는 것 입니다. 대부분의 역사적 사건은 완전 날조가 불가능하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어떤 사실을 토대로 왜곡하거나 과장을 할 수 있을 뿐이지요. 예를 들어 1968 년 울진 삼척 공비사건 당시 이승복 사건만 하더라도 그 사건이 공비사건인지 강도사건인지 모르지만 일가족이 피살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덟 살짜리가 가족들이 피살되는 공포스러운 현장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고 죽었다는 건 누가 봐도 날조이지요. 사건 전체를 날조한 게 아니라 그 사건에 관련된 부분을 날조한 겁니다.
다른 예로 본 글 에서 인용한 안창호 강연장 사건만 해도 남한에서는 북한 측의 날조라고 주장해 왔지만 이런 종류의 역사적 사건이란 날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지요. 증인만 해도 4 백 여명이 넘으니까요. 그러나 북한측 자료 불멸의 총서는 적어도 저 같은 자유민주주의자가 보기에 심각한 왜곡의 흔적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당시 안창호가 김성주의 질문을 받고 당황한 나머지 질문을 제대로 못해 강연장 분위기가 흐지부지됐다’ 는 식의 이야기를 첨가함으로써 이 강연회 사건의 의미를 오히려 퇴색시켰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몇 년 전 도올 선생이 어느 교육방송 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인용하면서 비슷한 해석을 하더군요. 그 분이 현대사학자는 아니지만 저는 그 분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다시 찾아 읽어 본 자료가 손원태 박사가 쓴 ‘Kim Il Sung and Struggle-An Unconventional History’ 입니다. 이 분이 김일성의 어릴 적 친구이긴 하지만 재미교포라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습니다. 그 책의 Chapter 7 A Campaign to Get Ahn Chang Ho Release From Detention 71 쪽부터 당시 상황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역시 이 자료에서는 안창호가 당황했다느니 하는 소리는 없고, 다만 친구 (김성주)의 질문쪽지를 받아 읽은 안창호가 잠시 멈칫했는데 그 짧은 정지된 순간이 길게 느껴졌다고 술회하고 잇습니다. 북한자료하고는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좀 더 사실에 가까운 진술이지만 소년의 당돌한 질문에 노선이 다른 안창호가 그의 질문에 대답하기는 좀 난감했을 거라는 정도의 생각은 듭니다.
자료가 충분치 않으니 할 수 있나요. 이런 식으로라도 읽고 추측하고 이해 할 밖에요.
하나의 사례지만 사실 이런 ‘상식대로 읽기’ 노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건데 이런 이야기하는 것 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저 자신이 어떤 분들에게 빨갱이로 찍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분들에게 제가 하는 이야기 전체가 씨가 먹히지 않으니 하는 말 입니다. 그러면 이야기를 차라리 시작 하지 않느니 만도 못하게 되는 것 이지요.
방금 언급한 역사 자료 읽기조차 이해하지 못하는데 ‘현지 자체의 지식’ 그러니까 다시 말해 그 사회로부터의 이해의 출발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는 상상이 가죠. 차라리 신은희 교수처럼 탁 까 놓고 “주체사상도 하나의 생명사상이다, 서구의 기독교 사상과 다를 거 없다. 주체론이나 기독교 근본주의나 정답을 하나로 강요하고 있는데 둘 다 문제다. 북한과 미국과의 싸움 그거 문명충돌이야 문명충돌……” 하면 속이야 션하겠지만 그런 게 어떤 분들에게는 가당키나 해야 말이죠. 말씀하신 ‘둘러치기 논법’이나 Polemical arguments는 선전전문가가 의도적으로 도입해서 사용할 수는 있지만 이 게시판에 글을 올리신 ‘보수논객들’께서 그 범주에 속하는 것 같지는 않군요. (증거도 없지만 그냥 읽어봐도 그렇습니다. 하긴 그 분들이 올린 동영상은 열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 분들이 보고 배운 대로 그 한계 안에서 하시는 말씀인데, 그렇더라도 지적하신 건 잘 하신 일 같습니다.
이 글은 그 분들과 이야기 이쯤 접자는 신호구요. 식사제의는 빈말이 아니라 그 분이 원하면 일정을 잡아보려고 합니다. 글로 논쟁하는 거 하고는 많이 다를 거라는 생각도 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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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 2009-07-15 21:08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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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타 논객들이 다 모인 것 같습니다. 듣고만 있어도 좋습니다. 술값 밥값이 아깝지 않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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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
| 2009-07-15 21:09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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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는 수정기능이 없어 불편하군요. 다름이 아니라 재가 내일부터는 또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요. 혹시 다른 댓글이 올라오더라도 당분간은 제가 들르긴해도 답변을 할 시간이 있을지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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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
| 2009-07-15 23:54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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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님 동감입니다. 우리끼리 읽기 아깝죠. 안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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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O
| 2009-07-16 00:05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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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님! 왜 파이오니어님께 사과하시는거죠? 전에도 몇 번을 말씀드리려다 댓글 안달기로 했는데 속상해서 로그인하네요. 잘못하신거 없는데 왜 사과하시나요? 이해가 안되고 속상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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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
| 2009-07-16 07:00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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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아마 친절해 보이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지요. 금자씨처럼요^^. 너무 솔직했나요? 굳이 질문을 해 주셔서 할 수 없이 답변드리는 건데, 사과란 반드시 자기가 잘못했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그리고 상대방 분의 이해의 폭을 고려하지 않고 제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한 건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없지요. 속상해 하지 마세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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